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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 (yuhaeng) — 머리 모양도 감기도 똑같이 '유행'한다

유행

**유행 (yuhaeng)**은 무엇이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어 사회 전체에 널리 퍼지는 것, 그리고 전염병이 널리 퍼지는 것을 함께 가리키는 말이라는 뜻이다. 한국에서 한 달만 살아 보면 이 단어를 하루에도 몇 번씩 듣게 된다. 미용실 의자에 앉으면 “요즘 이게 제일 유행이에요”라는 말을 듣고, 겨울에 출근하면 사무실 게시판에 “독감 유행, 마스크 착용 바랍니다”가 붙어 있다. 저녁에 친구를 만나면 “그 말 요즘 유행하는 거야?”라는 질문을 받는다.

머리 모양과 독감이 같은 단어를 쓴다는 게 처음에는 이상하게 들린다. 그런데 한국어에서 이 둘은 아주 자연스럽게 한 단어를 나눠 쓴다. 공통점이 하나 있기 때문이다 — 둘 다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 가며 번진다. 유행은 “좋다/나쁘다”를 말하는 단어가 아니라 “퍼져 있다”를 말하는 단어다. 이 감각만 잡으면 옷에도, 말에도, 노래에도, 감기에도 똑같이 쓸 수 있다.

품사는 명사지만 실제 대화에서는 세 가지 꼴로 더 자주 나온다. 유행이다 (yuhaengida) — “요즘 그게 유행이야”처럼 지금의 상태를 말할 때. 유행하다 (yuhaenghada) — “작년에 유행했던 노래”처럼 동사로 쓸 때. 유행을 따르다 (yuhaengeul ttareuda) / 유행을 타다 (yuhaengeul tada) — 사람이 그 흐름에 올라타는 쪽을 말할 때. 반대편 표현도 세트로 외워 두면 좋다. 유행이 지나다 (yuhaengi jinada), 더 구어적으로는 한물가다 (hanmulgada).

온도는 기본적으로 중립이다. 다만 문맥에 따라 살짝 기운다. “유행 따라가네”라고 하면 자기 취향 없이 남을 따라 한다는 가벼운 핀잔이 되고, “한때 유행이었지”라고 하면 이미 식었다는 아쉬움이 묻는다. 반대로 광고나 판매 현장에서는 “올해 유행이에요” 한마디가 곧 “이걸 사세요”라는 뜻으로 작동한다.

국립국어원 사전으로 확인하기

유행 「명사」

  1. 전염병이 널리 퍼짐. [en] outbreak — The state of an epidemic being widely spread. [ja] りゅうこう【流行】。はやり【流行り】 — 伝染病が世の中に広まること。 [es] propagación — Extensión de una enfermedad contagiosa. [zh] 流行 — 传染病广泛传播。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유행 「명사」 2. 무엇이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어 사회 전체에 널리 퍼짐. [en] fashion; trend — The state of something gaining popularity among people and being widely spread to an entire society. [ja] りゅうこう【流行】。はやり【流行り】 — 何かが広くもてはやされ、社会全体に広まること。 [es] moda — Puesta en boga de algo entre el público. [zh] 流行,时尚,时髦 — 某个事物受人欢迎,在整个社会广泛传播。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포르투갈어 뜻풀이는 사전에 실려 있지 않다. 참고용으로 우리가 직접 옮기면 ① propagação — o alastramento de uma doença contagiosa ② moda — algo que ganha popularidade e se espalha por toda a sociedade 정도가 된다. 이 두 줄은 사전 인용이 아니라 우리 번역이니 구분해서 봐 주시길.

사전이 함께 싣고 있는 실제 사용 예문을 원문 그대로 옮기고, 각각 어떤 자리에서 나온 말인지 붙여 둔다.

나는 유행가보다는 가곡이나 클래식 음악을 주로 듣지.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 **유행가 (yuhaengga)**는 그 시절에 널리 불리는 대중가요를 말한다. 음악 취향을 묻는 대화에서 자기 취향을 밝히는 문장이다. 말끝의 ‘-지’ 때문에 편한 사이의 반말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올 겨울 유행하는 감기는 어찌나 독한지 한 번 걸리면 이 주 이상을 간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 첫 번째 뜻(전염병)이다. **유행하는 감기 (yuhaenghaneun gamgi)**는 겨울마다 한국에서 정말 자주 듣는 말 묶음이다. 회사나 학교에서 서로 안부를 물을 때 그대로 쓸 수 있다.

