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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charye) — '네 차례야'의 차례와 설날의 차례는 다른 말입니다

차례

차례 (charye) 는 어떤 일을 하거나 어떤 일이 일어나는 순서, 그리고 그 순서에 따라 주어지는 기회라는 뜻이다. 한국에서 하루를 보내다 보면 이 말을 듣지 않기가 더 어렵다. 병원 접수대의 전광판, 은행 번호표 기계, 인기 식당 앞의 대기 명단, 명절 아침 세배하는 순서 — 사람이 여럿 모여 하나씩 무언가를 해야 하는 자리에는 거의 반드시 차례 (charye) 가 등장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 글의 위쪽에 붙는 목차도 한국어로는 차례 (charye) 라는 점이다. 한국 책을 펼치면 첫 장에 큼직하게 ‘차례’라고 적혀 있다. 순서를 뜻하는 말이 그대로 ‘순서대로 늘어놓은 제목의 목록’을 가리키는 이름이 되었다.

그리고 하나 더 있다. 설날 아침에 “차례를 지낸다”고 할 때의 차례는 소리만 같을 뿐 아예 다른 단어다. 이 이야기는 뒤에서 다시 하겠다.

뉘앙스를 잡아 두자. 비슷한 말인 순서 (sunseo) 가 배열 그 자체를 가리키는 다소 건조한 말이라면, 차례 (charye) 에는 “그 몫이 나에게 돌아왔다”는 감각이 있다. 그래서 순서는 “순서대로 서세요”처럼 전체를 내려다보며 쓰고, 차례는 “이제 네 차례야”처럼 한 사람을 콕 집을 때 쓴다. 차례는 길이를 가진 물건이 아니라 오고 가는 것이다 — 차례가 오다·되다·돌아오다와 짝을 이루는 이유다.

한 가지 더. 차례에는 ‘횟수를 세는 단위’라는 쓰임도 있는데, 이쪽은 온도가 확 달라진다. 격식 있고 무거워서 뉴스 앵커, 보고서, 역사 서술의 말투다. 친구와 수다 떨 때는 쓰지 않는다.

국립국어원 사전으로 확인하기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은 차례를 네 갈래로 나눈다.

차례 「명사」

  1. 어떤 일을 하거나 어떤 일이 일어나는 순서. [en] procedure; process — An order by which one does a certain task or a sequence in which work is done. [ja] じゅんじょ【順序】。じゅんばん【順番】 — 物事を行ったり物事が起こる手順。 [es] orden — Forma coordinada y regular de funcionar o desarrollarse algo. [zh] 次序 — 做某件事或某件事情发生的顺序。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1. 일을 하거나 일이 일어나는 순서에 따라 주어지는 기회. [en] order — The opportunity given according to an order by which one does a certain task or a sequence in which work is done. [ja] じゅんばん【順番】。ばん【番】 — 物事を行ったり物事が起こる手順に従って与えられる機会。 [es] orden — Oportunidad que se concede al realizar un trabajo o en orden de sucesión de un hecho. [zh] 顺序,次序 — 按照做事情或事情发生的顺序所得到的机会。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1. 책이나 글 등을 이루고 있는 내용의 제목을 순서대로 늘어놓은 것. [en] table of contents — A sequential list of the titles or sections in a book, piece of writing, etc. [ja] もくじ【目次】 — 書物や文章などの内容を示した題名を順序立てて並べたもの。 [zh] 目录,目次 — 把构成书或文章等的各部分内容的题目按照顺序从上往下列出来。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1. 일이 일어나는 횟수를 세는 단위. [en] time — A unit for counting the number of times something happened. [ja] かい【回】。ど【度】 — 物事が起こる回数を数える単位。 [zh] 次,回,遍,阵 — 计算事情发生次数的单位。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사전에 포르투갈어 번역은 실려 있지 않아, 우리가 직접 옮겨 둔다: ordem; vez (포르투갈어 부분은 사전 자료가 아닌 자체 번역이다).

사전이 함께 싣고 있는 실제 사용 예문을 그대로 인용하고, 각각 어떤 상황인지 붙여 본다.

이모, 이모가 윷을 던질 차례예요.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2번 뜻, 즉 ‘나에게 돌아온 기회’의 가장 전형적인 쓰임이다. 명절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윷놀이를 하다가, 딴 데 정신이 팔린 이모에게 조카가 알려 주는 장면이 그대로 그려진다. 게임에서 차례는 이렇게 사람을 콕 집어 부르는 말로 쓰인다.

