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글

노답 (nodap) — 답이 없을 때 한국인이 딱 두 글자로 끊는 말

노답 (nodap)은 ‘답이 없다’를 줄인 신조어로, 무엇을 어떻게 해 봐도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시험지를 받아 들었는데 풀 수 있는 문제가 하나도 없을 때의 그 막막함 — 노답은 그 감각을 상황 전체에 옮겨 붙인 말이다.

지하철이 20분째 서 있는데 안내 방송은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만 반복할 때, 장마가 2주째 이어져 빨래에서 쉰내가 날 때, 조별 과제 단톡방에 사흘째 아무도 대답하지 않을 때. 한국 사람들은 이런 순간에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짧게 한마디 던지고 만다. ‘이거 진짜 노답이다.‘

노답

노답은 두 조각으로 되어 있다. 영어 no와 한자어 답(答)이다. ‘답이 없다’라는 한 문장을 두 글자로 잘라 낸 셈인데, 이 자르는 방식 자체가 말의 성격을 보여 준다. 노답은 분석하는 말이 아니라 판정하는 말이다. 왜 안 되는지 설명하지 않고, 안 된다고 선언한 뒤 대화를 닫아 버린다.

그래서 온도가 높다. 뜻이 거의 같은 ‘답이 없다 (dabi eopda)‘가 한숨이라면, 노답은 서류를 덮고 손을 터는 몸짓에 가깝다. 앞에 ‘완전 (wanjeon)‘이나 ‘진짜 (jinjja)‘를 붙이면 강도가 한 번 더 올라간다.

쓰임은 명사와 같다. ‘노답이다’, ‘노답이야’, ‘완전 노답’처럼 서술어를 붙이기도 하고, ‘우리 조 노답.‘처럼 조사도 서술어도 없이 딱 끊어 쓰기도 한다. ‘노답 상황’, ‘노답 인생’처럼 뒤에 오는 말을 꾸미는 자리에도 들어간다. 문장을 짧게 자를수록 체념의 무게가 커지는 것이 이 말의 특징이다.

한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노답의 주어가 상황일 때와 사람일 때, 이 말의 무게는 완전히 달라진다. ‘이 날씨 노답이야’는 투정이지만, ‘너 노답이야’는 상대를 통째로 포기했다는 선언이다. 뒤쪽은 웃으며 말해도 관계를 벨 수 있는 말이라, 학습자라면 사람을 주어로 두는 쓰임은 알아만 두고 쓰지는 않는 편이 안전하다.

실제 대화로 보기

상황: 토요일 오후, 지하철 3번 출구 앞. 중고 거래로 자전거를 사기로 한 판매자가 삼십 분째 나타나지 않는다.

준경: 또 읽씹이야. 벌써 톡 열 개는 보냈는데. He’s leaving me on read again. I’ve already sent him like ten messages.

에밀리: 아까는 5분이면 온다며. 진짜 노답이다. He said five minutes a while ago. This is seriously hopeless.

준경: 전화도 안 받아. 좀만 더 기다려 볼까? He’s not picking up either. Should we wait a little longer?

에밀리: 자전거 마음에 들었잖아. 딱 십 분만 더. You did like that bike. Just ten more minutes.

준경: 아니야, 이건 노답이야. 이런 사람한테 사면 나중에 더 골치 아파. Nah, this is a lost cause. Buying from someone like this only means trouble later.

에밀리: 하긴. 그럼 붕어빵이나 먹으러 가자. Fair enough. Let’s go get some bungeoppang instead.

에밀리의 첫 번째 ‘노답’은 판매자를 향한 짜증이고, 준경의 두 번째 ‘노답’은 거래를 접겠다는 결론이다. 같은 두 글자가 감정에서 결정으로 넘어가는 자리 — 실제 대화에서 이 말은 대개 이렇게 두 번 나온다. 한 번은 터뜨리려고, 한 번은 끝내려고.

이렇게 쓰면 어색합니다

✗ (팀장에게 보고하며) 팀장님, 이번 분기 실적은 그냥 노답입니다. ✓ (팀장에게 보고하며) 팀장님, 이번 분기 실적은 단기간에 회복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 노답은 신조어인 데다 대책 없이 판정만 하는 말이라, 공식 보고 자리에서 쓰면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사람처럼 들린다. 윗사람 앞에서는 문장으로 풀어 설명하는 쪽이 안전하다.

✗ (친구가 진지하게 고민을 털어놓는 중에) 야, 너 진짜 노답이다. ✓ (친구가 진지하게 고민을 털어놓는 중에) 야, 그거 진짜 답 안 나오겠다. 어떡하냐. → 주어를 사람으로 두면 ‘너는 구제 불능’이라는 인신공격이 된다. 주어를 상황으로 옮기면 똑같이 답답해하면서도 내 자리는 상대 편이 된다.

상황별 활용 예문

1. 장마철, 사흘째 마르지 않는 빨래 앞에서

이번 장마는 진짜 노답이야. 건조기 사야 되나. (ibeon jangmaneun jinjja nodabiya. geonjogi saya doena.) This rainy season is seriously hopeless. Maybe I should just buy a dryer.

날씨처럼 사람이 손쓸 수 없는 대상에 쓸 때가 가장 안전하다. 아무도 상처받지 않고, 듣는 사람은 대개 ‘내 말이’라고 받아 준다.