학생들 사이에서 최고를 가리키는 ‘짱’이란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 말(언어)이 퍼지는 경우다. ‘-기 시작했다’가 붙어서 퍼지는 시작 시점을 짚고 있다. 신조어가 어떻게 번지는지 설명하는 글에서 전형적으로 나오는 문장이다.

요즘 가축 전염병이 유행이라네요.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 다시 첫 번째 뜻. ‘유행이라네요’는 들은 이야기를 전할 때 쓰는 말끝이라, 뉴스에서 본 소식을 이웃에게 옮기는 상황이 그려진다.

실제 대화로 보기

상황: 토요일 오후 동네 미용실. 커트 예약을 해 두고 나란히 앉아 순서를 기다리는 중.

에밀리: 어? 토요일인데 사람이 왜 이렇게 없어? Huh? It’s Saturday — why is it so empty in here?

준경: 요즘 독감 유행이잖아. 다들 밖에 나오기 싫은가 봐. The flu’s going around these days. I guess nobody feels like going out.

에밀리: 아 맞다. (잡지 넘기며) 야, 이 머리 어때? 이게 요즘 유행이래. Oh, right. (flipping through the magazine) Hey, how about this hairstyle? They say it’s the trend right now.

준경: 너 유행 따라갔다가 저번에 울었잖아. You followed a trend last time and ended up crying.

에밀리: 그건 앞머리였고! 이번엔 달라. That was the bangs! This time is different.

준경: 어, 그 말도 저번에 했어. Uh-huh. You said that last time too.

한 대화 안에서 두 가지 뜻이 다 나왔다. 준경의 첫 대사에서는 전염병이 퍼진다는 뜻, 에밀리의 두 번째 대사에서는 인기가 퍼진다는 뜻이다. 한국 사람들은 이 둘을 굳이 구분해서 의식하지 않는다. 문맥이 알아서 갈라 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쓰면 어색합니다

✗ (수술을 앞둔 친구 어머니께) 요즘 그 병이 유행이라면서요? ✓ (수술을 앞둔 친구 어머니께) 어머니, 얼른 나으셔야 할 텐데요. → ‘유행’의 전염병 뜻은 집단에 번지는 현상을 말하는 말이지, 눈앞의 한 사람이 앓는 병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게다가 유행이라는 단어 자체가 가볍고 세태를 관찰하는 온도라서, 아픈 당사자 앞에서 쓰면 남 일처럼 구경하는 말투로 들린다.

✗ (어른의 옷차림을 보고) 그 옷은 유행 지났어요. ✓ (어른의 옷차림을 보고) 그 색 잘 어울리세요. → 문법은 멀쩡하다. 문제는 자리다. ‘유행 지났다’는 평가하는 말이라, 손윗사람의 선택에 대고 쓰면 무례하게 들린다. 이 말은 또래끼리 자기 물건을 두고 “이거 이제 유행 지났지?” 하고 스스로 낮출 때 가장 안전하다.

상황별 활용 예문

1) 옷 가게에서 점원이 권할 때

이거 요즘 제일 많이 나가요. 올해 유행이라서요. (igeo yojeum jeil mani nagayo. olhae yuhaengiraseoyo.) This one’s selling the most right now. It’s this year’s trend.

손님에게 하는 말이라 존댓말이다. ‘유행이라서요’처럼 이유를 말하다 만 듯 끊는 말끝은 한국어에서 아주 흔하다. “그래서 사세요”까지 말하지 않고 판단을 손님에게 넘기는 부드러운 어법이다.

2) 아이 어린이집에서 온 안내 문자

수족구병이 유행하고 있으니 손 씻기를 지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sujokgubyeongi yuhaenghago isseuni son ssitgireul jidohae jusigi barambnida.) Hand-foot-and-mouth disease is going around, so please help your child wash their hands.

첫 번째 뜻이다. 공지문에서는 거의 언제나 유행하고 있다 / 유행 중이다 꼴로 나온다. 학교·병원·회사 게시물을 읽을 때 이 형태를 알아보면 절반은 읽은 셈이다.

