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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가 — 집을 떠난 사람에게만 생기는 집

본가

한국 친구에게 명절 계획을 물으면 열에 아홉은 이렇게 답한다. “나 본가 (bonga) 내려가.” 본가 (bonga) 는 ‘따로 나와 살기 이전에 원래 살던 집’, 그러니까 독립하기 전에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을 가리키는 말이다. 지금 내가 자고 밥 먹는 원룸이 아니라, 내 방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는 그 집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단어가 집을 떠난 사람에게만 생긴다는 점이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동안에는 그냥 ‘집’이었던 곳이, 짐을 싸서 나오는 순간 비로소 이름을 하나 얻는다.

그래서 본가 (bonga) 라는 말이 입에서 나오는 순간, 듣는 사람은 말하지 않은 정보를 하나 더 받는다. “아, 이 사람은 지금 부모님과 따로 사는구나.” 한국에서 이 말이 유난히 자주 오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방에서 서울로 대학이나 직장을 따라 올라온 사람이 워낙 많고, 그 사람들에게는 사는 집과 돌아갈 집이 늘 두 개이기 때문이다.

온도는 담백하다. 감정이 실린 말이 아니다. 고향 (gohyang) 처럼 향수가 묻어 있지도 않고, 부모님 댁 (bumonim daek) 처럼 공손하지도 않다. 그냥 사실을 가리킨다. 그래서 처음 만난 사람과의 가벼운 잡담에도 쓰고, 회사 서류의 주소란 이야기에도 쓴다. 딱 하나, 뒤에 붙는 동사에는 미묘한 습관이 있다. 서울에 사는 사람이 지방 본가에 갈 때는 “본가에 내려간다”, 반대의 경우에는 “본가에 올라간다”고 한다. 실제 지도상의 방향이 아니라 서울을 기준으로 삼는 오래된 말버릇이다.

국립국어원 사전으로 확인하기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은 이 단어에 두 개의 뜻을 싣고 있다.

본가 「명사」

  1. 따로 나와 살기 이전에 원래 살던 집.
  • [영] original home — A family house in which a member used to live before moving out to live independently.
  • [일] ほんけ【本家】 — 分家する前に暮らしていた元の家。
  • [스] casa de los padres, casa principal — Casa donde alguien vivía originalmente antes de emanciparse.
  • [중] 老家 — 独自生活前生活过的原来的家。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본가 「명사」 2. 여자가 결혼하기 전에 부모와 살던 집.

  • [영] parents’ home — A family house in which a woman used to live together with her parents before getting married.
  • [일] じっか【実家】 — 女性が結婚する前に、親と暮らした家。
  • [스] casa de los padres — Casa donde vivía con sus padres una mujer antes de casarse.
  • [중] 娘家 — 女性结婚前与父母生活的家。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포르투갈어 번역은 이 사전에 실려 있지 않다. 참고로만 옮기면 casa dos pais 정도가 되는데, 이것은 사전의 번역이 아니라 우리가 붙인 것임을 밝혀 둔다.

두 뜻을 나란히 놓고 보면 차이가 선명하다. 1번은 성별과 무관하게 ‘독립 이전’이 기준이고, 2번은 ‘결혼 이전’이 기준이다. 오늘날 한국어 회화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쓰이는 쪽은 1번이다. 2번 뜻은 결혼한 여성에 대해 쓰이는데, 이 경우 현대 일상어에서는 친정 (chinjeong) 이라는 말이 더 흔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같은 사전이 싣고 있는 실제 사용 예문 다섯 개를 그대로 옮긴다.

  • 갓 결혼한 아들 내외가 본가 근처에 살림을 내었다.
  • 본가에 눌러 있다.
  • 지수는 대학을 졸업한 후 대전에 있는 본가로 돌아갔다.
  • 본가가 어디인데요?
  • 승규는 서울에 직장을 구하게 되면서 본가를 떠나게 되었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하나씩 어떤 상황인지 짚어 보자.

