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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 이름이 붙는 바람, 한국의 여름을 흔드는 말

태풍

**태풍 (taepung)**은 주로 7~9월에 태평양에서 한국, 일본 등 아시아 대륙 동부로 불어오는, 거센 폭풍우를 동반한 바람이라는 뜻이다. 8월 중순의 한국에서 이 단어는 날씨 이야기가 아니라 일정 이야기에 가깝다. 뉴스 화면 아래에 굵은 글씨로 태풍의 이름이 뜨는 순간, 주말 제주 여행은 취소되고, 배달 앱에는 “기상 악화로 배달이 지연됩니다”가 뜨고, 단톡방에는 “우리 내일 어떡해?”가 올라온다. 편의점 진열대에서 생수와 라면이 먼저 빠지고, 아파트 게시판에는 “베란다 창문 단속 바랍니다”가 붙는다.

한국어 학습자가 이 단어를 처음 만나는 자리는 대개 뉴스지만, 실제로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자리는 사람들의 대화다. 그래서 뜻만 알아서는 부족하다. 이 말이 어떤 온도로 오가는지, 언제 진지해지고 언제 농담이 되는지를 알아야 한다.

태풍은 한자어 颱風이다. 그냥 센 바람이 아니라 이름을 가진 바람이라는 점이 핵심이다. 한국 기상청은 중심 부근의 최대 풍속이 일정 기준을 넘는 열대저기압에만 ‘태풍’이라는 이름을 붙여 발표한다. 그 아래 단계는 뉴스에서도 ‘열대저압부’라고 부르지 ‘태풍’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 사람에게 태풍은 공식적으로 선포된 재난의 어감을 가진다. 창밖에 바람이 아무리 세게 불어도, 기상청이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면 그건 태풍이 아니라 강풍이다.

이 어감 때문에 태풍은 비유로 옮겨 갈 때도 무게를 그대로 들고 간다. 연예계에 갑자기 나타나 판을 뒤집은 신인을 두고 “태풍의 눈이 됐다”고 하고, 조직을 흔든 사건을 “태풍이 지나갔다”고 정리한다. 작은 소동에 붙이면 과장으로 들리는 이유가 여기 있다.

국립국어원 사전으로 확인하기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은 태풍을 이렇게 풀이한다.

태풍 (명사) 주로 7~9월에 태평양에서 한국, 일본 등 아시아 대륙 동부로 불어오는, 거센 폭풍우를 동반한 바람.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여러 언어 번역도 함께 실려 있다.

[en] typhoon — The fierce wind accompanying a rainstorm, blown from the Pacific Ocean to the eastern part of the Asian continent such as Korea, Japan, etc., usually between July and September. [ja] たいふう【台風】 — 主に7月から9月にかけて太平洋から韓国や日本などのアジア大陸の東部に向かって近づいてくる、激しい暴風雨を伴う風。 [es] tifón — Viento acompañado de fuertes tormentas de lluvia que sopla en dirección este del continente asiático como Corea y Japón desde el Pacífico, generalmente entre julio y septiembre. [zh] 台风 — 主要指在7~9月,从太平洋刮到韩国、日本等亚洲大陆东部地区的伴随暴雨的狂风。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포르투갈어 번역은 사전에 실려 있지 않다. 참고로 옮기면 tufão이며, 이 한 줄은 사전 자료가 아니라 이 글의 자체 번역이다.)

뜻풀이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거센 폭풍우를 동반한”**이다. 태풍은 바람만 부는 현상이 아니라 비와 바람이 함께 오는 현상이다. 그래서 한국 뉴스에서 태풍 소식은 늘 “강풍”과 “호우”가 한 문장에 같이 등장한다.

사전에 실린 실제 사용 예문 가운데 다섯 개를 그대로 옮기고, 각각이 어떤 상황에서 나온 말인지 붙여 본다.

태풍이 가라앉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태풍이 가라앉다 (taepungi garaanda). 태풍의 세력이 약해져 잦아든다는 뜻이다. 한국어는 태풍의 소멸을 ‘사라지다’보다 ‘가라앉다’로 자주 표현한다. 들끓던 것이 아래로 내려앉는 그림이다.

태풍으로 쓰러진 가로수가 길에 가로놓여 있어서 통행이 불편하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태풍으로 (taepungeuro), 즉 ‘태풍 때문에’라는 원인 표현이다. 태풍이 지나간 다음 날 아침 도로 상황을 묘사하는 전형적인 문장이다. 실제로 한국의 태풍 피해 보도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장면이 쓰러진 가로수와 뜯긴 간판이다.

이번 태풍의 피해가 막심하다더군요.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어른들 사이의 대화체다. ‘-다더군요’는 남에게 들은 소식을 전할 때 쓰는 말투라, 뉴스를 보고 이웃과 나누는 이야기에 딱 맞는다. **피해가 막심하다 (pihaega maksimhada)**는 피해가 아주 크다는 뜻의 격식 있는 표현이다.

