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선동 — 골목 하나 들어섰을 뿐인데 기와지붕이 내려온다
익선동
**익선동 (Ikseon-dong)**은 서울 종로구에 있는 동네 이름으로, 1920~30년대에 지은 작은 한옥 백여 채가 좁은 골목을 끼고 남아 있는 서울 도심의 옛 주택가라는 뜻이다. 지금은 그 한옥들이 카페와 밥집, 술집으로 바뀌어 주말이면 골목이 사람으로 꽉 찬다.
지하철 종로3가역에서 나오면 처음엔 좀 당황스럽다. 큰길에는 오래된 상가와 약국, 금은방이 늘어서 있고 한옥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 사이 어디쯤 있는 폭 2미터짜리 골목으로 한 발 들어서는 순간, 갑자기 기와지붕이 머리 위로 낮게 내려온다. 익선동에 처음 가 본 사람들이 하나같이 “여기 이런 데가 있었어?” 하는 이유다.
그래서 한국 사람에게 익선동은 그냥 행정구역 이름이 아니다. “익선동 갈래?”라는 말은 지도 위의 좌표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한옥 골목 걷다가 커피 한 잔 하고 사진 좀 찍고 저녁엔 술 한잔하자에 가까운 초대다. “삼청동 갈래?”, “연남동 갈래?”도 똑같은 방식으로 쓰인다. 동네 이름 하나가 그날 하루의 분위기를 통째로 지시하는 것이다.
발음도 짚고 가자. 익선동은 글자 그대로 [익선동]이 아니라 **[익썬동]**으로 소리 난다. 받침 ㄱ 뒤의 ㅅ이 된소리로 바뀌는, 한국어에서 아주 흔한 현상이다. 외국인 학습자가 [익선동]이라고 또박또박 발음하면 알아듣기는 하지만 어딘가 어색하게 들린다.
실제 대화로 보기
상황: 비가 조금 내리는 토요일 오후 세 시. 종로3가역 4번 출구 앞. 에밀리가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다.
에밀리: 야, 여기! 나 벌써 십 분 기다렸어. Hey, over here! I’ve already been waiting ten minutes.
준경: 미안미안. 근데 여기가 익선동 맞아? 나 그냥 종로3가인 줄 알았는데. Sorry, sorry. But is this really Ikseon-dong? I thought it was just Jongno 3-ga.
에밀리: 저 골목만 들어가면 바로야. 밖에서 보면 아무것도 없어 보이지? Just go into that alley and you’re right there. Looks like nothing from the outside, right?
준경: 와, 대박. 나 여기 이십 년 전에 와 봤는데 그땐 진짜 그냥 오래된 동네였거든. Wow, no way. I came here twenty years ago and back then it was honestly just an old neighborhood.
에밀리: 그치. 근데 익선동 골목 좁으니까 우산 좀 접어. 사람 지나가야 돼. Right. But the Ikseon-dong alleys are narrow, so fold up your umbrella. People need to get past.
준경: 아 진짜 좁다. 이거 두 명이 겨우 지나가네. Oh, it really is narrow. Two people can barely squeeze through.
이렇게 쓰면 어색합니다
지명은 문법을 틀리기 어려운 말이지만, 자리를 잘못 고르는 경우는 자주 있다.
✗ (택시에서) 기사님, 익선동이요. ✓ (택시에서) 기사님, 종로3가역 4번 출구요. / 낙원상가 앞에서 내려 주세요. → 골목이 좁아 차가 들어가지 못한다. 동 이름만 대면 기사도 어디에 세워야 할지 애매해진다. 서울에서 택시를 탈 때는 동 이름보다 큰 건물이나 지하철 출구 번호를 말하는 쪽이 서로 편하다.
✗ 익선동은 조선시대 모습 그대로 보존된 마을이라면서요? ✓ 익선동 한옥은 1920~30년대에 새로 지은 집들이라면서요? → 왕이나 양반이 살던 옛집이 아니라, 근대에 서민용으로 지어서 판 집들이다. “조선시대 그대로”라고 하면 현지인은 살짝 정정하고 싶어진다.
상황별 활용 예문
1) 주말 약속을 잡을 때
이번 주 토요일에 익선동 갈래? 한옥 개조한 카페 많대. (ibeon ju toyoire Ikseon-dong gallae? hanok gaejohan kape mantae.) 이번 주 토요일에 익선동 갈래? 한옥을 고쳐 만든 카페가 많대.
친구끼리 반말로 던지는 가장 흔한 형태다. ”~ 갈래?”는 부담 없는 제안이라 거절해도 서로 민망하지 않다. 참고로 익선동은 골목이 좁아서 주말 오후 두세 시가 가장 붐빈다. 사진을 편하게 찍고 싶으면 평일 낮이나 저녁 여덟 시 이후가 낫다.
2) 회사에서 저녁 자리를 정할 때
저녁은 익선동 쪽에서 할까요? 종로3가역에서 걸어서 오 분이에요. (jeonyeogeun Ikseon-dong jjogeseo halkkayo? Jongno-samga-yeogeseo georeoseo o bunieyo.) 저녁은 익선동 쪽에서 할까요? 종로3가역에서 걸어서 5분이에요.
