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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 — 이름을 모르는 사람을 부르는 세 글자

저기요

**저기요 (jeogiyo)**는 이름이나 호칭을 모르는 상대를 정중하게 불러 세울 때 쓰는 말로, 영어의 “Excuse me”에 가장 가까운 표현이다. 식당에서 주문을 받으러 오지 않는 직원을 부를 때, 길에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을 걸 때, 앞사람이 지갑을 떨어뜨린 걸 봤을 때 — 한국에서 하루를 보내면 이 세 글자를 한 번도 듣지 않고 지나가기가 어렵다.

그런데 이 말은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가장 늦게 입에 붙이는 말이기도 하다. 문법이 어려워서가 아니다. **저기요 (jeogiyo)**는 두 글자짜리 지시어에 존댓말 어미 하나를 붙인, 문법적으로는 첫 주에 배우는 수준의 말이다. 어려운 건 문법이 아니라 행동이다. 모르는 사람을 향해 소리를 내어 부른다는 것 자체가 낯설어서, 많은 학습자가 식당에서 메뉴판만 십 분씩 들여다본다.

뜻과 뉘앙스

**저기요 (jeogiyo)**의 쓰임은 크게 두 갈래다.

첫째는 부르기다. 이름을 모르는 사람의 시선을 내 쪽으로 끌어오는 신호다. 여기에는 예의를 지키겠다는 뜻이 이미 들어 있다. 끝의 ‘요’가 존댓말 표지이기 때문에, 이 말을 쓰는 순간 상대를 함부로 대하지 않겠다는 선을 그은 셈이 된다. 그래서 성인이 처음 보는 성인에게 쓰기에 가장 안전한 기본값이다.

둘째는 가벼운 제동이다. 상대의 말이나 행동이 선을 넘었을 때, 곧바로 항의하지 않고 한 박자 세우는 용도로 쓴다. 저기요,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요. (jeogiyo, geugeon jom anin geot gatteundeyo.) 처럼 문장 앞에 놓이면 “잠깐, 짚고 넘어갑시다”에 가깝다.

같은 세 글자인데 뜻을 가르는 건 억양이다. 뒤를 길게 늘여 올리면(저기요~) 부드러운 호출이고, 짧고 세게 끊어 떨어뜨리면(저기요!) 항의다. 한국 사람들은 이 차이를 배운 적이 없는데도 정확히 구별한다. 학습자에게 필요한 것도 뜻풀이보다 이 온도 감각이다.

실제 대화로 보기

상황: 점심시간이 막 지난 국밥집. 자리에 앉은 지 십 분이 넘었는데 아무도 주문을 받으러 오지 않는다.

준경: 야, 너 왜 아까부터 메뉴판만 보고 있어. 다 골랐다며. Hey, why have you been staring at the menu this whole time? You said you’d decided.

에밀리: 아니… 부르기가 좀 그래서. 다들 바빠 보이잖아. Well… it feels awkward to call them. They all look busy.

준경: 그럴 땐 그냥 저기요 하면 돼. 봐 봐. 저기요~ 여기 주문이요! Just say “jeogiyo” in that case. Watch. “Excuse me — we’d like to order over here!”

에밀리: 헐, 목소리 완전 크다. 나도 저렇게 해야 돼? Whoa, that was loud. Do I have to do it like that?

준경: 크게 안 해도 돼. 눈만 마주치고 저기요 한 번이면 다 알아들으셔. You don’t have to be loud. Catch their eye and say “jeogiyo” once — they’ll get it.

에밀리: 알았어. 다음 집 가면 내가 부른다. Got it. Next place, I’m doing the calling.

이렇게 쓰면 어색합니다

✗ (복도에서 지도교수를 발견하고) 저기요, 교수님! ✓ (복도에서 지도교수를 발견하고) 교수님! 안녕하세요. → 저기요는 “당신이 누군지 모르겠지만”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는 말이다. 직함이나 이름을 아는 사람에게 쓰면 상대를 몰라본다는 뜻이 되어 무례하게 들린다. 부를 이름이나 직함이 있으면 그쪽이 언제나 낫다.

✗ (건너편에 있는 친구를 향해) 저기요! 나 여기 있어! ✓ (건너편에 있는 친구를 향해) ! 나 여기 있어! → 친한 사이에 저기요를 쓰면 갑자기 남처럼 구는 셈이라, 장난이거나 삐쳤다는 신호로 읽힌다. 실제로 한국 사람들은 친구가 서운하게 굴 때 일부러 “저기요~“라고 부르며 거리를 두는 시늉을 한다.

상황별 활용 예문

1. 식당에서 주문할 때 — 가장 흔한 자리다. 직원과 눈을 맞추고 한 번만 또렷하게 말하면 된다.

저기요, 여기 주문 좀 받아 주세요. (jeogiyo, yeogi jumun jom badajuseyo.) 저기요, 여기 주문 좀 받아 주세요.