내일은 태풍의 간접적 영향으로 인해 전국적으로 비가 많이 오겠습니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일기예보의 문장 그 자체다. **태풍의 간접적 영향 (taepungui ganjeopjeok yeonghyang)**은 태풍이 직접 상륙하지는 않지만 그 주변 기류 때문에 비바람이 오는 경우를 가리킨다. 한국 뉴스에서 여름마다 반복되는 표현이라 통째로 외워 두면 좋다.

이 건물은 강고해서 태풍에도 끄떡없대요.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끄떡없다 (kkeutteogeopda)**는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태풍이 워낙 강한 것의 대명사라, 한국어에서 ‘태풍에도 끄떡없다’는 건물이나 사람의 튼튼함을 강조하는 관용적인 짝이 되었다.

실제 대화로 보기

상황: 금요일 저녁 김포공항 국내선 출발층. 제주행 비행기를 기다리던 중 결항 문자가 왔다.

준경: 에밀리야, 방금 문자 왔어. 우리 비행기 결항이래. Emily, I just got a text. Our flight’s been cancelled.

에밀리: 진짜? 아, 태풍 때문이지? 아침부터 뉴스에 계속 나오더라. Seriously? Ah, it’s because of the typhoon, right? It’s been all over the news since this morning.

준경: 응, 내일 새벽에 남해안으로 올라온대. 주말 내내 발 묶이는 거지 뭐. Yeah, it’s supposed to hit the south coast at dawn tomorrow. We’d be stuck there all weekend.

에밀리: 그럼 그냥 집에 가자. 태풍에 제주도 갇히는 것보단 낫지. Then let’s just go home. Better than getting trapped on Jeju in a typhoon.

준경: 야, 너 진짜 한국 사람 다 됐다. 나 같으면 미련 남아서 카운터라도 가 봤을 텐데. Hey, you’ve really become Korean. I’d still go ask at the counter, just in case.

에밀리: 15년 살면 알아. 태풍 오면 그냥 집에 있는 게 답이야. After fifteen years you just know. When a typhoon comes, staying home is the answer.

이렇게 쓰면 어색합니다

✗ 오늘 바람 진짜 세다. 완전 태풍이야. ✓ 오늘 바람 진짜 세다. 완전 태풍급이야. → 태풍은 기상청이 이름을 붙여 공식 발표하는 특정한 현상이라, 그냥 센 바람에 그대로 갖다 붙이면 과장으로 들린다. 비유로 쓸 때는 태풍급 (taepunggeup), **태풍 같다 (taepung gatda)**처럼 한 칸 물러서서 말한다.

✗ (피해 뉴스를 함께 보며) 태풍 덕분에 내일 휴교래요. ✓ (친구끼리) 태풍 때문에 내일 휴교래. / (어른 앞에서) 태풍으로 내일 휴교한다고 합니다. → **덕분에 (deokbune)**는 고마움을 나타내는 말이다. 사람이 다치고 집이 잠기는 재난에 붙이면, 남의 불행을 반기는 말로 들린다. 속으로 반가워도 입 밖으로는 ‘때문에’나 ‘-으로’를 쓴다.

상황별 활용 예문

상황 1 — 태풍 예보를 보고 약속을 미루는 메시지. 한국에서는 태풍 예보가 뜨면 약속을 먼저 미루는 쪽이 예의로 통한다. 상대가 먼저 말을 꺼내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내일 태풍이 온다고 하니까 약속은 다음 주로 미룰까요? (naeil taepungi ondago hanikka yaksogeun daeum juro miruIkkayo?) They say a typhoon is coming tomorrow — shall we push our plans to next week?

상황 2 — 태풍이 지나간 다음 날, 남해안에 사는 친구에게 안부를 묻는 전화. 태풍 다음 날 아침의 안부 인사는 한국에서 거의 의례에 가깝다.

어제 태풍 심했다던데, 그쪽은 괜찮았어? (eoje taepung simhaetdadeonde, geujjogeun gwaenchanasseo?) I heard the typhoon was bad yesterday — were you all right over there?

상황 3 — 회의에서 일정 조정을 제안하는 격식체. 직장에서는 ‘태풍’ 뒤에 ‘북상’, ‘영향권’, ‘상륙’ 같은 한자어를 붙여 쓰면 문장이 단정해진다.

태풍이 북상 중이라 금요일 현장 점검은 순연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taepungi buksang jungira geumyoil hyeonjang jeomgeomeun sunyeonhaneun geosi joketseumnida.) Since the typhoon is moving north, it would be better to postpone Friday’s site inspection.