  1. “갓 결혼한 아들 내외가 본가 근처에 살림을 내었다.” — 결혼해서 부모님 집을 나온 아들 부부가 아주 멀리 가지는 않고 걸어갈 만한 거리에 새 살림을 차렸다는 뜻이다. ‘살림을 내다’는 따로 가정을 꾸려 독립한다는 관용 표현이다. 여기서 본가는 아들 기준으로 원래 살던 집이다.
  2. “본가에 눌러 있다.” — 독립할 나이가 지났는데도 나가지 않고 부모님 집에 계속 머물러 있다는 뜻이다. ‘눌러 있다’에는 ‘떠나지 않고 그대로 머문다’는 어감이 있어서, 상황에 따라 가벼운 놀림처럼 들리기도 한다.
  3. “지수는 대학을 졸업한 후 대전에 있는 본가로 돌아갔다.” — 서울 등 다른 도시에서 대학을 다니며 자취하다가, 졸업과 함께 짐을 정리해 부모님이 계신 대전 집으로 되돌아갔다는 이야기다. 한국 청년들의 아주 전형적인 이동 경로다.
  4. “본가가 어디인데요?” — 대화 중에 상대의 출신지를 묻는 가장 자연스러운 질문 중 하나다. 이 한 문장 안에 이미 ‘당신은 지금 부모님과 따로 살고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5. “승규는 서울에 직장을 구하게 되면서 본가를 떠나게 되었다.” — 취업이 곧 독립의 계기가 되는 경우다. 앞의 3번 예문과 정확히 반대 방향의 이동이다.

실제 대화로 보기

상황: 준경이 5년 살던 원룸에서 이사 나가는 날. 에밀리가 박스 나르는 걸 도와주러 왔다.

에밀리: 이 박스는 어디로 보내? 새 집? Where does this box go? The new place?

준경: 아, 그건 본가로. 겨울 옷이라 새 집엔 둘 데가 없어. Ah, that one goes to my parents’ place. It’s winter clothes—there’s no room at the new apartment.

에밀리: 야, 너 지금 짐 절반을 본가에 떠넘기는 거 아니야? Hey, aren’t you dumping half your stuff at your parents’ place right now?

준경: 어차피 내 방 그대로 있어. 엄마가 손도 안 대셔. My room’s still there anyway. Mom doesn’t touch a thing.

에밀리: 부럽다. 나는 본가가 비행기로 열두 시간인데. Lucky you. Mine’s a twelve-hour flight away.

준경: 그래서 네가 이사할 때마다 그렇게 다 갖다 버리는구나. So that’s why you throw everything out every time you move.

이렇게 쓰면 어색합니다

✗ (부모님과 함께 사는 고등학생이) 저 학원 끝나고 바로 본가에 갈게요. ✓ (부모님과 함께 사는 고등학생이) 저 학원 끝나고 바로 에 갈게요. → 본가는 ‘이미 그 집을 나왔다’는 전제를 깔고 쓰는 말이다. 아직 부모님과 같이 살면서 쓰면 자기 집을 남의 집처럼 부르는 꼴이 되어 듣는 사람이 잠깐 멈칫한다.

✗ (선생님께) 선생님, 다음 주에 선생님 본가에 놀러 가도 돼요? ✓ (선생님께) 선생님, 다음 주에 선생님 에 찾아뵈어도 될까요? → 본가는 사실 관계를 가리키는 중립어라 높임의 무게가 없다. 손윗사람이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방문하겠다고 말할 때는 댁 (daek) 을 써야 예의가 갖춰진다. 다만 “선생님은 본가가 어디세요?” 처럼 출신을 묻는 질문이라면 본가도 자연스럽다.

상황별 활용 예문

상황 1 — 명절 연휴를 앞둔 금요일, 동료끼리

가: 이번 추석에 본가 내려가? 나: 응, 표는 겨우 구했는데 다섯 시간 걸린대.

명절 직전 한국 사무실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대화다. 여기서 ‘내려가다’는 서울에서 지방으로 간다는 뜻이다. 상대가 서울 출신이라면 같은 질문에 “난 본가가 여기라 그냥 있어”라는 답이 돌아온다.

상황 2 — 자취 3개월 차 후배와의 저녁 자리

가: 요즘 밥은 잘 챙겨 먹어? 나: 본가에서 반찬을 택배로 보내 주셔서요. 냉장고 반이 엄마 김치예요.

독립은 했지만 여전히 부모님의 손이 닿아 있는 상태를 보여 주는 문장이다. 한국에서 본가는 물리적 주소이자 반찬통과 택배 상자를 통해 계속 이어지는 통로이기도 하다.

상황 3 — 소개팅 자리, 첫 대화

가: 본가가 어디세요? 나: 부산이요. 대학 때 올라와서 이제 십 년 됐네요.

“어디 사세요?”는 현재 주소를 묻는 다소 부담스러운 질문이지만, “본가가 어디세요?”는 출신을 묻는 가벼운 질문으로 받아들여진다. 상대의 사는 집 주소를 직접 캐묻지 않으면서 대화를 여는, 아주 한국적인 우회로다.

