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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실신 (tteoksilsin) — 완전히 뻗었다는 말, 한국인은 언제 쓸까

이사 짐을 다 옮긴 밤, 열두 시간 야근을 마친 새벽, 좋아하는 가수의 무대를 눈앞에서 본 직후 — 한국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이 내뱉는 말이 있다. **떡실신 (tteoksilsin)**이다. 떡실신은 힘이 완전히 바닥나 그 자리에 그대로 뻗어 버린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완전히 나가떨어졌다’라는 뜻이다. 진짜로 의식을 잃었다는 뜻이 아니라,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운도 남지 않았다는 걸 최대한 과장해서 그리는 말이다.

떡실신

떡실신은 실신 (silsin) 앞에 강조를 붙인 형태다. 실신은 한자어 失神, 즉 정신을 잃는 것이다. 여기에 붙은 ‘떡’은 떡의 맛과는 상관이 없고, 한국어에서 오래전부터 써 온 떡이 되다 (tteogi doeda) — 형체 없이 늘어져 버린 상태를 가리키는 말 — 의 그 ‘떡’이다. 즉 떡실신은 ‘떡이 될 정도로 정신을 놓았다’를 한 단어로 뭉친 신조어다.

쓰임은 크게 두 갈래다. 첫째는 체력 소진이다. 몸을 심하게 쓴 뒤 침대나 소파에 그대로 쓰러지는 장면에서 쓴다. 둘째는 압도다. 무언가가 너무 좋거나, 너무 세거나, 너무 웃겨서 정신을 못 차릴 때 쓴다. 한류 팬들 사이에서 자주 보이는 쪽이 이 두 번째다. 무대가 너무 좋아서 넋이 나갔다는 걸 ‘떡실신했다’로 표현한다.

활용형도 알아 두면 좋다. **떡실신하다 (tteoksilsinhada)**는 내가 뻗는 것이고, **떡실신시키다 (tteoksilsinsikida)**는 남을 뻗게 만드는 것이다. 게임이나 스포츠에서 상대를 압도했을 때 ‘떡실신시켰다’라고 한다. 여기에 요즘 말투인 떡실신 각 (tteoksilsin gak) — 곧 뻗을 것 같다는 예고 — 까지 붙기도 한다.

온도는 확실히 가볍고 웃기다. 힘들다는 말인데도 듣는 사람이 웃게 되는 말이라, 진심으로 위로를 구할 때보다는 친구끼리 엄살을 부릴 때 어울린다.

실제 대화로 보기

상황: 이사 당일 밤. 짐은 다 들어왔지만 박스는 하나도 못 풀었다. 두 사람이 거실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아 있다.

준경: 야… 나 진짜 못 움직이겠다. 손가락도 안 펴져. Hey… I seriously can’t move. I can’t even straighten my fingers.

에밀리: 나도. 아까 냉장고 옮길 때부터 떡실신 직전이었어. Same. I’ve been on the verge of collapsing ever since we moved the fridge.

준경: 저녁 뭐 시킬까? 치킨 어때? What should we order for dinner? How about chicken?

에밀리: 먹고는 싶은데 씹을 힘이 없어. 나 그냥 여기서 떡실신할래. I want to, but I don’t have the energy to chew. I’m just gonna pass out right here.

준경: 박스 위에서 자면 내일 허리 나가. 이불부터 찾자. If you sleep on the boxes you’ll wreck your back tomorrow. Let’s find the blanket first.

에밀리: 이불이 몇 번 박스더라… 아, 몰라. 내일의 내가 알아서 하겠지. Which box was the blanket in… ugh, whatever. Tomorrow-me will figure it out.

이렇게 쓰면 어색합니다

✗ (부장님께) 부장님, 어제 회식 때 떡실신하셨더라고요. ✓ (동료에게) 야, 어제 부장님 완전 취하셨더라. → 문법은 멀쩡하다. 문제는 손윗사람의 흐트러진 모습을 웃긴 신조어로 묘사했다는 점이다. 떡실신은 놀리는 뉘앙스가 섞여 있어서, 대상이 윗사람이면 존댓말 어미를 붙여도 무례하게 들린다.

✗ (응급실에서) 저기요, 이분 지금 떡실신하셨어요! ✓ (응급실에서) 저기요, 이분 지금 의식이 없어요! → 떡실신은 실제 의식 상실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과장된 농담이다. 진짜 위급한 상황에서 쓰면 상황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처럼 보인다. 이럴 땐 의식이 없다 (uisigi eopda), **쓰러지다 (sseureojida)**를 쓴다.

상황별 활용 예문

① 콘서트가 끝나고 나온 팬이 친구에게 (한류 팬들이 가장 많이 쓰는 자리다)

마지막 곡 무대 보고 나 완전 떡실신했잖아. Majimak gok mudae bogo na wanjeon tteoksilsinhaetjanha. That last performance completely wrecked me.