“익선동 쪽”처럼 -쪽을 붙이면 “정확히 익선동 안은 아니어도 그 근처”라는 여유가 생긴다. 장소를 제안할 때 아주 유용한 표현이다.
3) 한국에 온 친구에게 코스를 추천할 때
창덕궁 보고 나서 익선동까지 걸어가면 딱 좋아요. (Changdeokgung bogo naseo Ikseon-dongkkaji georeogamyeon ttak joayo.) 창덕궁 보고 나서 익선동까지 걸어가면 딱 좋아요.
실제로 창덕궁에서 익선동까지는 걸어서 십 분 정도다. “딱 좋다”는 “양이나 정도가 정확히 알맞다”는 뜻으로, 코스를 추천할 때 한국 사람들이 정말 자주 쓴다.
존댓말·반말과 비슷한 표현
익선동은 지명이라 그 자체는 높임과 낮춤이 없다. 말투는 뒤에 붙는 동사에서 갈린다.
- 반말: 익선동 가자. (Ikseon-dong gaja.)
- 존댓말: 익선동 가실래요? (Ikseon-dong gasillaeyo?)
한국에서 “한옥 동네”라고 하면 후보가 여럿이라 자주 헷갈린다. 차이는 이렇다.
| 표현 | 온도·강도 | 쓰는 자리 |
|---|---|---|
| 익선동 (Ikseon-dong) | 좁고 촘촘, 밤에 더 붐빈다 | 저녁 약속·데이트. 카페와 술집이 섞여 있다 |
| 북촌한옥마을 (Bukchon Hanok Maeul) | 넓고 조용, 낮 중심 | 사진·산책. 주민이 실제로 사는 동네라 밤엔 조용하다 |
| 서촌 (Seochon) | 느슨하고 생활감이 있다 | 책방·작은 밥집. 관광지 느낌이 가장 덜하다 |
| 전주한옥마을 (Jeonju Hanok Maeul) | 넓고 본격 관광지 | 전주 여행. 서울이 아니다 — 가장 많이 헷갈리는 곳 |
문화 배경 — 익(益) 자에 담긴 이름과 골목을 지은 사람
익선동의 한자는 益善洞이다. 넉넉할 익(益)에 착할 선(善) —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사자성어 **다다익선(多多益善)**에 들어가는 바로 그 두 글자다. 이름은 조선시대 이 일대에 있던 익동(益洞)과 정선방(貞善坊)에서 한 글자씩 따 왔다고 전해진다.
지금 남아 있는 한옥들은 조선시대 집이 아니다. 1920~30년대, 일제강점기 서울에 일본식 주택이 빠르게 늘어나던 시기에 지어진 도시형 한옥이다. 건축업자 정세권이 큰 필지를 잘게 쪼개 작은 한옥을 여러 채 찍어내듯 지어서 조선 사람들에게 팔았다. 오늘날로 치면 일종의 대량 공급 주택이었던 셈이다. 골목이 유난히 좁고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도 그래서다 — 처음부터 관광객이 걸어 다니라고 만든 길이 아니라, 최대한 많은 사람이 살도록 계산해서 남긴 통로였다.
이 동네는 2000년대에 재개발 계획에 오르내리며 오랫동안 시간이 멈춰 있었다. 그러다 2010년대 후반부터 젊은 사장들이 낡은 한옥을 하나씩 고쳐 가게를 열면서 지금의 모습이 됐다. 지붕은 옛것인데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내부는 완전히 현대식인 집이 많은 것도 그런 사정 때문이다. 드라마와 예능 촬영지로도 자주 나와서, 한국 콘텐츠를 보다가 “저 좁은 골목 어디지?” 싶었다면 익선동일 가능성이 꽤 높다.
크기는 생각보다 작다. 천천히 걸어도 이십 분이면 골목을 한 바퀴 돈다. 그래서 익선동만 목표로 가면 조금 허무하고, 창덕궁이나 종묘, 광장시장과 묶어서 반나절 코스로 짜는 편이 훨씬 낫다.
오늘의 퀴즈
한국 친구가 “이번 주말에 익선동 가자”라고 했습니다. 이 말에 가장 가까운 뜻은?
- 조선시대 궁궐을 구경하러 가자
- 한옥을 고쳐 만든 카페와 밥집이 모인 좁은 골목에 놀러 가자
- 기차 타고 전주 한옥마을에 가자
정답: 2번. 익선동은 서울 종로구에 있는 근대 한옥 동네이고, “익선동 가자”는 그 골목에서 카페와 식당을 돌며 놀자는 제안이다. 1번은 창덕궁·경복궁 같은 고궁, 3번은 전라북도 전주에 있는 전주 한옥마을이다. 셋 다 한옥이 나오지만 서로 완전히 다른 곳이다.
이 글의 단어 뜻풀이와 예문은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krdict.korean.go.kr)에서 가져왔으며, 해당 부분(번역 포함)은 CC BY-SA 2.0 KR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배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