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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장 (jeontong sijang) — 값보다 덤이 먼저 오가는 자리

전통시장

전통시장 (jeontong sijang) 은 오래전부터 한 동네에 자리 잡은 상인들이 골목마다 작은 점포를 열고,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얼굴을 맞대고 값을 흥정하며 물건을 사고파는 재래식 시장이라는 뜻이다. 회사 하나가 세운 커다란 매장이 아니라, 개인 상인 수십·수백 명이 각자 한 칸씩 들어와 이룬 시장을 가리킨다.

한국에 오면 이 단어를 아주 자주 보게 된다. 관광 안내 책자에도 있고, 지하철역 출구 표지판에도 있고, 저녁 뉴스에도 나온다. 그런데 정작 한국 사람끼리는 이 말을 거의 쓰지 않는다. 친구에게 “나 전통시장 갔다 올게”라고 하면 어딘가 딱딱하고, 뉴스 앵커 흉내 같다. 오늘 다룰 것은 바로 그 간극이다 — 뜻은 쉬운데 자리를 가리는 말이다.

글자를 하나씩 뜯어보면 전통(傳統, 예로부터 이어져 온 것) + 시장(市場,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다. ‘시장’만으로도 뜻은 충분한데 앞에 ‘전통’이 붙는 순간, 이 말은 단순한 장소 이름이 아니라 분류어가 된다. 무엇과 견주는 분류어인가 하면 대형마트·백화점·온라인 쇼핑이다. 그래서 ‘전통시장’이라는 말이 나오는 자리에는 거의 항상 그 반대편이 함께 있다. “마트 말고 전통시장에서 사세요”, “전통시장을 살립시다” 같은 식이다.

뉘앙스는 두 겹이다. 하나는 따뜻함이다 — 북적이는 사람, 튀김 냄새, 값을 깎아 주며 웃는 상인. 다른 하나는 조금 무거운 쪽인데, ‘보호하고 살려야 할 대상’이라는 정책적인 어감이다. 이 두 번째 결 때문에 이 단어는 친구 사이의 가벼운 대화보다 공적인 말자리에 더 잘 어울린다.

실제 대화로 보기

상황: 추석을 앞둔 토요일 아침, 동네 시장 입구. 두 사람이 장바구니를 하나씩 들고 서 있다.

준경: 야, 여기서부터는 카트 못 들어가. 장바구니 하나씩 들자. Hey, carts can’t get in from here. Let’s each take a basket.

에밀리: 나 이런 데 진짜 오랜만이야. 전통시장은 사람 구경이 반이잖아. It’s been ages since I’ve been somewhere like this. Half the fun of a traditional market is watching the people.

준경: 그치. 근데 오늘은 나물이랑 전 부칠 재료만. 딴 데 새지 마. Right. But today it’s just the greens and stuff for the jeon. Don’t wander off.

에밀리: 어? 근데 저 집 튀김 냄새 뭐야… 사장님! 이거 만 원어치요! 덤 좀 주세요! Huh? But what is that fried-food smell over there… Sir! Ten thousand won’s worth of this! Throw in a little extra!

준경: 봐, 벌써 샜잖아. 이래서 너랑 전통시장 오면 시간이 두 배 걸려. See, you already wandered off. This is why coming to a traditional market with you takes twice as long.

에밀리: 대신 저녁거리 나왔잖아. 이 맛에 시장 오는 거지. But now we’ve got dinner. This is why you come to the market.

마지막 대사를 보자. 에밀리는 앞에서는 ‘전통시장’이라고 했지만, 감정이 실린 마지막 문장에서는 그냥 시장 (sijang) 이라고 한다. 한국 사람의 입도 정확히 이렇게 움직인다.

이렇게 쓰면 어색합니다

✗ (친구에게 문자로) 나 지금 전통시장 갔다 오는 길이야. ✓ (친구에게 문자로) 나 지금 시장 갔다 오는 길이야. → 문법은 완벽하다. 다만 ‘전통시장’은 뉴스·행정·관광 안내처럼 공적인 자리의 말이라, 친구끼리 쓰면 보도자료를 읽는 것처럼 딱딱하게 들린다. 일상에서는 그냥 ‘시장’이다.

✗ 어제 서울 남대문 전통시장에 갔어요. ✓ 어제 서울 남대문시장에 갔어요. → ‘전통시장’은 개별 시장의 이름이 아니라 종류를 가리키는 상위 말이다. 광장시장·남대문시장·통인시장은 모두 전통시장이지만, 이름을 부를 때는 ‘○○시장’이라고 한다. “남대문시장 같은 전통시장”처럼 종류를 설명할 때만 함께 쓴다.

상황별 활용 예문

1. 한국에 오는 친구에게 여행 조언을 할 때 — 이 단어가 가장 자연스러운 자리다. 상대가 외국인이면 ‘시장’보다 ‘전통시장’이 오히려 친절하다. 어떤 종류의 장소인지가 단어 안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서울 오시면 전통시장 한 곳은 꼭 가 보세요. 마트에는 없는 게 많거든요. (Seoul osimyeon jeontong sijang han goseun kkok ga boseyo. Mateue-neun eomneun ge mantageodeunyo.)