한국 식당에는 테이블마다 호출 벨이 있는 곳이 많지만, 벨이 없거나 고장 난 가게도 여전히 많다. 그럴 때 목소리로 부르는 것은 무례가 아니라 정상적인 절차다. 오히려 부르지 않고 기다리기만 하면 “아직 안 정하셨나 보다” 하고 직원이 계속 지나친다.

2. 길에서 낯선 사람에게 알려 줄 때 — 급하지만 놀라게 하면 안 되는 상황이다.

저기요, 이거 떨어뜨리셨어요. (jeogiyo, igeo tteoreotteurisyeosseoyo.) 저기요, 이거 떨어뜨리셨어요.

뒤에서 갑자기 어깨를 두드리는 것보다 이 한마디를 먼저 던지는 편이 훨씬 안전하다. 상대가 돌아본 다음에 물건을 내밀면 된다.

3. 줄에서 새치기를 당했을 때 — 여기서는 억양이 짧고 단단해진다.

저기요, 여기 줄 서 있는데요. (jeogiyo, yeogi jul seo inneundeyo.) 저기요, 여기 줄 서 있는데요.

‘-는데요’로 끝맺어 말끝을 흐리는 것이 요령이다. “여기 줄 서 있어요!”보다 덜 공격적이면서 할 말은 다 한다. 한국어에서 항의는 문장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을수록 어른스럽게 들린다.

존댓말·반말과 비슷한 표현

표현온도·강도쓰는 자리
저기요 (jeogiyo)정중하지만 일상적모르는 사람 전반. 가장 무난한 기본값
여기요 (yeogiyo)조금 더 급하고 실용적식당·카페에서 직원을 부를 때. “이쪽으로 와 주세요”에 가깝다
실례합니다 (sillyehamnida)격식 있고 조심스러움길을 묻거나, 공적인 자리, 손윗사람에게
사장님 / 이모님 (sajangnim / imonim)친근하고 예우하는 느낌가게 주인이나 식당 직원. 단골집에서 자주 쓴다
야 / 어이 (ya / eoi)반말, 거칠다친구끼리만. 모르는 사람에게 쓰면 싸움이 난다

반말 대응형은 **저기 (jeogi)**다. “저기, 나 할 말 있어. (jeogi, na hal mal isseo.)”처럼 친구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낼 때 쓴다. 여기서 ‘요’ 하나가 빠지면 부르는 말이 아니라 뜸 들이는 말이 된다는 점이 재미있다.

문화 배경 — 이름 대신 자리를 부르는 말

**저기요 (jeogiyo)**는 ‘저기(저쪽, 저 자리)’ + ‘요(존댓말 어미)‘가 붙어 만들어진 말이다. 글자 그대로 풀면 사람을 부르는 게 아니라 장소를 부르는 말이다. 여기에 한국어의 사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영어의 “you”처럼 아무에게나 두루 쓸 수 있는 2인칭 대명사가 한국어에는 사실상 없다. ‘당신’이 있긴 하지만 부부 사이나 광고 문구, 아니면 시비를 걸 때 쓰이는 말이라 처음 보는 사람에게 쓰면 공기가 싸늘해진다. 그러니 상대를 직접 가리키지 않고 그 사람이 있는 자리를 부르는 우회로가 필요했던 것이다. 같은 원리로 **여기요 (yeogiyo)**는 내가 있는 이쪽 자리를 가리켜 “이리로 와 주세요”라는 뜻이 된다. 부르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저기와 여기가 갈릴 뿐, 발상은 하나다.

한국 드라마에서 남녀 주인공의 첫 만남이 이 말로 시작되는 장면이 유난히 많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아직 서로의 이름을 모르는 두 사람이 쓸 수 있는 유일한 호칭이 저기요이기 때문이다. 지하철에서 놓고 내린 물건을 들고 뛰어가며, 혹은 부딪혀 쏟아진 서류를 같이 주우며 던지는 그 한마디가 관계의 출발점이 된다. 이름을 알게 되는 순간 이 말은 곧바로 폐기된다 — 그래서 저기요는 관계가 시작되기 직전의 딱 한 시기에만 존재하는 말이기도 하다.

오늘의 퀴즈

다음 중 **저기요 (jeogiyo)**를 쓰기에 가장 알맞은 상황은?

  1. 카페에서 같이 온 친구를 부를 때
  2. 지하철 옆자리 승객이 우산을 두고 내리려 할 때
  3. 회의 중에 부장님께 질문을 드릴 때
  4. 전화를 걸어 어머니를 부를 때

정답: 2번

이름도 호칭도 모르는 사람에게 급히 말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라 저기요가 딱 맞는다. 1번은 이름을 부르거나 “야”면 충분하고, 3번은 “부장님, 질문 있습니다”처럼 직함을 불러야 한다. 4번은 “엄마”라고 부르면 될 자리에 저기요를 쓰면 남에게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정리하면 이렇다 — 부를 이름이나 직함이 있으면 그것을 쓰고, 없을 때만 저기요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