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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 — 아기가 세상에 온 지 백 날째 되는 하루

백일

**백일 (baegil)**은 아이가 태어난 날로부터 백 번째 되는 날이라는 뜻이다. 아기가 세상에 나오고 딱 백 날째가 되는 그 하루를 가리키는 말이다. 한국에서는 이 하루를 그냥 넘기지 않는다. 흰 백설기를 찌고, 사진관에 가서 아기 사진을 찍고, 이웃과 친척에게 떡을 돌린다. 아기를 가운데 앉히고 그 앞에 떡과 과일을 차려 놓은 상을 백일상 (baegilsang), 그 자리에서 여는 잔치를 **백일잔치 (baegiljanchi)**라고 한다.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은 이 단어 앞에서 한 번 멈칫한다. 생일도 아니고, 100이라는 숫자가 한국어에서 특별히 큰 단위인 것도 아닌데 왜 하필 백 번째 날에 떡을 돌릴까. 백일은 그냥 날수를 세는 말이 아니다. 한국 사람이 한 아이의 삶에 처음으로 묶는 매듭이다. 그 매듭이 왜 생겼는지를 알고 나면 이 단어는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

쓰임의 폭은 넓지 않지만 경계는 아주 뚜렷하다. 첫째, 대상은 거의 언제나 아기다. 어른에게 백일이라는 말을 붙이는 일은 없다. 둘째, 붙여 쓴 한 단어 백일과 띄어 쓴 **백 일 (baek il)**은 뜻이 갈린다. 앞엣것은 아기의 기념일이고, 뒤엣것은 그냥 100일이라는 기간이다. 셋째, 온도가 밝다. 축하와 안도가 섞인 자리에서만 나오는 말이라, 슬프거나 무거운 문장에는 잘 붙지 않는다.

이 한 단어에서 갈라져 나온 말도 함께 외워 두면 좋다. 백일상(차림), 백일잔치(모임), 백일 사진 (baegil sajin)(사진관에서 찍는 기념사진), 백일 떡 (baegil tteok)(돌리는 백설기). 한국 부모의 휴대폰 사진첩에는 이 네 가지가 거의 반드시 들어 있다.

국립국어원 사전으로 확인하기

백일 「명사」 아이가 태어난 날로부터 백 번째 되는 날. [en] baegil — one hundredth day: The hundredth day of a baby’s birth. [ja] ひゃくにち【百日】 — 子供が生まれた日から100日目の日。 [es] 100 días de nacimiento — Fecha en que se cumplen los 100 días de nacimiento de un bebé. [zh] 百日,百天 — 婴儿出生后的第一百天。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포르투갈어 뜻풀이는 이 사전에 실려 있지 않다. 아래 한 줄은 사전 인용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옮긴 것이다 — centésimo dia: o centésimo dia contado desde o nascimento de um bebê.

사전이 함께 싣고 있는 실제 사용 예문을 그대로 옮기고, 각각 어떤 상황의 문장인지 붙여 둔다.

백일이 조금 지나자 아기는 누운 채로 도리질을 하기 시작했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백일을 시점의 기준으로 삼는 가장 전형적인 쓰임이다. 한국 부모들은 아기의 발달을 말할 때 개월 수보다 백일 전, 백일 후로 시기를 나누는 일이 많다.

아기는 백일이 지나면 고개를 어느 정도 똑바로 들 수 있게 된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육아서나 소아과 안내문에서 볼 법한 문장이다. 목을 가누는 시기가 대략 이 무렵이라, 백일은 실제로 아기의 몸이 눈에 띄게 달라지는 선이기도 하다.

지수는 비디오로 녹화한 조카의 백일잔치 동영상을 개인 홈페이지에 올렸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백일에 잔치가 붙은 형태다. 주어가 부모가 아니라 이모·삼촌인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백일잔치는 부모만의 행사가 아니라 양가 식구가 다 모이는 자리다.

