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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생: 한국에서 가장 조심스럽게 꺼내는 세 글자

취준생

**취준생 (chwijunsaeng)**은 ‘취업 준비생’을 줄여 이르는 말, 곧 아직 직장을 구하는 중인 사람이라는 뜻이다. 학교는 이미 졸업했고 회사는 아직 없는, 그 사이의 시간을 통째로 가리키는 단어다. 한국 드라마를 보다 보면 명절 밥상, 오랜만의 동창 모임, 부모님과의 통화에서 이 단어가 유난히 자주 튀어나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자리들의 공기가 대체로 무겁다. 이 말은 단순한 신분 표시가 아니라, 말하는 사람의 초조함과 듣는 사람의 조심스러움이 같이 묻어 나오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짜임은 아주 단순하다. 취업 (chwieop, 취직) 의 ‘취’, 준비 (junbi) 의 ‘준’, 그리고 사람을 뜻하는 ‘-생(生)‘이 붙었다. 학생도 아닌데 ‘생’이 붙는 게 이상해 보이지만, 한국에서 취업 준비는 실제로 학교생활과 비슷하게 굴러간다. 도서관이나 스터디카페에 정해진 시간에 나가고, 시험을 보고, 스터디 모임을 하고, 방학처럼 쉬는 기간이 있다. ‘생’이라는 글자가 그 생활의 성격을 정확히 집어낸다.

뉘앙스에서 꼭 기억할 것이 둘 있다. 첫째, 취준생은 보통 첫 직장을 구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미 회사를 다니면서 다른 곳으로 옮기려는 사람은 취준생이라고 잘 부르지 않고 ‘이직 준비 중’이라고 말한다. 둘째, 이 말은 중립적인 듯하면서도 자기 입으로 말할 땐 살짝 자조가 섞인다. “나 아직 취준생이야”라는 말에는 “아직 안 됐어”라는 뜻이 함께 들어 있다. 그래서 남이 남에게 붙일 때는 조심해야 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국립국어원 사전으로 확인하기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은 이 말을 아주 간결하게 풀어 놓았다.

취준생 「명사」 ‘취업 준비생’을 줄여 이르는 말. [en] job seeker — An abbreviated term for ‘job seeker’ [ja] しゅうかつせい【就活生】 — 「就職活動準備生」を略して言う語。 [es] demandante de empleo — Es una abreviación de ” demandante de empleo”. [zh] 求职生 — “求职准备生”的简称。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포르투갈어 번역은 사전에 실려 있지 않아, 참고용으로 옮기면 candidato a emprego 정도가 된다(이 번역만은 사전이 아닌 자체 번역임을 밝혀 둔다).

사전이 붙여 놓은 예문들을 보면 이 단어가 실제로 어떤 문장 속에서 사는지가 드러난다.

지수는 만족스러운 일을 찾는 것이 어려워서 취준생으로 지내고 있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취준생으로 지내다 (chwijunsaengeuro jinaeda) — ‘지내다’는 한동안 어떤 상태로 살아간다는 뜻이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몇 달, 몇 년의 시간이 뒤에 깔려 있는 표현이다. 게다가 일자리가 아예 없어서가 아니라 “만족스러운 일”을 찾기 어려워서라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한국의 취업 준비는 자리를 못 구하는 문제인 동시에, 원하는 자리를 기다리는 문제이기도 하다.

취준생인 민준이는 영어 공부도 하고 컴퓨터도 배우며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취준생의 하루가 그대로 요약된 문장이다. 영어 시험 점수, 컴퓨터 자격증 — 한국에서는 이런 것들을 묶어 스펙 (seupek) 이라고 부른다. 취준생이 노는 사람이 아니라 매일 정해진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는 감각이 이 예문에 들어 있다.

유민이는 오늘 대기업에 합격해 취준생 신분을 벗어나게 되었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신분 (sinbun) 이다. 취준생을 하나의 ‘신분’으로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한국 사회에서 이 상태가 얼마나 뚜렷한 꼬리표인지를 보여 준다. 그리고 그 신분은 ‘끝내다’가 아니라 ‘벗어나다’로 표현된다. 갇혀 있다가 빠져나오는 그림이다.