2. 조별 과제 단톡방에서 답이 없을 때

우리 조 노답. 나 혼자 발표까지 해야 될 듯. (uri jo nodap. na honja balpyokkaji haeya doel deut.) Our team is a disaster. Looks like I’ll be doing the presentation alone too.

서술어 없이 명사로 끊는 전형적인 형태다. 짧게 자를수록 ‘이미 포기했다’는 뉘앙스가 강해진다. 다만 이 말이 조원들에게 그대로 전달되면 관계가 상하니, 실제로는 다른 친구에게 하는 하소연으로 쓰인다.

3. 월말에 카드 명세서를 확인하며

나 이번 달 카드값 노답이다. 약속 다 취소해야 돼. (na ibeon dal kadeugap nodabida. yaksok da chwisohaeya dwae.) My credit card bill this month is beyond saving. I have to cancel all my plans.

자기 사정에 쓰면 자책이 아니라 자조 섞인 농담이 된다. 상대가 웃으며 ‘나도’라고 받기 좋은, 부담 없는 쓰임이다.

존댓말·반말과 비슷한 표현

노답에는 사실상 존댓말 형태가 없다. ‘노답입니다’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격식 있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하면 문법이 아니라 태도가 튄다 — 대개 농담으로 받아들여진다. 정중해야 하는 자리에서는 ‘방법이 없습니다 (bangbeobi eopsseumnida)’, ‘대책이 서지 않습니다 (daechaegi seoji ansseumnida)‘로 바꾼다.

표현온도·강도쓰는 자리
노답 (nodap)세고 단정적. 포기 선언에 가깝다또래·SNS·게임 채팅. 윗사람과 공식 자리에는 안 씀
답이 없다 (dabi eopda)중간. 뜻은 같지만 문장으로 풀려 부드럽다또래는 물론 가벼운 직장 대화까지
대책이 없다 (daechaegi eopda)중립. 감정보다 판단에 가깝다회의·보고에서도 쓸 수 있다
어쩔 수 없다 (eojjeol su eopda)낮다. 비난이 전혀 없는 체념어디서나. 윗사람에게도 안전하다

같은 답답함이라도 상대가 윗사람이면 아래로 내려갈수록 안전해진다고 보면 된다.

문화 배경 — 노(no)가 붙는 말들

노답은 혼자 태어난 말이 아니다. 한국어 인터넷 신조어에는 영어 no를 앞에 붙여 부정을 만드는 한 무리가 있다. 노잼 (nojaem, no + 재미 → 재미없음), 노맛 (nomat, 맛없음), 노관심 (nogwansim, 관심 없음) 같은 말들이다. 두 글자로 끊어 치는 리듬이 채팅창과 잘 맞아서, 인터넷 커뮤니티와 게임 채팅을 통해 퍼진 뒤 지금은 예능 자막과 일상 대화에까지 내려왔다.

‘답’이 들어가는 신조어도 한 가족처럼 붙어 다닌다. 대표적인 것이 답정너 (dapjeongneo)다.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를 줄인 말로, 이미 원하는 답을 정해 놓고 질문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한국어에서 ‘답’은 시험 문제의 정답만이 아니라 상황의 출구, 관계의 해법까지 가리키는 넓은 말이라는 것을 이 두 신조어가 나란히 보여 준다. 출구가 없으면 노답이고, 출구가 이미 정해져 있으면 답정너인 셈이다.

한국 드라마에서 이 말은 주로 청춘물과 학원물에 등장한다. 취업 준비생이 몇 번째 탈락 문자를 받고 혼잣말하는 장면, 고등학생이 모의고사 등급을 확인하고 책상에 엎드리는 장면 같은 곳이다. 아직 어른의 언어를 다 갖추지 못한 인물이 상황을 요약할 때 가장 빨리 꺼내 드는 말이라, 캐릭터의 나이와 처지를 한 마디로 알려 주는 장치로도 쓰인다.

다만 이 말이 자주 들린다고 해서 아무 데서나 써도 되는 것은 아니다. 노답은 대화를 끝내는 말이다. 한국의 직장이나 어른들 앞에서는 상황을 끝내기보다 이어 가는 말이 요구되기 때문에, 이 표현은 또래끼리의 자리에 남겨 두는 것이 좋다. 듣고 알아듣는 것과 직접 쓰는 것 사이에 한 칸을 두면 된다.

오늘의 퀴즈

다음 중 노답을 써도 어색하지 않은 자리는 어디일까요?

① 면접에서 자기소개를 하며 — ‘제 학점은 노답입니다.’ ② 친구와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 ‘이 더위 진짜 노답이야.’ ③ 상사에게 기획안을 보고하며 — ‘이번 계획은 노답입니다.’ ④ 처음 뵙는 시부모님께 — ‘요즘 물가 노답이에요.’

정답: ②

또래와의 사적인 대화이고, 주어가 사람이 아니라 ‘더위’라는 상황이기 때문에 아무도 다치지 않는다. ①과 ③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신조어로 판정만 내리는 셈이라 무책임하게 들리고, ④는 아직 거리가 있는 손윗사람에게 쓴 반말투 신조어라 가볍게 비친다. 노답을 쓸지 말지 고민된다면 두 가지만 확인하면 된다. 상대가 또래인가, 그리고 주어가 사람이 아닌가. 둘 다 맞을 때만 꺼내면 실수할 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