어머니는 구십 일째 백일기도를 하고 계신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여기서의 백일은 아기와 관계가 없다. 백 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서 드리는 기도를 백일기도라고 한다. 구십 일째라는 말에는 열흘만 더 하면 된다는 마음이 묻어 있다.

내가 기안한 교내 백일장 행사가 다음 학기에 열리기로 결정되었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백일장은 사전에 따로 실려 있는 별개의 단어로, 글짓기 대회를 뜻한다. 아기의 백일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학습자가 가장 자주 헷갈리는 지점이니, 백일장은 통째로 하나의 단어라고 외워 두는 편이 낫다.

실제 대화로 보기

상황: 토요일 아침, 준경네 거실. 오늘이 준경 딸의 백일이다. 상을 차리는 중인데, 에밀리가 떡 상자를 들고 막 들어섰다.

준경: 왔어? 손 씻고 이것 좀 잡아 줘. 상보가 자꾸 밀려. You’re here? Wash your hands and hold this for me. The cloth keeps sliding.

에밀리: 알았어. 근데 떡집에서 이만큼 주던데, 이거 다 우리가 먹어? Okay. But the rice-cake shop gave me this much — are we eating all of it?

준경: 아니지. 백일 떡은 여러 집에 나눠야 애가 오래 산대. 옆집이랑 경비실도 갖다드려야 돼. No way. They say baegil rice cake has to be shared around so the baby lives long. We have to take some to the neighbors and the security office too.

에밀리: 아, 그래서 흰 떡만 잔뜩이구나. 난 그냥 잔치 음식인 줄 알았네. Ah, that’s why it’s all plain white rice cake. I just thought it was party food.

준경: 옛날엔 백일을 못 넘기는 아기가 많았거든. 이제 한 고비 넘겼다, 그런 뜻이야. Long ago a lot of babies didn’t make it past a hundred days. It means we’ve gotten over one hurdle.

에밀리: 그 말 들으니까 갑자기 상이 다르게 보인다. 사진은 찍었어? Hearing that, this table suddenly looks different to me. Did you take the photos?

준경: 어제 백일 사진 찍고 왔는데, 애가 내내 울어서 백 장 찍고 두 장 건졌어. We got the baegil photos yesterday, but she cried the whole time — a hundred shots, two keepers.

이렇게 쓰면 어색합니다

✗ 이 프로젝트 끝내는 데 백일 걸렸어. ✓ 이 프로젝트 끝내는 데 백 일 걸렸어. / 100일 걸렸어. → 붙여 쓴 백일은 아기의 기념일이라는 한 단어다. 기간을 말할 때 그대로 쓰면 듣는 사람이 순간 아기 이야기인 줄 알고 멈칫한다. 말할 때도 백 일 쪽은 한 박자 띄어 읽는다.

✗ (백일잔치를 안 한 부모에게) 요즘도 백일은 다 하던데, 왜 안 하세요? ✓ (백일잔치를 안 한 부모에게) 아기 백일 지났죠? 사진이라도 남기셨어요? → 문법은 멀쩡하지만 자리가 어긋난다. 요즘은 잔치 없이 가족끼리 밥만 먹거나 아예 넘기는 집도 많고, 그 결정에는 사정이 있을 수 있다. 백일은 축하하러 꺼내는 말이지 확인하거나 따지러 꺼내는 말이 아니다.

상황별 활용 예문

1) 회사에서 반차를 낼 때 — 팀장에게 짧고 분명하게 이유를 말하는 자리다. 한국 회사에서 아기 백일은 대체로 별말 없이 통하는 사유다.

다음 주 금요일에 아기 백일이라 반차 좀 쓰겠습니다. (daeum ju geumyoire agi baegilira bancha jom sseugetseumnida) Our baby’s hundredth-day is next Friday, so I’d like to take a half day.

2) 이웃집 문 앞에서 떡을 건네며 — 처음 인사하는 이웃일 수도 있다. 길게 설명하지 않고 이 한 문장이면 충분하다.