존댓말·반말과 비슷한 표현

태풍은 사물의 이름이라 그 자체에 높임과 낮춤이 없다. 존댓말과 반말의 차이는 뒤에 붙는 서술어에서 갈린다. **태풍이 온대 (taepungi ondae)**는 친구에게, **태풍이 온다고 합니다 (taepungi ondago hamnida)**는 회의실에서 쓴다. 뉴스 앵커는 여기서 한 단계 더 올라가 **태풍이 북상하고 있습니다 (taepungi buksanghago itseumnida)**라고 말한다.

헷갈리기 쉬운 이웃 단어들을 견주면 이렇다.

표현온도·강도쓰는 자리
태풍 (taepung)가장 강함. 이름이 붙는 재난급기상 뉴스·일상 대화 모두. 비유로 쓸 땐 판을 뒤집을 만한 사건에만
폭풍 (pokpung)세지만 공식 이름은 없음실제 날씨보다 비유로 더 자주. “폭풍 성장”, “폭풍 검색”
돌풍 (dolpung)짧고 갑작스러움갑자기 뜬 신인에게 “돌풍을 일으켰다”
장마 (jangma)약하지만 아주 김. 바람은 없음6~7월에 길게 이어지는 비. 태풍과 계절이 겹치지만 다른 말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장마는 지겹고, 돌풍은 놀랍고, 폭풍은 세고, 태풍은 무섭다.

문화 배경 — 이름이 붙는 바람

한국에서 태풍이 특별한 이유는 이름 때문이다. 태풍에는 사람 이름처럼 고유한 명칭이 붙는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태풍위원회 회원국들이 각자 제출한 이름을 순서대로 돌려 쓰는 방식이라, 한국이 낸 이름(개미, 나리, 미리내 같은 순우리말)도 목록에 들어 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태풍을 “그 큰 바람”이 아니라 이름으로 기억한다.

피해가 유난히 컸던 태풍의 이름은 목록에서 영구히 빼 버린다. 다시 쓰지 않겠다는 뜻이다. 2002년의 루사, 2003년의 매미가 그렇게 퇴출된 이름이다. 특히 매미는 지금도 남부 지방 어른들에게 “매미 때”라는 시간 표시로 쓰인다. 사람들이 어떤 해를 태풍 이름으로 기억한다는 것 — 이게 이 단어가 한국어에서 갖는 무게다.

관용 표현 하나만 알아 두자. **태풍의 눈 (taepungui nun)**은 원래 태풍 한가운데의, 이상할 만큼 고요한 부분을 가리키는 기상 용어다. 여기서 비유가 나왔다. 논란의 한가운데 있는 사람, 소동의 중심에 선 인물을 두고 “그가 태풍의 눈이다”라고 한다. 정작 그 자리가 겉으로는 조용해 보인다는 뉘앙스까지 함께 실려 있어서, 단순히 ‘중심’이라고 말할 때보다 훨씬 그림이 선명하다.

한국 드라마에서 태풍은 인물들을 한곳에 가두는 장치로 자주 쓰인다. 태풍 때문에 배가 끊긴 섬, 통행이 막힌 시골집, 정전된 아파트에 어색한 두 사람이 남는다. 이런 회차에서는 대사보다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가 먼저 들리고, 인물들이 비로소 하지 못했던 말을 꺼낸다. 태풍이 지나간 다음 날 화면이 유난히 맑고 조용하게 열리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한국 이야기에서 태풍은 파괴이면서 동시에 정리이기도 하다.

오늘의 퀴즈

어제 태풍으로 남부 지방에 큰 피해가 났다는 뉴스를 회사 부장님과 함께 보고 있다. 마침 오늘 예정된 출장이 취소되어 속으로는 조금 반가운 상황이다. 이때 가장 자연스러운 말은?

  1. 부장님, 태풍 덕분에 출장이 취소됐네요.
  2. 부장님, 태풍으로 출장이 취소됐다고 합니다. 피해가 크다던데 걱정이네요.
  3. 부장님, 오늘 바람 완전 태풍이에요.
정답 보기

정답은 2번이다.

1번은 ‘덕분에’가 문제다. 사람들이 피해를 입은 재난에 고마움의 표현을 붙이면, 속마음이 그렇더라도 듣는 사람에게는 경솔하게 들린다. 원인을 말할 때는 ‘태풍으로’ 또는 ‘태풍 때문에’를 쓴다.

3번은 태풍의 무게를 잘못 쓴 경우다. 실제 태풍이 남부 지방을 지나간 바로 그날, 서울의 센 바람을 두고 ‘태풍’이라고 부르면 남의 피해를 가볍게 만드는 말이 된다. 굳이 말한다면 ‘태풍급’이 맞다.

2번처럼 사실을 먼저 전하고 피해를 걱정하는 한마디를 덧붙이는 것이 한국 직장에서 가장 안전하고 자연스러운 순서다.


이 글의 단어 뜻풀이와 예문은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krdict.korean.go.kr)에서 가져왔으며, 해당 부분(번역 포함)은 CC BY-SA 2.0 KR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배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