취준생을 벗어나다. / 취준생이 되다. / 취준생 필수. / 취준생 신분. / 취준생 시절.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짧은 짝들만 봐도 쓰임새가 잡힌다. 취준생이 되다 (chwijunsaengi doeda) 는 졸업 직후를, 취준생을 벗어나다 (chwijunsaengeul beoseonada) 는 합격 순간을 가리킨다. 취준생 필수 (chwijunsaeng pilsu) 는 광고에서 흔히 보이는 말로 “취준생이라면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라는 뜻이고, 취준생 시절 (chwijunsaeng sijeol) 은 이미 취업한 사람이 그때를 돌아볼 때 쓴다.

실제 대화로 보기

상황: 추석 연휴 마지막 날 밤. 준경의 집 거실에서 남은 전을 데워 먹는 중이다.

준경: 어제 큰집 밥상에서 우리 사촌동생 표정 봤어야 하는데. 완전 굳었더라. You should’ve seen my cousin’s face at the family table yesterday. He was totally frozen.

에밀리: 왜? 무슨 일 있었어? Why? Did something happen?

준경: 3년째 취준생인데, 어른들이 돌아가면서 “올해는 어디 됐냐” 물어보시니까. He’s been a job seeker for three years, and the relatives took turns asking, “So where’d you get in this year?”

에밀리: 아이고… 나 한국 처음 왔을 때 그 단어부터 배웠어. 명절마다 들리길래. Oh no… That’s one of the first words I learned when I came to Korea. I heard it every holiday.

준경: 그니까. 요즘은 취준생 신분 벗는 데 몇 년씩 걸리는데 말이야. Right? These days it takes years just to get out of that job-seeker status.

에밀리: 다음 명절엔 그냥 부엌에 있으라 그래. 질문 안 날아오는 자리로. Next holiday, tell him to just stay in the kitchen. Somewhere the questions don’t fly.

이렇게 쓰면 어색합니다

✗ (면접장에서 면접관에게) 안녕하십니까, 저는 3년차 취준생입니다. ✓ (면접장에서 면접관에게) 안녕하십니까, 지원자 김민준입니다. 지난 3년간 이 분야를 준비해 왔습니다. → 취준생은 일상 줄임말이라 공식적인 자리에서 자기를 소개하는 말로는 무게가 가볍고, 게다가 “아직 못 됐다”는 자조가 묻어난다. 스스로를 낮춰 부르며 시작하는 셈이 된다.

✗ (오랜만에 만난 선배에게) 선배님, 아직 취준생이세요? ✓ (오랜만에 만난 선배에게) 선배님,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 상대가 아직 취업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콕 집어 확인하는 질문이 된다. 이 단어는 자기가 자기에게 붙일 땐 편하지만, 남이 붙여 주면 아프다. 근황을 열어 두고 묻는 편이 훨씬 안전하다.

상황별 활용 예문

1.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근황을 말할 때

나 아직 취준생이야. 이번 하반기 공채까지는 해 보려고. na ajik chwijunsaengiya. ibeon habangi gongchaekkajineun hae boryeogo. I’m still job hunting. I’m going to give it a shot through this fall’s hiring round.

공채 (gongchae) 는 대기업이 정해진 시기에 신입 사원을 한꺼번에 뽑는 공개 채용을 말한다. 봄과 가을, 한 해에 두 번 큰 물결이 지나간다. “이번 공채까지”라는 말에는 스스로 정해 둔 마감선이 들어 있다.

2. 가게에서 할인을 물어볼 때

혹시 취준생 할인 되나요? 증명사진 찍으러 왔는데요. *hoksi chwijunsaeng harin doenayo? jeungmyeongsajin jjigeureo wanneundeyo. Do you offer a job-seeker discount by any chance? I’m here for an ID photo.

한국의 사진관, 정장 대여점, 스터디카페에는 실제로 ‘취준생 할인’이 있는 경우가 많다. 앞서 사전에서 본 취준생 필수라는 광고 문구도 이런 가게들에서 자주 보인다. 이 단어가 사회적으로 인정된 하나의 집단 이름이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3. 가족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낼 때

제 동생이 취준생이라 요즘 온 집이 조용해요. je dongsaengi chwijunsaengira yojeum on jibi joyonghaeyo. My younger sibling is job hunting, so the whole house has been quiet lately.

집에 취준생이 있으면 가족들이 말을 아낀다. 텔레비전 소리를 줄이고, 물어보고 싶은 것도 삼킨다. 이 문장은 그 분위기를 한 줄로 설명한다.

