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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훈하다 — 방의 온도와 마음의 온도를 같은 말로 부르는 이유

훈훈하다

겨울 저녁, 남의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안경에 하얗게 김이 서리는 순간이 있다. 훈훈하다 (hunhunhada) 는 견디기 좋을 만큼 알맞게 따뜻하다는 뜻이자, 한 걸음 더 나아가 마음을 부드럽게 녹여 주는 따뜻함이 있다는 뜻이다. 한국 사람이 이 말을 꺼내는 자리는 대개 둘 중 하나다. 추운 바깥에서 막 들어온 방 안이거나, 누군가의 작은 친절을 보고 난 직후다.

재미있는 건 이 두 자리가 한국어 안에서 끊기지 않고 이어져 있다는 점이다. 방의 온도를 말하던 단어가 그대로 사람의 마음 온도를 말하는 데 쓰인다. 그래서 “인심이 훈훈하다”라는 말을 처음 듣는 학습자도 뜻을 절반쯤은 짐작한다. 사람 사이에도 적정 온도가 있고, 그 온도가 딱 맞았다는 뜻이다.

온도를 말할 때 훈훈하다에는 분명한 상한선이 있다. 사우나는 훈훈한 게 아니라 뜨겁다 (tteugeopda) 이고, 한여름 대낮은 훈훈한 게 아니라 덥다 (deopda) 이다. 훈훈하다가 가리키는 건 “추위가 방금 물러난 자리”의 온도다. 그래서 이 말은 겨울과 잘 붙고, 닫힌 공간과 잘 붙는다. 방, 실내, 시동을 켜 둔 차 안처럼 공기가 고여 있는 곳이다.

마음을 말할 때도 강도가 세지 않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감동은 뭉클하다 (mungkeulhada) 쪽이다. 훈훈하다는 그보다 한 단계 낮은 온도로, 보고 나서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고 그 기분이 한동안 남는 정도다. 그리고 대개 남의 일을 지켜보는 자리에서 쓴다.

형용사이므로 활용은 이렇게 한다. 반말은 훈훈해 (hunhunhae), 존댓말은 훈훈해요 (hunhunhaeyo), 격식체는 훈훈합니다 (hunhunhamnida). 지금 막 느낀 감탄은 훈훈하네요 (hunhunhaneyo), 과거는 훈훈했다 (hunhunhaetda), 상태가 변해 가는 중이면 훈훈해지다 (hunhunhaejida) 를 쓴다.

국립국어원 사전으로 확인하기

훈훈하다 〔형용사〕

  1. 날씨나 온도가 견디기 좋을 만큼 따뜻하다. [en] warm — The weather or temperature being bearably warm. [ja] ぽかぽかする — 気温や温度が丁度良く、暖かい。 [es] cálido — Dicho del clima o la temperatura, que está tolerablemente caliente. [zh] 暖和,暖烘烘 — 天气或温度达到让人舒适的温暖。
  2. 마음을 부드럽게 녹여 주는 따뜻함이 있다. [en] warm; warm-hearted — Having warmth that softens the heart. [ja] なごやかだ【和やかだ】。ほのぼのする — 心暖まる温かみがある。 [es] caliente, de buen corazón — Que tiene una calidez que ablanda el corazón. [zh] 暖洋洋,温暖 — 有让人内心融化的暖暖的东西。
  3. 냄새가 서려 있다. [en] filled with; covered with — A smell filling the air, etc. [ja] ほのかににおう【ほのかに匂う】 — 匂いが漂うさま。 [es] impregnado de olor — Que está impregnado de algún olor. [zh] 散发出味道。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포르투갈어 뜻풀이는 사전에 실려 있지 않다. 아래는 사전 인용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옮긴 번역이다. ① agradavelmente morno ② caloroso, de bom coração ③ impregnado de um cheiro.

사전에 실린 실제 사용 예문은 다음과 같다.

향내가 훈훈하다. 인심이 훈훈하다. 심성이 훈훈하다. 집이 훈훈하다. 실내가 훈훈하다. 방이 훈훈하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이 여섯 개를 나란히 놓으면 단어의 지도가 한눈에 보인다.

