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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나그네가 묵어가던 자리에서 세계가 모이는 언덕으로

이태원

**이태원 (Itaewon)**은 서울 용산구에 있는 동네 이름으로, 여러 나라 사람과 음식과 말이 한 골목에 섞여 있는 서울의 대표적인 국제 거리라는 뜻이다. 지도 위에서는 6호선 이태원역을 중심으로 한 작은 구역이지만, 한국 사람이 ‘이태원 갈까?‘라고 말할 때 그 말은 역 이름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케밥집 옆에 타코집이 있고 그 위층에 태국 식당이 있는 거리, 밤 열두 시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언덕으로 들어가자는 초대에 가깝다.

여행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에게 이 단어가 중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한국에 오는 외국인이 가장 먼저 외우는 동네 이름 중 하나이고, 한국 친구와 주말 계획을 짜다 보면 거의 반드시 한 번은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명은 뒤에 붙는 조사에 따라 문장이 통째로 달라진다. 이태원에 가요 (Itaewon-e gayo), 이태원에서 만나요 (Itaewon-eseo mannayo), 이태원으로 갈까요? (Itaewon-euro galkkayo?) — 이 셋을 구분할 수 있으면 다른 지명 백 개에도 그대로 쓸 수 있다.

말의 온도도 알아 둘 만하다. 같은 서울인데도 동네 이름마다 풍기는 냄새가 다르다. 강남은 돈과 세련, 홍대는 젊음과 인디 음악, 그리고 이태원은 이국적임과 다양성이다. 요즘은 바로 옆 한남동이나 언덕 위 경리단길, 해방촌까지 뭉뚱그려 ‘이태원 쪽’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많다. 그러니 한국 친구가 이태원에서 보자고 하면 정확히 어느 출구인지 한 번 더 확인하는 편이 좋다. 이 동네는 언덕이라, 500미터 차이가 15분 오르막이 되기도 한다.

실제 대화로 보기

상황: 토요일 저녁, 6호선 이태원역 3번 출구 앞. 다음 주에 캐나다에서 에밀리의 친구가 놀러 온다.

에밀리: 오빠, 나 다음 주에 친구 오는데 어디 데려가지? Hey, my friend’s visiting next week — where should I take her?

준경: 그냥 이태원 와. 여기서 한 바퀴 돌면 세계 일주야. Just come to Itaewon. One loop around here and you’ve been around the world.

에밀리: 근데 걔 한국 처음이야. 이태원은 너무 외국 같지 않아? But it’s her first time in Korea. Isn’t Itaewon a bit too foreign-feeling?

준경: 그럼 낮에 와. 큰길 말고 저 언덕 위로 올라가 봐. Then come during the day. Skip the main road and head up that hill.

에밀리: 아, 이슬람 사원 지나서 해방촌 쪽? 거기 골목은 진짜 옛날 서울이더라. Oh, past the mosque toward Haebangchon? Those alleys really are old Seoul.

준경: 어, 진짜 이태원은 거기 있어. 신발 편한 거 신고 와, 오르막 장난 아니야. Yeah, the real Itaewon is up there. Wear comfortable shoes — that hill is no joke.

이렇게 쓰면 어색합니다

이태원은 지명이라 그 자체에는 존댓말·반말이 없다. 대신 학습자가 자주 걸려 넘어지는 오해가 두 가지 있다.

✗ 한국어 연습하려고 주말마다 이태원에 가요. ✓ 이태원엔 친구 만나러 가고, 한국어 연습은 동네 시장에서 해요. → 이태원 큰길은 상대가 먼저 영어로 말을 거는 자리다. 한국어를 꺼낼 틈이 오히려 적다. 회화 연습이 목적이라면 언덕 위 골목이나 동네 시장 쪽이 훨씬 낫다.

✗ (한국인 친구에게 웃으며) 야, 이태원 핼러윈 그거 장난 아니었다며? ✓ (조심스럽게) 이태원 그 일 있고 나서 인파 관리가 많이 바뀌었더라. → 2022년 10월 이태원에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은 사고가 있었다. 한국 사람에게 ‘이태원 핼러윈’은 아직 웃으며 꺼내는 화제가 아니다. 동네 이야기를 피할 필요는 없지만, 그 일을 가벼운 농담으로 만드는 순간 대화의 온도가 뚝 떨어진다.