존댓말·반말과 비슷한 표현

본가는 명사이므로 그 자체에 존댓말과 반말의 구분이 없다. 격식은 뒤에 붙는 동사가 결정한다. 친구에게는 “본가 가?”, 상사에게는 “본가에 다녀오겠습니다”, 아주 격식을 차릴 때는 “본가에 다녀오려고 합니다”가 된다. 대신 비슷해 보이는 이웃 단어들과의 거리를 아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표현온도·강도쓰는 자리
본가 (bonga)중립·사실 서술독립해 사는 사람이 부모님 집을 가리킬 때. 격식·비격식 모두 가능
부모님 댁 (bumonim daek)정중하고 부드러움손윗사람 앞에서, 특히 그 집을 방문한다고 말할 때
고향 (gohyang)정서적·향수가 짙음집이 아니라 태어나 자란 ‘지역’. 부모님이 이사 가도 고향은 그대로
친정 (chinjeong)따뜻하고 사적결혼한 여성이 자기 부모님 집을 가리킬 때
자취방 (jachwibang)소박하고 일상적본가의 반대편. 지금 혼자 사는 방

특히 고향 (gohyang) 과 헷갈리기 쉽다. 본가는 건물이고 고향은 땅이다. 부모님이 서울로 이사를 오시면 내 본가는 서울이 되지만, 내가 나고 자란 고향은 여전히 원래 그 도시다.

문화 배경 — 내 방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

한자로 보면 本家, 즉 ‘본디 본(本)‘에 ‘집 가(家)‘다. 글자 그대로 ‘본디 있던 집’이며, 갈라져 나온다는 뜻의 분가 (bunga, 分家) 와 짝을 이루는 말이다. 흥미로운 것은 사전이 제시한 일본어 번역이다. 1번 뜻에는 한자가 똑같은 ほんけ【本家】가, 2번 뜻에는 じっか【実家】가 붙어 있다. 같은 한자를 쓰면서도 두 언어가 이 단어를 조금씩 다른 자리에 놓아 왔다는 뜻이다.

한국에서 본가라는 말이 유독 실감 나게 들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대학과 일자리가 수도권에 몰려 있어 20대 초반에 짐을 싸서 상경하는 일이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굳어졌기 때문이다. 그 순간부터 청년의 삶에는 주소가 두 개가 된다. 우편물이 오는 자취방, 그리고 아직 침대와 교복과 고등학교 참고서가 그대로 놓여 있는 방 하나.

한국 드라마에서 본가가 등장하는 장면은 대개 정해진 표정을 하고 있다. 서울살이에 지친 주인공이 아무 예고 없이 밤기차를 타고 내려가는 장면, 문을 열자마자 어머니가 “밥은 먹었냐”부터 묻는 장면, 몇 년 만에 열어 본 자기 방이 떠날 때 그대로여서 잠시 말을 잃는 장면. 대사 한 줄 없이도 감정이 전달되는 이유는, 그 방이 시간이 멈춘 채 자신을 기다렸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사람에게 본가는 단순한 주소가 아니다. 명절마다 고속도로를 몇 시간씩 막히게 만들고, 냉장고에 김치통을 계속 채워 넣고, 취업이 안 되는 시기에 “일단 본가로 들어갈까” 하는 마지막 선택지가 되어 주는 곳이다. 한국어 학습자가 이 단어를 정확히 쓰기 시작하면, 한국 친구와의 대화가 갑자기 한 겹 깊어지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오늘의 퀴즈

다음 중 본가 (bonga) 를 쓰기에 가장 어색한 상황은?

  1. 대전에서 서울로 취업해 혼자 사는 사람이 — “이번 주말에 본가 내려가려고.”
  2. 부모님과 함께 사는 고등학생이 — “학원 끝나면 바로 본가에 가야 해.”
  3. 결혼해서 분가한 딸이 — “어제 본가에 김치 가지러 다녀왔어.”
  4. 처음 만난 사람에게 — “본가가 어디세요?”
정답 보기

정답: 2번

본가는 그 집을 이미 떠난 사람이 쓰는 말이다. 부모님과 지금 함께 살고 있다면 그곳은 그냥 집 (jip) 이다. 이 학생은 “학원 끝나면 바로 에 가야 해”라고 말해야 자연스럽다. 1번과 3번은 각각 사전의 1번 뜻과 2번 뜻에 정확히 들어맞고, 4번은 사전 예문 “본가가 어디인데요?”와 같은 쓰임이다.


이 글의 단어 뜻풀이와 예문은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krdict.korean.go.kr)에서 가져왔으며, 해당 부분(번역 포함)은 CC BY-SA 2.0 KR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배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