지수는 여러 차례 가요제에서 수상을 하며 가수로 데뷔했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4번 뜻, 횟수 단위다. 여기서 차례를 번으로 바꿔 “여러 번 수상을 하며”라고 해도 뜻은 같지만, 인물 소개 글이나 기사에서는 차례 쪽이 훨씬 자주 보인다. 여러 차례 (yeoreo charye) 는 통째로 외워 두면 좋은 덩어리다.

그 무역법은 시행되기 전까지 십여 차례의 개정이 이루어졌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같은 4번 뜻인데 온도가 더 딱딱하다. 법·제도·절차를 서술하는 문어체이고, 뉴스 리포트에서 바로 들릴 법한 문장이다. 이런 자리에서 “십여 번 고쳤다”라고 하면 갑자기 사담처럼 들린다.

왕실의 혼사에는 세 차례의 간택이 실시되었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사극을 좋아한다면 반가운 문장이다. 조선 왕실에서 왕비를 뽑던 절차를 설명하는 문장으로, 역사 서술에서 차례가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보여 준다. 사극 자막에서 이 표현을 만나면 ‘몇 번에 걸쳐’로 읽으면 된다.

우리는 설날에 차례를 지내면서 조상님께 집안의 가호를 빌었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그리고 이 문장. 여기 나온 차례는 지금까지 본 ‘순서’의 차례와 소리만 같은 다른 단어다. 차례를 지내다 (charyereul jinaeda) 는 통째로 하나의 표현으로 익혀야 한다. 자세한 이야기는 문화 배경에서 이어 간다.

실제 대화로 보기

상황: 설날 아침, 준경의 집. 차례상을 막 물리고 어른들이 거실에 자리를 잡았다. 에밀리는 올해 처음 초대받았다.

준경: 자, 상 다 치웠다. 이제 세배할 차례야. Okay, the table’s cleared. Now it’s time for the New Year’s bow.

에밀리: 잠깐, 나 순서 헷갈려. 누구부터 해? Hold on, I’m mixed up on the order. Who goes first?

준경: 할머니 할아버지 먼저. 그다음이 우리 부모님 차례. Grandma and Grandpa first. Then it’s my parents’ turn.

에밀리: 야, 근데 아까 절하고 음식 올린 것도 차례라며. 지금도 차례고? Hey, but you said what we did earlier — the bowing, the food — was also charye. And this is charye too?

준경: 아, 그건 한자가 달라. 소리만 같지 완전 다른 말이야. Ah, that one’s a different hanja. Same sound, totally different word.

에밀리: 헐, 한국어 진짜 얄밉다. 아무튼 나 차례 되면 꼭 알려 줘. 나 세배 처음이란 말이야. Ugh, Korean is really something. Anyway, tell me when it’s my turn — this is my first time bowing.

이렇게 쓰면 어색합니다

✗ (친구에게) 나 어제 편의점 세 차례 갔다 왔어. ✓ (친구에게) 나 어제 편의점 세 갔다 왔어. → 횟수를 세는 차례는 뉴스·보고서·역사 서술의 격식체다. 친구와의 수다에 쓰면 갑자기 앵커가 된 것처럼 무겁게 들린다. 일상 구어에서는 번 (beon) 이 자연스럽다.

✗ (맛집 앞에서) 차례가 너무 길어서 한 시간 기다렸어. ✓ (맛집 앞에서) 이 너무 길어서 한 시간 기다렸어. / 내 차례가 오는 데 한 시간 걸렸어. → 영어의 queue를 그대로 옮기다 나오는 실수다. 차례는 눈에 보이는 줄이 아니라 순서라는 개념이므로 길이를 가질 수 없다. 줄은 길고, 차례는 온다.

상황별 활용 예문

1. 병원 대기실 · 은행 창구 (안내 존댓말)

48번 고객님, 차례입니다. (48beon gogaengnim, charyeimnida.) Customer number 48, it’s your turn.

번호표를 뽑고 앉아 있으면 하루에도 수십 번 울리는 문장이다. 뒤에 이름이나 번호를 붙여 “○○ 님 차례입니다”처럼 쓴다. 더 높여 말할 때는 차례가 되셨습니다 (charyega doesyeotseumnida) 라고도 한다.

2. 친구들과 보드게임 (반말)

야, 폰 그만 보고. 네 차례야. (Ya, pon geuman bogo. Ne charyeya.) Hey, put the phone down. It’s your turn.