존댓말·반말과 비슷한 표현

취준생은 명사라서 뒤에 붙는 서술어가 말투를 결정한다. 반말은 나 취준생이야 (na chwijunsaengiya), 존댓말은 저 취준생이에요 (jeo chwijunsaengieyo) 다. 공식적인 자리라면 단어 자체를 바꿔 취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chwieobeul junbihago itseumnida) 라고 풀어 말하는 편이 훨씬 단정하다.

비슷해 보이는 말들은 온도가 꽤 다르다.

표현온도·강도쓰는 자리
취준생 (chwijunsaeng)중립이지만 자기에게 쓰면 살짝 자조적또래·가족·SNS·광고 문구. 면접장 자기소개엔 부적합
구직자 (gujikja)완전 중립, 딱딱함뉴스·통계·정부 서류. 대화에서 쓰면 남 얘기처럼 들림
백수 (baeksu)가볍고 자조적, 남에게 쓰면 무례친한 사이 농담. “나 백수야”는 되고 “너 백수지?”는 위험
공시생 (gongsisaeng)중립공무원 시험 준비생만 가리킴. 범위가 더 좁음
이직 준비 중중립이미 직장이 있는 사람. 취준생과 바꿔 쓸 수 없음

특히 백수와의 거리감을 기억해 두면 좋다. 백수는 ‘아무것도 안 하는 상태’에 초점이 있고, 취준생은 ‘무언가를 준비하는 중’에 초점이 있다. 같은 사람을 두고도 어느 쪽으로 부르느냐에 따라 존중의 정도가 달라진다.

문화 배경 — 명절 밥상의 세 글자

이 단어가 왜 이렇게 무거운지는 한국의 채용 방식과 이어져 있다. 앞서 나온 공채 제도 때문에 취업 준비가 학교 시험처럼 시기와 절차를 갖추게 됐다. 서류(자기소개서, 줄여서 자소서 jasoseo)를 쓰고, 인적성 검사를 보고, 면접을 몇 차례 거친다. 한 회사에 지원해서 결과가 나오기까지 두세 달이 걸리고, 그동안 다른 회사에도 같은 과정을 반복한다. 그래서 취업 준비는 며칠의 구직 활동이 아니라 몇 년의 ‘생활’이 되고, 그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생’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드라마도 이 정서를 오래 다뤄 왔다. 예를 들어 tvN 드라마 《미생》(2014)은 정규직이 되지 못한 인턴과 계약직의 시선으로 회사를 그린 작품인데, 방영 당시 취업 준비생과 사회 초년생들의 공감을 크게 얻었다. 화려한 성공담 대신 ‘아직 아무것도 확정되지 않은 사람’의 하루를 보여 줬기 때문이다. 취준생이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온도도 정확히 그 지점에 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이 단어를 남에게 쓸 때 목소리를 낮춘다. 명절에 어른들이 던지는 “올해는 어떻게 됐니”라는 질문이 젊은 세대에게 얼마나 부담스러운지는 이미 사회적 농담이 되었고, 명절에 아예 고향에 내려가지 않는 취준생 이야기도 흔하다. 한국어 학습자로서 이 단어를 배울 때, 뜻보다 먼저 익혀야 할 것은 이 조심스러움이다. 상대가 먼저 꺼내면 자연스럽게 받아 주고, 내가 먼저 묻지는 않는 것 — 그것이 이 세 글자를 제대로 쓰는 법이다.

오늘의 퀴즈

대학 동창 모임에서 5년 만에 만난 친구가 있습니다. 아직 취업을 못 했다는 이야기를 어렴풋이 들었습니다. 가장 자연스럽고 예의 있는 말은 무엇일까요?

① 너 아직 취준생이지? ② 요즘 어떻게 지내? 얼굴 좋아 보인다. ③ 취준생 생활 힘들지? 언제까지 할 거야?

정답: ②

①과 ③은 상대가 아직 취업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내가 먼저 확정해서 꺼내는 말입니다. 특히 ③의 “언제까지 할 거야”는 걱정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압박이 됩니다. ②처럼 근황을 열어 두고 물으면, 상대가 스스로 “나 아직 취준생이야”라고 말할지 말지를 고를 수 있습니다. 이 단어는 본인이 꺼낼 때 가장 편안하게 놓이는 말입니다.


이 글의 단어 뜻풀이와 예문은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krdict.korean.go.kr)에서 가져왔으며, 해당 부분(번역 포함)은 CC BY-SA 2.0 KR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배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