3) 친구가 처음 듣는 신조어를 썼을 때

그 말 요즘 유행하는 거야? 나만 몰랐네. (geu mal yojeum yuhaenghaneun geoya? naman mollanne.) Is that word trending these days? I was the only one who didn’t know.

반말이다.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이 가장 자주 쓰게 될 문장이기도 하다. ‘나만 몰랐네’를 붙이면 뒤처진 게 창피한 게 아니라 웃긴 일이 되어, 분위기가 편해진다.

존댓말·반말과 비슷한 표현

말끝만 갈아 끼우면 된다. 반말은 유행이야 / 유행해, 두루높임은 유행이에요 / 유행해요, 격식체는 유행입니다 / 유행합니다다. 공지문과 뉴스에서는 마지막 형태가 압도적으로 많이 보인다.

비슷해 보이는 말들과 견주면 자리가 또렷해진다.

표현온도·강도쓰는 자리
유행 (yuhaeng)중립. ‘널리 퍼져 있다’는 사실옷·말·음악·병까지 전부. 어디서나
대세 (daese)세고 단정적. ‘이제 이쪽이 이겼다’또래·SNS·기사 제목. 공문서엔 안 씀
트렌드 (teurendeu)차분하고 분석적업계·마케팅·뉴스. 친구끼리 쓰면 딱딱함
붐 (bum)뜨겁고 일시적한 분야가 갑자기 달아오를 때(캠핑 붐)
인기 (in-gi)사랑받는 정도한 대상에만. ‘퍼짐’과는 상관없음

가장 헷갈리는 짝은 유행인기다. 인기는 한 대상이 얼마나 사랑받느냐를 말하고, 유행은 그것이 얼마나 넓게 번졌느냐를 말한다. 그래서 “저 배우는 인기가 많다”는 자연스럽지만 “저 배우는 유행이다”는 어색하다. 사람에게는 인기, 현상에는 유행이라고 기억해 두면 거의 틀리지 않는다.

문화 배경 — 흐르고 다니는 말

유행은 한자어 流行이다. 流는 ‘흐르다’, 行은 ‘다니다’ — 글자 그대로 흘러서 돌아다닌다는 그림이다. 물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저절로 번지듯, 누가 시키지 않아도 옷차림이 번지고 말이 번지고 병이 번진다. 두 가지 뜻이 한 단어에 들어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에게는 이 한자 두 글자가 사전 설명 열 줄보다 낫다.

이 단어에서 갈라져 나온 말들도 일상어다. **유행가 (yuhaengga)**는 그 시절의 대중가요, **유행어 (yuhaengeo)**는 한동안 모두가 따라 쓰는 신조어다. 한국의 유행어는 회전이 유난히 빠르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 마디가 나오면 며칠 만에 학교와 직장으로 번지고, 반년 뒤에는 그 말을 쓰는 사람이 오히려 촌스러워진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유행어를 쓸 때 “나 이거 아직 써도 되나?” 하고 한 번 눈치를 본다.

드라마도 이 감각을 즐겨 다룬다. 특정 연도를 배경으로 한 복고 드라마 《응답하라 1997》(tvN, 2012) 같은 작품은 그 시절의 옷·머리 모양·거리에서 흘러나오던 노래를 촘촘히 재현해서, 등장인물의 사연보다 ‘그때 유행하던 것들’이 먼저 시청자를 울리곤 했다. 유행이란 결국 한 시대를 통째로 불러오는 열쇠라는 걸 잘 아는 연출이다.

오늘의 퀴즈

다음 빈칸에 가장 자연스러운 말은?

요즘 회사에 독감이 ______ 다들 마스크를 쓰고 있어요.

① 인기라서 ② 유행이라서 ③ 대세라서

정답 보기

정답은 ② 유행이라서. 병이 여러 사람에게 번지는 상황이므로 사전의 첫 번째 뜻 그대로다. ①의 ‘인기’는 좋아함을 뜻하니 병에는 쓸 수 없고, ③의 ‘대세’는 여럿 중에 어느 쪽이 우세하냐를 따지는 말이라 이 자리에는 맞지 않는다.


이 글의 단어 뜻풀이와 예문은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krdict.korean.go.kr)에서 가져왔으며, 해당 부분(번역 포함)은 CC BY-SA 2.0 KR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배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