  • 인심이 훈훈하다 (insimi hunhunhada) — 시장에서 상인이 덤을 얹어 줄 때, 이사 온 집에 옆집이 떡을 돌릴 때 나오는 말이다. 한 사람의 성격이 아니라 그 동네·그 가게 전체의 분위기를 두고 말한다.
  • 심성이 훈훈하다 (simseongi hunhunhada) — 이쪽은 개인의 타고난 마음결을 말한다. 사람을 오래 겪어 보고 내리는 평가라서, 처음 만난 사이에는 잘 쓰지 않는다.
  • 집이 훈훈하다 (jibi hunhunhada) — 겨울에 남의 집에 들어서며 하는 인사에 가깝다. 온도 얘기지만, 사실은 “잘 지내고 계시네요”라는 말로도 들린다.
  • 실내가 훈훈하다 (sillaega hunhunhada) — 카페, 지하철, 병원 대기실처럼 공공장소의 공기를 말할 때 쓴다. 안내문이나 기사 같은 글말에서도 자연스럽다.
  • 향내가 훈훈하다 (hyangnaega hunhunhada) — 3번 뜻이다. 절이나 제사상처럼 향이 공간에 배어 있는 장면에서 쓰며, 요즘 일상 대화보다는 글에서 더 자주 보인다. 학습자라면 1번과 2번 뜻만 먼저 익혀도 충분하다.

실제 대화로 보기

상황: 12월 밤, 아파트 단지 앞. 에밀리가 중고로 산 전기히터를 준경이 같이 들어 주러 나왔다.

준경: 다 받았어? 판매자분 벌써 가셨네. Did you get everything? The seller already left.

에밀리: 응, 근데 이거 봐. 리모컨이랑 여분 필터까지 챙겨 주셨어. Yeah, but look at this. She threw in the remote and a spare filter too.

준경: 오, 인심 훈훈하시다. 요즘 그런 분 잘 없는데. Wow, that’s really generous of her. You don’t meet people like that these days.

에밀리: 그치? 값도 오천 원 깎아 주시고, 조심히 가라고 세 번이나 말씀하셨어. Right? She knocked five thousand won off too, and told me three times to get home safe.

준경: 야, 얼른 들어가자. 손 얼겠다. Hey, let’s hurry inside. My hands are freezing.

에밀리: 이거 켜면 우리 집도 십 분이면 훈훈해질 거야. Once I turn this on, my place will be nice and warm in ten minutes.

이렇게 쓰면 어색합니다

✗ (사우나에 들어가며) 우와, 여기 진짜 훈훈하다. ✓ (사우나에 들어가며) 우와, 여기 진짜 뜨겁다. → 훈훈하다는 추위가 막 가신 정도의 온도다. 땀이 날 만큼 뜨거운 곳에 쓰면 온도가 어긋나서, 농담을 하는 건지 되묻게 된다.

✗ (자기 얘기를 하며) 제가 어제 할머니 짐을 들어 드렸거든요. 참 훈훈했죠? ✓ (남의 얘기를 하며) 어떤 학생이 할머니 짐을 들어 드리더라고요. 보는 내내 훈훈했어요. → 훈훈하다는 지켜보는 사람의 자리에서 나오는 말이다. 자기 선행에 붙이면 칭찬을 스스로 청구하는 모양이 되어 듣는 쪽이 불편해진다.

상황별 활용 예문

① 명절 밥상에서, 할머니가 손주 접시에 계속 반찬을 올려 주는 걸 보며

할머니가 손주 밥 챙기시는 거 보니까 보기만 해도 훈훈하네요. (halmeoniga sonju bap chaenggisineun geo boniilkka bogiman haedo hunhunhaneyo.) Watching Grandma keep filling her grandson’s plate — it warms you up just to see it.

“보기만 해도 (bogiman haedo)”와 함께 쓰면 2번 뜻이 확실해진다. 내가 겪은 일이 아니라 옆에서 본 일이라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② 영하 10도인 날, 카페에 들어와 외투를 벗으며

밖은 영하 십 도인데 안은 훈훈하네요. 여기 앉아도 될까요? (bakkeun yeongha sip doinde aneun hunhunhaneyo. yeogi anjado doelkkayo?) It’s minus ten outside but it’s lovely and warm in here. May I sit here?

안팎의 온도 차를 함께 말하면 훈훈하다가 가장 살아난다. 이 단어는 원래 대비 속에서 태어나는 감각이다.

