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 (baenangnyeohaeng) — 배낭 하나 메고 떠나는 여행, 한국인이 청춘을 담아 쓰는 말
배낭여행
배낭여행 (baenangnyeohaeng) 은 배낭 하나만 메고 다니면서 적은 돈으로 자유롭게 하는 여행이라는 뜻이다. 한국 사람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오는 자리는 대개 정해져 있다. 대학 휴학계를 내고 온 친구가 지도를 펼칠 때, 회사를 그만둔 사람이 마지막 월급을 세어 볼 때, 그리고 몇 년 뒤 술자리에서 그때 고생한 이야기를 꺼낼 때다.
발음에 함정이 하나 있다. 글자는 배낭+여행이지만 실제로는 [배낭녀행]으로 소리 난다. 자음으로 끝나는 앞말 뒤에 여가 붙으면서 ㄴ 소리가 하나 끼어드는 현상이다. 그래서 로마자로도 baenangnyeohaeng 이라고 적는다.
뉘앙스를 정확히 잡아 두자. 이 말의 무게중심은 배낭이 아니라 적은 돈과 자유로움에 있다. 가방이 배낭이어도 호텔에 묵고 가이드를 따라다니면 배낭여행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반대로 캐리어를 끌고 갔어도 게스트하우스 이층 침대에서 자고 기차표를 스스로 끊었다면 한국 사람들은 그걸 배낭여행이라고 불러 준다. 그래서 이 단어에는 늘 고생과 젊음의 냄새가 조금 배어 있다. 편안함을 자랑하고 싶을 때 쓰는 말이 아니라, 불편했는데 그게 좋았다고 말하고 싶을 때 쓰는 말이다.
국립국어원 사전으로 확인하기
배낭여행 「명사」 배낭만 가지고 다니면서 적은 돈으로 자유롭게 하는 여행. [en] backpacking — A form of low-cost, independent travel with only a backpack. [ja] リュックサック旅行、バックパック旅行 — リュックサックだけを背負って少ない金で自由に歩き回る旅行。 [es] viaje de mochilero, andar de mochilero — Viaje libre y con poco presupuesto que se realiza llevando solo una mochila. [zh] 背包旅行 — 只背着背包、以少量的钱进行的自由旅行。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뜻풀이에 배낭만, 적은 돈, 자유롭게 세 조건이 나란히 들어가 있다는 점을 눈여겨보자. 사전이 직접 세 개를 묶어 놓았기 때문에, 셋 중 하나라도 빠지면 어색해지는 것이다. (포르투갈어 뜻풀이는 사전에 실려 있지 않아 아래 표기는 우리가 직접 옮긴 것이다 — viagem de mochilão, viajar de mochila nas costas.)
사전에 실린 실제 사용 예문을 그대로 옮겨 보면, 이 말이 어떤 온도로 쓰이는지가 더 선명해진다.
민준이는 한 달간의 배낭여행을 마치고 거지꼴로 나타났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Minjun-i-neun han dal-gan-ui baenangnyeohaeng-eul machigo geojikkol-lo natanatda. 한 달 만에 돌아온 친구를 보고 하는 말이다. 거지꼴은 옷차림이 몹시 남루한 모습을 가리키는 거친 표현인데, 여기서는 흉이 아니라 오히려 제대로 다녀왔다는 인정에 가깝다. 배낭여행이라는 단어가 고생과 얼마나 붙어 다니는지를 보여 준다.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가서 구경도 많이 하고 견문을 넓혀서 돌아오려고요.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Yureop-euro baenangnyeohaeng-eul gaseo gugyeong-do mani hago gyeonmun-eul neolpyeoseo doraoryeogoyo. 어른에게 계획을 말씀드리는 상황이라 -려고요로 공손하게 끝맺었다. 견문을 넓히다는 보고 들은 것이 많아진다는 뜻으로, 배낭여행의 명분을 설명할 때 한국 사람이 거의 반사적으로 꺼내는 표현이다.
부모님은 지수의 배낭여행 계획이 위험하다며 과도히 걱정하셨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Bumonim-eun Jisu-ui baenangnyeohaeng gyehoek-i wiheomhadamyeo gwadohi geokjeonghasyeotda. 배낭여행에는 늘 이 반대편이 따라온다. 혼자, 싸게, 정해진 일정 없이 다닌다는 말은 부모 입장에서는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앞의 예문과 이 예문을 나란히 놓으면 한국 가정에서 이 단어가 놓이는 자리가 그대로 보인다.
