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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댄서 (baekdaenseo) — 무대 뒤가 아니라 무대의 절반

백댄서

백댄서 (baekdaenseo) 는 가수나 주연 퍼포머의 뒤·옆에서 함께 춤을 추며 무대를 완성하는 전문 댄서를 가리키는 말이다. 케이팝 무대를 한 번이라도 끝까지 본 사람이라면, 카메라가 가수 얼굴만 잡을 때 화면 가장자리에서 칼같이 각을 맞추던 사람들을 기억할 것이다. 콘서트가 끝나고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길, 팬들끼리 가장 자주 주고받는 말 중 하나가 바로 ‘오늘 백댄서분들 진짜 잘하더라’다.

이 말은 영어 back 과 dancer 를 한국식으로 붙여 만든 외래어다. 영어권에서는 보통 backup dancer 나 backing dancer 라고 하지, back dancer 라고는 잘 쓰지 않는다. 그러니까 백댄서 (baekdaenseo) 는 영어처럼 생겼지만 한국에서 자리 잡은 한국말에 가깝다. ‘백(back)‘이라는 글자가 붙은 이유는 단순하다. 무대에서 가수가 앞에 서고 댄서들이 뒤쪽 대형을 이루기 때문이다. 즉 원래는 실력의 등급이 아니라 무대 위 위치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다만 이 ‘백’이라는 글자 때문에 뉘앙스가 생겼다. 직업을 가리키는 중립적인 단어이면서도, 듣기에 따라 ‘주인공이 아닌 사람’처럼 들릴 여지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업계와 팬덤에서는 댄서 (daenseo)댄서님 (daenseonim), 팀 전체를 부를 때는 안무팀 (anmutim) 이라고 부르는 쪽이 점점 늘고 있다. 여기서 두 번째 쓰임이 파생된다. 어떤 자리에서 자기가 주인공이 아니었을 때, 한국 사람들은 농담처럼 ‘나 오늘 완전 백댄서였어’라고 말한다. 이때는 춤과 아무 상관이 없고, ‘옆에서 분위기만 맞춰 줬다’는 뜻이 된다.

실제 대화로 보기

상황: 콘서트가 막 끝난 잠실 종합운동장 앞.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는데 아직 귀가 멍하다.

준경: 야, 마지막 곡 봤어? 무대가 완전 꽉 찼잖아. Hey, did you see the last song? The stage was completely packed.

에밀리: 봤지. 근데 나 오늘 가수보다 백댄서분들만 계속 보고 있었어. I did. But honestly, I was watching the backup dancers more than the singer the whole time.

준경: 아 그거 나도. 오른쪽 끝에 계셨던 분, 각도 진짜 미쳤더라. Oh, me too. That person on the far right — their lines were insane.

에밀리: 맞아! 근데 왜 백댄서라고 불러? 뒤에만 있는 것도 아니던데. Right! But why do we call them ‘back’ dancers? They weren’t only in the back.

준경: 그러게. 요즘은 그냥 ‘댄서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많아. Yeah, true. These days a lot of people just say ‘daenseo-nim’.

에밀리: 나도 그렇게 부를래. 오늘 무대 절반은 저분들이 만든 거잖아. I’m going to call them that too. They made half of tonight’s stage.

이렇게 쓰면 어색합니다

✗ (공연 끝나고 댄서 본인에게) 저기, 백댄서시죠? 사진 한 장만요. ✓ (공연 끝나고 댄서 본인에게) 저기, 댄서님이시죠? 사진 한 장만요. → 본인 앞에서 ‘백’을 붙이면 직업 이름이 아니라 서열처럼 들린다. 얼굴을 보고 부를 때는 ‘댄서님’이 가장 안전하고 정중하다.

✗ 그 그룹 춤 제일 잘 추는 멤버가 백댄서야. ✓ 그 그룹 춤 제일 잘 추는 멤버가 메인 댄서야. → 흔한 오해다. 백댄서는 그룹 바깥에서 무대를 함께 채우는 전문 댄서이고, 그룹 안에서 춤을 담당하는 멤버는 메인 댄서 (mein daenseo) 라고 한다. 둘을 섞어 쓰면 팬들 사이에서 바로 티가 난다.

상황별 활용 예문

상황 1 — 콘서트를 보고 나와 친구와 후기를 나눌 때. 가수의 노래만큼이나 무대 전체의 합을 칭찬하고 싶을 때 쓰는 가장 흔한 문장이다.

이번 무대는 백댄서분들 합이 진짜 좋았어. (ibeon mudaeneun baekdaenseobundeul habi jinjja joasseo.) This time the backup dancers’ teamwork was really tight.

‘합 (hap)‘은 여러 사람의 동작이 맞아떨어지는 정도를 말한다. 케이팝 공연 후기에서 거의 관용구처럼 붙어 다니는 단어라 같이 외워 두면 좋다.

상황 2 — 자기 자신을 낮춰 농담할 때. 회의나 모임에서 내가 거의 말을 못 하고 끝났을 때, 한국 사람들은 이 표현을 비유로 끌어다 쓴다.

오늘 회의 내내 나는 그냥 백댄서였어. (oneul hoeui naenae naneun geunyang baekdaenseoyeosseo.) I was basically just a backup dancer through that whole meeting.