③ 뉴스 기사 댓글을 읽고 친구에게 링크를 보내며

오랜만에 훈훈한 소식이라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어. (oraenmane hunhunhan sosigira achimbuteo gibuni joasseo.) It was the first heartwarming news in a while, so I’ve been in a good mood all morning.

훈훈한 소식 (hunhunhan sosik) 은 거의 굳어진 표현이다. 한국 인터넷에서 “훈훈”은 사건 사고 기사 사이에 끼어드는 좋은 뉴스를 가리키는 꼬리표처럼 쓰인다.

존댓말·반말과 비슷한 표현

친구에게는 “집 훈훈하다”, 손윗사람에게는 “집이 훈훈하네요”, 발표나 안내문에서는 “실내가 훈훈합니다”가 된다. 사람의 마음을 두고 높여 말할 때는 훈훈하시다 (hunhunhasida) 처럼 -시- 를 넣는다. 위 대화의 “인심 훈훈하시다”가 그 경우다.

표현온도·강도쓰는 자리
훈훈하다 (hunhunhada)은은하게 따뜻하고 오래 남음겨울 실내 공기 / 남의 친절을 지켜본 자리
따뜻하다 (ttatteutada)중립적이고 폭이 가장 넓음온도·사람·말투 어디에나. 안전한 기본값
포근하다 (pogeunhada)폭 감싸이는 부드러움이불·품·분위기. 공기보다 촉감 쪽
뭉클하다 (mungkeulhada)순간적으로 세게 치미는 감정가슴이 벅찰 때. 온도에는 쓰지 못함
흐뭇하다 (heumutada)흡족한 만족감주로 손아랫사람이 잘하는 걸 볼 때

헷갈릴 때의 기준은 간단하다. 손끝의 감촉이면 포근하다, 눈물이 핑 돌면 뭉클하다, 흐뭇하게 지켜보는 대상이 나보다 어리면 흐뭇하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공기가 은근히 데워지는 느낌이면 훈훈하다다.

문화 배경 — 온돌방과 훈남

한국 집은 대부분 바닥 난방이다. 뜨거운 바람이 위에서 쏟아지는 게 아니라 바닥에서 열이 천천히 올라와 방 전체에 고인다. 훈훈하다가 그리는 그림이 정확히 이 상태다. 공기가 세차게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데워져 있는 방. 그래서 한국어에서 이 단어는 에어컨이나 히터보다 아랫목과 더 가깝게 붙어 있다.

2000년대 이후 인터넷에서 생긴 말 훈남 (hunnam) 도 여기서 나왔다. 훈훈한 남자를 줄인 말로, 눈부시게 잘생겼다기보다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인상을 가리킨다. 마음의 온도를 말하던 단어가 외모 인상에까지 번진 셈이다. 다만 이 쓰임은 신조어라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의 뜻풀이에는 들어 있지 않다. 시험이나 격식 있는 글에서는 사전에 실린 1번과 2번 뜻으로 쓰는 편이 안전하다.

드라마에서 훈훈하다가 나오는 자리도 대개 정해져 있다. 크게 싸운 가족이 말없이 밥상에 다시 모여 앉는 장면, 무뚝뚝한 인물이 몰래 도움을 주고 자리를 뜨는 장면 같은 것들이다. 이런 회차에는 방송 다음 날 “훈훈한 엔딩”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붙는다. 한국어에서 이 단어는 그렇게 감정의 최고점이 아니라, 최고점이 지나간 뒤 남는 여운을 담당한다.

오늘의 퀴즈

다음 중 훈훈하다를 쓰기에 가장 어울리는 상황은?

  1. 8월 한낮, 아스팔트에서 열기가 올라온다.
  2. 편의점 사장님이 늦게까지 공부하는 학생에게 삼각김밥을 하나 더 챙겨 주셨다.
  3. 지하철에서 발을 밟혔는데 사과도 못 받았다.
정답 보기

정답은 2번이다. 작은 친절을 옆에서 지켜본 상황이므로 “인심이 훈훈하네요”가 자연스럽다. 1번은 훈훈한 게 아니라 “덥다”나 “뜨겁다”를 써야 하고, 3번은 온도가 정반대라 어떤 뜻으로도 쓸 수 없다.


이 글의 단어 뜻풀이와 예문은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krdict.korean.go.kr)에서 가져왔으며, 해당 부분(번역 포함)은 CC BY-SA 2.0 KR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배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