젊은 시절 배낭여행을 하던 도중 이 나라의 아름다움에 반해서 그대로 머물러 살다가 결국 귀화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Jeolmeun sijeol baenangnyeohaeng-eul hadeon dojung i nara-ui areumdaum-e banhaeseo geudaero meomulleo salda-ga gyeolguk gwihwa-kkaji hage doeeotseumnida. 인터뷰나 방송에서 들릴 법한 문장이다. 젊은 시절이라는 말이 앞에 붙은 것에 주목하자. 배낭여행은 나이 제한이 있는 말은 아니지만, 한국어에서는 청춘의 시간과 짝을 이루어 자주 등장한다.
실제 대화로 보기
상황: 토요일 오후, 지하철역 3번 출구 앞. 중고 거래로 준경이 에밀리의 배낭을 사러 나왔다.
준경: 어, 에밀리? 야, 이거 사진보다 훨씬 깨끗한데? Oh, Emily? Hey, this looks way cleaner than in the photos.
에밀리: 나 이거 메고 배낭여행 두 번 다녀왔어. 튼튼한 건 내가 보증해. I went backpacking twice with this. I can vouch that it’s sturdy.
준경: 두 번? 어디어디 갔었는데? Twice? Where all did you go?
에밀리: 스페인이랑 베트남. 근데 이제 안 쓰니까 그냥 싸게 줄게. Spain and Vietnam. But I don’t use it anymore, so I’ll just let it go cheap.
준경: 고맙다, 진짜. 나도 다음 달에 배낭여행 가거든. 회사 그만두고. Thanks, really. I’m going backpacking next month too. I quit my job.
에밀리: 뭐? 야, 부럽다. 잘 갔다 와. 그 배낭 운 좋은 애야. What? Wow, I’m jealous. Have a good trip. That backpack is a lucky one.
이렇게 쓰면 어색합니다
✗ 이번 신혼여행은 5성급 호텔에 가이드까지 붙는 배낭여행이에요. ✓ 이번 신혼여행은 5성급 호텔에 가이드까지 붙는 패키지여행이에요. → 가방 종류가 기준이 아니다. 사전 뜻풀이의 핵심은 적은 돈으로 자유롭게이므로, 호텔과 가이드가 들어가는 순간 배낭을 메고 있어도 배낭여행이 아니다. 듣는 사람은 자랑인지 농담인지 헷갈려 한다.
✗ (텐트와 침낭을 메고 산에 오르며) 이번 주말에 지리산으로 배낭여행 가요. ✓ 이번 주말에 지리산으로 백패킹 가요. → 영어 backpacking에는 산에서 야영하며 걷는 뜻이 있지만, 한국어 배낭여행에는 그 뜻이 없다. 한국어에서 배낭여행은 도시와 나라를 옮겨 다니는 긴 여행이고, 산에서 자는 쪽은 백패킹 (baekpaeking) 이라고 따로 부른다. 영어권 학습자가 가장 자주 겹쳐 쓰는 자리다.
상황별 활용 예문
상황 1 — 휴학을 알리는 자리. 부모님이나 교수님께 계획을 말씀드릴 때는 목적을 함께 붙이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다.
- 한 학기 휴학하고 동남아로 배낭여행을 다녀오려고 합니다. (Han hakgi hyuhak-hago dongnam-a-ro baenangnyeohaeng-eul danyeo-oryeogo hamnida.) I’m planning to take a semester off and go backpacking around Southeast Asia.
상황 2 —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반말에서는 조사를 줄이고 툭 던지듯 말한다.
- 너 저번에 배낭여행 갔다며? 어땠어, 할 만했어? (Neo jeobeon-e baenangnyeohaeng gatdamyeo? Eottaesseo, hal manhaesseo?) I heard you went backpacking last time? How was it, was it doable?
상황 3 — 예산을 걱정하는 자리. 배낭여행은 돈 이야기와 붙어 다니기 때문에, 아래처럼 액수와 기간이 함께 나오는 문장이 아주 흔하다.
- 삼백만 원으로 두 달 배낭여행이 가능할까요? (Sambaengman won-euro du dal baenangnyeohaeng-i ganeunghal-kkayo?) Would two months of backpacking be possible on three million won?
존댓말·반말과 비슷한 표현
배낭여행은 명사라서 그 자체에는 높낮이가 없다. 높임은 뒤에 붙는 동사가 맡는다.
- 아주 높임: 배낭여행 다녀오셨어요? (Baenangnyeohaeng danyeo-osyeosseoyo?)
- 두루 높임: 배낭여행 가요. (Baenangnyeohaeng gayo.)
- 반말: 배낭여행 가. / 배낭여행 갔다 왔어. (Baenangnyeohaeng ga. / gatda wasseo.)