여기서는 지친 게 아니라 감동에 압도됐다는 뜻이다. 몸이 힘든 것과 마음이 벅찬 것을 같은 단어로 표현한다는 점이 재미있다.

② 등산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정상까지는 갔는데, 내려와서 차 안에서 떡실신했어. Jeongsangkkajineun gatneunde, naeryeowaseo cha ane­seo tteoksilsinhaesseo. I made it to the top, but I passed out cold in the car on the way back.

체력이 다 떨어진 전형적인 쓰임이다. ‘차 안에서’, ‘소파에서’처럼 뻗은 장소를 붙이면 훨씬 자연스러워진다.

③ 게임을 마친 뒤 친구에게 (남을 뻗게 만든 쪽)

어제 그 팀 우리가 떡실신시켰지. Eoje geu tim uriga tteoksilsinsikyeotji. We absolutely crushed that team yesterday.

이 형태는 승부가 일방적이었을 때만 쓴다. 아슬아슬하게 이긴 경기에 쓰면 허풍처럼 들린다.

존댓말·반말과 비슷한 표현

떡실신은 어미만 바꾼다고 존댓말이 되지 않는다. **떡실신했어요 (tteoksilsinhaesseoyo)**처럼 말할 수는 있지만, 어휘 자체가 캐주얼해서 상대는 여전히 또래나 편한 사이여야 한다. 회사 상사나 처음 만난 어른에게 자신의 피로를 전하려면 **많이 지쳤습니다 (mani jichyeotseumnida)**나 녹초가 되었습니다 (nokchoga doeeotseumnida) 쪽이 안전하다.

표현온도·강도쓰는 자리
떡실신 (tteoksilsin)아주 셈. 과장 + 유머또래·SNS. 격식 자리엔 안 씀
뻗다 (ppeotda)셈. 담백한 일상어편한 사이면 두루
녹초가 되다 (nokchoga doeda)중간. 점잖음어디서나. 윗사람에게도 가능
기절하다 (gijeolhada)상황에 따라 다름실제 의식 상실. 과장으로도 씀

네 표현을 한 문장에 넣어 보면 차이가 뚜렷하다. 하루를 마친 뒤 뻗었다고 하면 그냥 쓰러져 잤다는 사실 전달이고, 녹초가 됐다고 하면 어른스럽게 피로를 말한 것이고, 떡실신했다고 하면 듣는 사람이 피식 웃는다.

문화 배경 — 방전된 몸을 말로 그리는 법

한국어에는 지친 몸을 사물에 빗대는 말이 유난히 많다. 몸이 축 늘어졌다는 뜻으로 쓰는 녹초, 형태를 잃었다는 뜻의 떡이 되다, 그리고 물기 빠진 채소에 비유하는 **파김치가 되다 (pagimchiga doeda)**까지 있다. 떡실신은 이 오래된 비유 위에 한자어 실신(失神)을 얹어 만든, 비교적 젊은 말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예능 자막을 타고 퍼졌고, 지금은 세대를 가리지 않고 쓰이지만 여전히 문어체 글이나 공식 문서에서는 보기 어렵다.

한류 팬 입장에서 이 단어가 흥미로운 이유가 하나 더 있다. 한국의 팬 문화에서는 좋아하는 감정을 ‘무너지는 몸’으로 표현하는 관습이 있다. 심장이 아프다, 정신을 못 차리겠다, 그리고 떡실신했다 — 전부 좋다는 말의 다른 얼굴이다. 그래서 한국 팬들의 댓글에서 떡실신을 보면, 그 사람이 힘들다는 게 아니라 최고의 찬사를 보내고 있다고 읽으면 된다.

오늘의 퀴즈

다음 중 떡실신을 쓰기에 가장 알맞은 상황은?

  1. 병원에서 의사에게 환자의 상태를 설명할 때
  2. 처음 뵙는 상사에게 어제 야근이 힘들었다고 말할 때
  3. 친구와 열두 시간 동안 이사를 끝낸 뒤 바닥에 주저앉으며
  4. 회사 보고서에 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적을 때

정답은 3번이다. 떡실신은 편한 사이에서 힘든 상태를 웃기게 과장할 때 쓰는 말이다. 1번은 실제 의식 상실을 다루는 자리라 농담조가 어울리지 않고, 2번과 4번은 격식이 필요한 자리라 ‘많이 지쳤습니다’, ‘업무 강도가 높았습니다’ 쪽을 써야 한다.

오늘 밤 무언가를 끝내고 침대에 쓰러지게 된다면, 한국어로 한 문장만 남겨 보자. 나 오늘 떡실신 (na oneul tteoksilsin).

이 글의 단어 뜻풀이와 예문은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krdict.korean.go.kr)에서 가져왔으며, 해당 부분(번역 포함)은 CC BY-SA 2.0 KR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배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