윷놀이든 보드게임이든 온라인 게임이든, 딴짓하는 친구를 부를 때 쓰는 바로 그 문장이다. 반말 종결형은 -야 (-ya), 존댓말은 -예요 (-yeyo) 로 바꾸면 된다.

3. 뉴스·소개 글 (격식체, 횟수)

그 감독은 올해만 세 차례 국제 영화제에 초청받았다. (Geu gamdogeun olhaeman se charye gukje yeonghwaje-e chocheongbadatda.) That director was invited to international film festivals three times this year alone.

같은 문장을 친구에게 말할 땐 “올해만 세 번 갔대”가 된다. 글로 쓰느냐 말로 하느냐에 따라 차례와 번을 갈아 끼운다고 기억해 두자.

존댓말·반말과 비슷한 표현

반말은 네 차례야, 존댓말은 차례입니다 / 차례예요, 더 높이면 차례가 되셨습니다로 간다. 형태 변화는 단순하지만, 비슷한 말들과의 거리감은 표로 잡아 두는 편이 낫다.

표현온도·강도쓰는 자리
차례 (charye)중립. 내 몫이 돌아왔다는 감각줄·게임·회의처럼 한 사람씩 할 때. 존댓말·반말 모두
순서 (sunseo)중립. 배열 그 자체절차·목록·과정. “순서대로 하세요”
번 (beon)가볍고 일상적횟수 세기. 친구·가족과의 대화
차례 (횟수)격식 있고 무거움뉴스·보고서·역사 서술. “여러 차례”
턴 (teon)외래어, 놀이 한정보드게임·온라인 게임에서만

문화 배경 — 소리가 같은 두 개의 차례

설날과 추석 아침에 “차례를 지낸다”고 할 때의 차례는 한자로 茶禮, 글자 그대로 ‘차(茶)를 올리는 예(禮)’다. 조상에게 음식을 차려 올리고 절하는 의례로, 지금은 차 대신 술과 떡국(설날), 송편(추석)을 올리지만 이름에는 여전히 차가 남아 있다. 순서를 뜻하는 차례와는 소리만 같은 별개의 단어이니, 한국어 사전에서도 다른 표제어로 갈라져 있다.

한국 사람은 이 둘을 대개 제사 (jesa) 와 비교해서 설명한다. 제사는 조상이 돌아가신 날(기일)에 주로 밤에 지내고, 차례는 명절 아침에 지낸다. 그래서 한국 드라마의 명절 에피소드에는 이른 아침 차례상을 차리느라 온 가족이 부엌에서 부딪치는 장면이 단골로 나온다. 그 장면 뒤에 이어지는 세배 순서가 바로 오늘 배운 ‘순서의 차례’다 — 같은 아침에 두 개의 차례가 나란히 등장하는 셈이다.

한편 순서의 차례는 한국의 일상 곳곳에 제도로 박혀 있다. 병원·은행·관공서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번호표를 뽑는 것이고, 인기 식당 앞에는 이름과 인원을 적는 대기 명단이 있다. 차례가 눈에 보이는 숫자로 관리되는 사회다 보니, 그 순서를 무시하는 행동에는 새치기 (saechigi) 라는 전용 단어까지 있다. “제 차례인데요”는 그럴 때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쓰는 한마디다.

마지막으로 책의 ‘차례’. 한국 책을 사면 앞쪽에 목차가 있고 그 페이지 제목이 ‘차례’로 적혀 있는 경우가 많다. 학습자에게는 이 세 갈래 — 순서, 횟수, 목차 — 를 한 단어가 감당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 단어의 매력이다.

오늘의 퀴즈

다음 중 가장 자연스러운 문장은?

  1. (친구에게) 나 그 카페 이번 주에 두 차례 갔어.
  2. (맛집 앞에서) 차례가 너무 길어서 그냥 왔어.
  3. (보드게임 중) 잠깐만, 지금 내 차례 아니야?

정답은 3번. 1번은 친구와의 대화이므로 “두 번”이 자연스럽고, 차례를 쓰면 뉴스 문장처럼 딱딱해진다. 2번은 길이를 가진 것이 차례가 아니라 줄이므로 “줄이 너무 길어서”가 맞다. 3번은 나에게 돌아온 기회를 가리키는 차례의 가장 전형적인 쓰임이다.


이 글의 단어 뜻풀이와 예문은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krdict.korean.go.kr)에서 가져왔으며, 해당 부분(번역 포함)은 CC BY-SA 2.0 KR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배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