억울함보다는 자조 섞인 웃음에 가깝다. 진짜로 서운할 때 쓰면 상대가 농담으로 받아 버리니, 정말 속상하다면 다른 말을 골라야 한다.

상황 3 — 댄서의 경력을 소개할 때. 한국에서는 백댄서로 시작해 안무가나 댄스 스튜디오 대표가 되는 경로가 아주 흔하다.

저는 백댄서로 시작해서 지금은 안무가로 일해요. (jeoneun baekdaenseoro sijakhaeseo jigeumeun anmugaro irhaeyo.) I started out as a backup dancer, and now I work as a choreographer.

‘-로 시작해서 (-ro sijakhaeseo)‘는 경력의 출발점을 말할 때 두루 쓰는 틀이다. 직업 이름만 바꿔 끼우면 자기소개가 된다.

존댓말·반말과 비슷한 표현

백댄서는 사람을 가리키는 명사라서 그 자체에 높임이 없다. 높이려면 뒤에 -분 (-bun) 이나 -님 (-nim) 을 붙인다. 즉 친구끼리는 ‘백댄서 잘하더라’, 공손하게는 ‘백댄서분들 정말 잘하시더라고요’가 된다. 본인을 앞에 두고 말할 때는 아래 표에서 오른쪽으로 갈수록 안전해진다.

표현온도·강도쓰는 자리
백댄서 (baekdaenseo)중립적이지만 ‘뒤’라는 어감이 남음팬끼리 후기, 제3자를 설명할 때. 본인 앞에서는 피함
댄서님 (daenseonim)정중하고 존중이 담김본인에게 직접 말할 때, 공연 소개, SNS 응원
안무팀 (anmutim)중립·공식적무대 크레딧, 방송 자막, 업무 대화
안무가 (anmuga)전문가를 가리킴춤을 만든 사람. 추기만 한 사람에게 쓰면 틀림
들러리 (deulleori)부정적, 자조 섞임춤과 무관하게 ‘병풍 노릇’을 뜻함. 남에게 쓰면 실례

특히 마지막 줄을 조심하자. 비유로 쓴 ‘나 백댄서였어’는 웃으며 넘길 수 있지만, 같은 자리에서 남을 두고 ‘너 오늘 들러리였잖아’라고 하면 분위기가 식는다.

문화 배경 — 무대 뒤에서 무대 한가운데로

한국에서 이 단어의 무게는 최근 10년 사이에 눈에 띄게 달라졌다. 예전에는 방송 자막에 이름조차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안무 영상 하나에 댄서 이름이 줄줄이 붙고, 안무를 만든 사람과 춘 사람이 각각 팬을 거느린다. 결정적인 계기 중 하나로 흔히 꼽히는 것이 2021년 Mnet 에서 방송된 댄스 서바이벌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다. 이 방송 이후 ‘무대 뒤 사람’이 아니라 ‘그 무대를 설계한 사람’으로 댄서를 보는 시선이 크게 퍼졌다.

말도 같이 움직였다. 요즘 한국 팬들이 SNS 에 쓰는 문장을 보면 ‘백댄서’보다 ‘댄서님’, ‘안무팀’이라는 말이 눈에 띄게 늘었다. 그렇다고 백댄서가 나쁜 말이 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여전히 신문 기사에도 쓰이고, 일상 대화에서도 가장 알아듣기 쉬운 말이다. 다만 ‘누구 앞에서 쓰느냐’가 중요해졌을 뿐이다. 한국어에는 이런 단어가 꽤 있다 — 뜻은 그대로인데 사회가 그 직업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면서 단어의 온도만 조용히 달라지는 경우다.

하나 더 알아 두면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한국의 많은 아이돌이 데뷔 전 연습생 시절에 선배 가수의 무대에 백댄서로 서면서 카메라와 무대를 익힌다. 그래서 한국 팬덤에는 ‘데뷔 전 백댄서 영상 찾기’라는 오래된 놀이가 있다. 무대 맨 뒤에서 얼굴이 반쯤 잘린 채 춤추던 사람이 몇 년 뒤 그 무대 한가운데 서 있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 이 단어가 한국에서 갖는 감정의 핵심에 가깝다. 백댄서는 ‘뒤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아직 앞에 서지 않았을 뿐인 사람’으로도 읽히는 것이다.

오늘의 퀴즈

공연이 끝나고 무대에서 내려온 댄서 본인에게 인사를 건네려고 한다. 가장 자연스럽고 예의 있는 말은?

  1. 백댄서시죠? 오늘 잘 봤어요.
  2. 댄서님, 오늘 무대 정말 잘 봤어요.
  3. 들러리 서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4. 안무가님, 춤 잘 추시더라고요.
정답 보기

정답은 2번이다. 1번은 뜻은 통하지만 본인 앞에서 ‘백’을 붙여 서열처럼 들릴 수 있고, 3번의 ‘들러리’는 상대를 깎아내리는 말이라 큰 실례다. 4번은 안무를 만든 사람에게 쓰는 호칭이라, 춤을 춘 사람에게 쓰면 사실관계가 어긋난다. 얼굴을 보고 부를 때는 댄서님 (daenseonim) 이 가장 안전하다.

이 글의 단어 뜻풀이와 예문은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krdict.korean.go.kr)에서 가져왔으며, 해당 부분(번역 포함)은 CC BY-SA 2.0 KR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배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