비슷해 보이는 말들은 아래처럼 갈린다.
| 표현 | 온도·강도 | 쓰는 자리 |
|---|---|---|
| 배낭여행 (baenangnyeohaeng) | 젊고, 싸고, 고생이 섞임 | 장기·저예산·혼자. 나중에 무용담이 되는 여행 |
| 자유여행 (jayuyeohaeng) | 중립 | 패키지의 반대말. 예산과는 무관하고 일정을 스스로 짠다는 뜻만 |
| 패키지여행 (paekijiyeohaeng) | 편하고 짜여 있음 | 여행사가 일정·가이드까지 묶어 파는 단체 여행 |
| 백패킹 (baekpaeking) | 장비와 체력 | 산·자연에서 텐트를 치고 자며 걷는 여행 |
| 한 달 살기 (han dal salgi) | 느긋함, 정착에 가까움 | 한 도시에 방을 얻어 머무는 요즘식 여행 |
표에서 보듯 자유여행과 가장 가깝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다. 자유여행은 일정을 누가 짜느냐의 문제이고, 배낭여행은 거기에 예산이 적다는 조건이 하나 더 붙는다. 백만 원짜리 호텔에 묵으며 일정을 직접 짜면 자유여행이지 배낭여행은 아니다.
문화 배경 — 유레일패스와 휴학계의 시절
배낭은 한자어 背囊에서 왔다. 등 배(背)에 주머니 낭(囊), 곧 등에 지는 주머니다. 원래는 군인이 지고 다니던 군장 가방을 가리키던 말이었는데, 여기에 여행이 붙어 여행의 한 방식을 가리키는 이름이 되었다. 그래서 이 단어에는 짐을 손에 들지 않고 등에 지고 두 손은 비워 둔다는 그림이 처음부터 들어 있다.
이 말이 한국에서 폭발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시기는 비교적 분명하다. 1989년 해외여행이 전면 자유화되면서 그전까지 특별한 사유가 있어야 나갈 수 있던 국경이 열렸고, 돈은 없지만 시간은 있는 대학생들이 그 문을 가장 먼저 통과했다. 기차를 정해진 기간 동안 마음껏 탈 수 있는 유레일패스 한 장과 배낭 하나로 유럽을 도는 것이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자리 잡았다. 휴학하고 유럽 다녀왔다는 문장이 젊은 시절의 상징처럼 통용된 것도 이 무렵부터다.
그래서 이 단어에는 지금도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오래된 속담의 그림자가 얹혀 있다. 방송도 이 정서를 반복해 다뤄 왔다. 예능 《꽃보다 청춘》(tvN, 2014~)은 출연자들에게 목적지만 알려 준 채 배낭 하나로 떠나게 하는데, 시청자가 보는 것은 풍경이 아니라 계획이 어긋나고 예산이 모자라는 장면들이다. 배낭여행이라는 말이 왜 편안함이 아니라 고생과 붙어 있는지가 그 화면에 그대로 나온다.
동시에 사전 예문에 나온 것처럼 부모의 걱정도 늘 함께 따라다닌다. 자유롭다는 말은 부모에게는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한국인 친구에게 배낭여행을 간다고 말하면 십중팔구 돌아오는 두 마디가 있다 — 부럽다, 그리고 조심해. 이 두 마디가 이 단어의 양면을 정확히 요약한다.
오늘의 퀴즈
다음 중 배낭여행이라고 부르기에 가장 어색한 것은?
- 오백만 원으로 넉 달간 남미의 게스트하우스를 옮겨 다니며 여행했다.
- 대학 휴학 후 유레일패스를 사서 유럽 열 개 도시를 혼자 돌았다.
- 여행사가 짠 일정에 따라 가이드와 함께 5성급 호텔에서 닷새를 묵었다.
- 항공권만 끊고 숙소는 그날그날 정하며 동남아를 한 달 떠돌았다.
정답: 3번
3번에는 사전이 말한 적은 돈과 자유롭게가 둘 다 빠져 있다. 일정과 숙소가 미리 정해져 있으므로 이것은 패키지여행 (paekijiyeohaeng) 이라고 부른다. 참고로 3번의 여행자가 캐리어 대신 배낭을 메고 있었더라도 답은 바뀌지 않는다. 배낭여행을 가르는 것은 가방의 모양이 아니라 돈과 자유의 크기이기 때문이다.
이 글의 단어 뜻풀이와 예문은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krdict.korean.go.kr)에서 가져왔으며, 해당 부분(번역 포함)은 CC BY-SA 2.0 KR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배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