2. 뉴스나 공지에서 — 이 말의 본거지다. 정책, 할인 행사, 상품권 이야기에는 예외 없이 이 단어가 쓰인다.

정부가 추석을 앞두고 전통시장 상품권 할인율을 높였습니다. (Jeongbuga chuseogeul apdugo jeontong sijang sangpumgwon halinyureul nopyeotseumnida.)

3. 세대 차이를 말할 때 — 마트와 나란히 놓고 견주는 문장에서는 일상 대화에서도 ‘전통시장’이 자연스럽다. 비교 대상이 있으면 분류어가 제 일을 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아직도 마트보다 전통시장을 더 편해하세요. (Eomeoni-neun ajikdo mateuboda jeontong sijang-eul deo pyeonhaehaseyo.)

존댓말·반말과 비슷한 표현

‘전통시장’은 사물의 이름이라 그 자체에는 높임말과 반말이 따로 없다. 말의 높낮이는 함께 쓰는 동사가 정한다. 어른께는 “시장에 다녀오겠습니다 (sijange danyeoogetseumnida)”, 친구에게는 “시장 갔다 올게 (sijang gatda olge)“가 된다. 대신 이 단어는 어느 자리에서 쓰느냐에 따라 온도가 크게 달라지므로, 비슷한 말들을 나란히 놓고 보는 편이 훨씬 쓸모 있다.

표현온도·강도쓰는 자리
전통시장 (jeontong sijang)중립·다소 공식적뉴스·행정·관광 안내. 외국인에게 설명할 때
시장 (sijang)가장 일상적가족·친구와의 대화. “시장 갔다 올게”
재래시장 (jaerae sijang)살짝 낡은 느낌예전의 공식 용어. 지금도 통하지만 어감이 오래됐다
오일장 (oiljang)정겹고 지역적닷새마다 서는 장. 시골·관광 이야기
마트 (mateu)중립·현대적대형마트. ‘전통시장’의 짝이 되는 대비어

문화 배경 — 덤이라는 셈법

이 단어에는 이름이 바뀐 내력이 있다. 예전에는 ‘재래시장’이 공식 용어였다. ‘재래(在來)‘는 ‘예로부터 있어 온’이라는 뜻이니 틀린 말이 아니지만, 실제로는 ‘낡았다’는 인상을 주었다. 그래서 2009년 관련 법률의 이름이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으로 바뀌면서 ‘전통시장’이 공식 명칭으로 자리 잡았다. 같은 장소를 두고 부르는 이름 하나를 바꾼 것인데, ‘낡은 곳’에서 ‘지켜야 할 곳’으로 어감이 통째로 옮겨 갔다.

실제로 가 보면 마트와 가장 다른 점은 값이 아니라 셈법이다. 여기서는 값을 깎는 것보다 얹어 받는 쪽이 자연스럽다. 그래서 배워 갈 단어가 덤 (deom) 이다 — 값을 치른 뒤 상인이 한 줌 더 얹어 주는 것. “깎아 주세요 (kkakka juseyo)“보다 “좀 많이 주세요”나 “덤 좀 주세요”가 훨씬 흔하고, 상인도 그쪽을 반긴다. 문 닫을 시간에 남은 물건을 싸게 넘기는 것은 떨이 (tteori) 라고 한다.

도시의 상설 시장 말고 시골에는 오일장이 있다. 3일과 8일, 5일과 10일처럼 닷새마다 한 번씩 장이 서는 방식이다. 장날 아침이면 조용하던 읍내에 갑자기 천막이 늘어서고, 해가 기울면 그대로 사라진다.

여행자에게 유명한 곳은 서울 광장시장(빈대떡과 김밥), 통인시장(엽전을 사서 반찬을 담는 도시락), 남대문시장 정도다. 전통시장에서만 쓸 수 있는 온누리상품권이라는 상품권도 있는데, 명절이면 할인 판매를 한다는 뉴스가 꼭 나온다.

드라마에서 시장은 ‘살 것이 있는 곳’보다 ‘사람이 얽히는 곳’으로 자주 그려진다.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끼리 반찬을 나르던 1980년대 동네를 그린 《응답하라 1988》(tvN, 2015)이 대표적인데, 이 작품에서 장 보는 장면은 물건을 사는 장면이 아니라 안부를 묻는 장면에 가깝다. 한국 사람이 ‘전통시장’이라는 말에서 떠올리는 온도가 대체로 그렇다.

오늘의 퀴즈

친구에게 보내는 카카오톡 메시지로 가장 자연스러운 것은?

  1. 나 지금 전통시장 갔다 오는 길이야.
  2. 나 지금 시장 갔다 오는 길이야.
  3. 나 지금 재래시장 갔다 오는 길이야.

정답은 2번. 세 문장 모두 문법은 맞지만, 1번은 뉴스 문장처럼 딱딱하고 3번은 어감이 오래됐다. ‘전통시장’은 마트와 견주거나 외국인에게 설명할 때 빛나는 말이고, 친구에게는 그냥 ‘시장’이면 충분하다. 단어의 뜻만 아는 사람과 자리까지 아는 사람의 차이가 바로 여기서 갈린다.

이 글의 단어 뜻풀이와 예문은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krdict.korean.go.kr)에서 가져왔으며, 해당 부분(번역 포함)은 CC BY-SA 2.0 KR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배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