상황별 활용 예문

1. 약속을 잡을 때 — 한국 친구와 주말 계획을 짜는 중이다. 토요일에 이태원에서 볼까요? (Toyoire Itaewon-eseo bolkkayo?) 어떤 장소에서 무언가를 ‘하는’ 문장에는 -에서를 쓴다. 만나다, 먹다, 놀다, 마시다가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2. 택시나 길 안내에서 — 밤 열한 시, 택시를 잡았다. 이태원역 3번 출구 앞으로 가 주세요. (Itaewon-yeok sambeon chulgu apeuro ga juseyo.) 이태원은 큰길 하나가 1킬로미터 넘게 이어져서 ‘이태원이요’만으로는 부족하다. 역 이름과 출구 번호까지 말하는 것이 이 동네에서는 기본이다.

3. 감상을 말할 때 — 다녀온 뒤 친구에게. 이태원은 밤보다 낮이 더 좋더라고요. (Itaewon-eun bam-boda naji deo jotdeoragoyo.) -더라고요는 직접 겪어 보고 알게 된 사실을 전할 때 쓴다. 여행 후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어미다.

존댓말·반말과 비슷한 표현

지명 자체에는 높임이 없고, 문장 끝이 온도를 정한다. 친구에게는 이태원 가자 (Itaewon gaja), 처음 만난 사람이나 손윗사람에게는 **이태원에 가시겠어요? (Itaewon-e gasigesseoyo?)**처럼 쓴다.

서울의 다른 동네 이름과 견주어 보면 이태원이 어떤 자리를 차지하는지 더 뚜렷해진다.

표현온도·강도쓰는 자리
이태원 (Itaewon)이국적이고 북적임세계 각국 음식·바, 밤 약속. 넓게는 옆 동네까지
한남동 (Hannam-dong)조용하고 값비쌈미술관·편집숍·고급 주거. 바로 옆인데 결이 다르다
경리단길 (Gyeongnidan-gil)힙했다가 한풀 꺾인언덕 위 작은 가게 골목. 상권의 흥망을 말할 때
홍대 (Hongdae)젊고 시끌시끌20대·인디 음악·클럽

문화 배경 — 나그네가 묵어가던 자리

이름 끝의 ‘원(院)‘은 조선시대에 길 가던 나그네가 하룻밤 묵어가던 국가 운영 숙소를 가리킨다. 조치원, 사리원, 장호원처럼 ‘원’으로 끝나는 지명이 전국에 남아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이태원 역시 한양 도성에서 한강 나루로 내려가는 길목이라 외지 사람이 머물다 가는 자리였다. 앞의 ‘이태’가 어디서 왔는지는 설이 여럿이라 여기서 하나로 단정하지 않겠다. 다만 ‘머무는 사람의 동네’라는 성격만은 몇백 년째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 재미있다.

근현대의 이태원을 만든 것은 바로 옆 용산 기지다. 오랫동안 미군 기지가 자리 잡고 있었고, 그 담장 밖으로 영어 간판과 수입 물건, 각국 식당이 자연스럽게 모였다. 미군 사령부가 평택으로 옮겨 간 뒤에도 그때 쌓인 국제적인 결은 그대로 남았다. 1976년 언덕 위에 문을 연 서울중앙성원(한국 최초의 이슬람 사원) 주변으로는 지금도 할랄 식당과 향신료 가게가 이어진다. 남산 자락의 해방촌은 1945년 광복 이후 돌아온 동포들이 터를 잡으며 생긴 마을이고, 이름의 ‘해방’도 거기서 왔다. 지금은 오래된 계단 골목마다 작은 카페와 책방이 들어서 있다.

대중문화 속 이태원도 한 겹을 더한다. JTBC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2020)는 웹툰이 원작으로, 이태원의 작은 가게에서 시작해 거대 기업에 맞서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이 드라마 덕에 세계 각국 시청자가 이 동네 이름을 외웠다. 대중가요에서도 이태원은 오래전부터 ‘밤의 해방구’로 그려져 왔는데, UV의 〈이태원 프리덤〉(2011)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2022년 10월 29일, 핼러윈을 앞둔 좁은 골목에서 큰 참사가 있었다. 이 동네를 이야기할 때 한국 사람들의 표정이 한 번 굳는 이유다. 여행자로서 이곳을 즐기는 일과 그 기억을 존중하는 일은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

오늘의 퀴즈

다음 중 가장 자연스러운 문장은?

① 친구랑 이태원에 만나기로 했어요. ② 친구랑 이태원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③ 친구랑 이태원으로 만나기로 했어요.

정답은 ②. 만나다처럼 그 장소에서 벌어지는 행동에는 -에서를 쓴다. -에는 도착점(이태원에 가요), -으로는 방향(이태원으로 가요)을 나타낸다. 참고로 이태원은 받침 ㄴ으로 끝나므로 ‘로’가 아니라 ‘으로’가 붙는다.

이 글의 단어 뜻풀이와 예문은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krdict.korean.go.kr)에서 가져왔으며, 해당 부분(번역 포함)은 CC BY-SA 2.0 KR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배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