저희 아기 백일이라 떡 좀 나눠 드리려고요. (jeohui agi baegilira tteok jom nanwo deuriryeogoyo) It’s our baby’s hundredth day, so I wanted to share some rice cake with you.

3)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 상대의 아기 소식을 물을 때, 백일은 안부를 묻는 자연스러운 기준점이 된다.

너희 애 백일은 지났지? 벌써 백 일이라니 시간 진짜 빠르다. (neohui ae baegireun jinatji? beolsseo baek irirani sigan jinjja ppareuda) Your baby’s past the hundredth day, right? A hundred days already — time really flies.

존댓말·반말과 비슷한 표현

백일 자체는 명사라서 높임이 없다. 존댓말과 반말은 뒤에 붙는 서술어가 정한다.

  • 반말: 다음 주가 우리 애 백일이야 (baegiriya)
  • 일상 존댓말: 다음 주가 저희 아기 백일이에요 (baegirieyo)
  • 격식: 다음 주가 저희 아이 백일입니다 (baegirimnida)

비슷해 보이는 말들은 아래처럼 갈린다.

표현온도·강도쓰는 자리
백일 (baegil)따뜻하고 경사스럽다생후 100일 된 아기. 축하 인사와 떡 돌리기
돌 (dol)백일보다 크고 공식적첫 생일. 초대장을 돌리고 잔치 규모가 가장 크다
삼칠일 (samchiril)조용하고 옛말투태어난 지 21일. 요즘 대화에서는 거의 안 쓴다
백 일 (baek il)중립, 그냥 기간100일이라는 날수. 아기와 무관한 모든 문장
100일 (baegil)가볍고 캐주얼연인이 사귄 지 100일, 입대 100일처럼 숫자로 적는 자리

문화 배경 — 백 날을 세던 마음

백일이라는 말은 구조가 아주 투명하다. 백(百)과 날 일(日)이 그대로 붙었을 뿐, 숨은 비유가 없다. 그런데 이 밋밋한 숫자가 기념일이 된 이유는 숫자 바깥에 있다. 의료가 지금 같지 않던 시절, 갓 태어난 아기가 첫 몇 달을 넘기지 못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의 옛 육아 관습은 아기를 곧바로 바깥에 내보이지 않았다. 태어난 지 스무하루가 되는 삼칠일까지는 대문에 금줄을 걸어 두고 외부인의 출입을 삼갔고, 백 날이 지나서야 비로소 아기를 안고 사람들 앞에 나섰다. 백일잔치는 첫 고비를 넘겼다는 안도의 자리였던 셈이다.

백일 떡으로 흰 백설기를 쓰는 것도 그래서다. 아무것도 섞지 않은 흰 떡을 쪄서 되도록 많은 집에 나누면 아기가 무병장수한다는 말이 오래 전해져 왔다. 지금도 아파트 복도를 돌며 이웃집 문고리에 떡을 걸어 두는 부모가 있고, 그 떡을 받으면 접시를 빈 채로 돌려주지 않는다는 관습도 남아 있다.

요즘의 백일은 규모가 많이 줄었다. 큰 잔치 대신 사진관에서 백일 사진만 찍고, 가족끼리 밥 한 끼 먹고 마무리하는 집이 대부분이다. 대신 사진관에 백일 촬영 패키지가 생기고, 백일상 대여 서비스가 따로 있을 만큼 형식은 오히려 정교해졌다. 드라마에서도 백일잔치 장면은 여전히 자주 등장하는데, 대개는 아기 자랑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랜만에 온 식구가 한자리에 모여 묵은 갈등이 터지는 무대로 쓰인다. 백일상은 한국 드라마에서 가장 편리한 집합 장소다.

한편 백일이라는 말은 아기 바깥으로도 뻗어 나갔다. 무언가를 백 일 동안 이어서 하는 백일기도, 백 일 뒤를 기약하는 군대의 100일 휴가, 연인이 챙기는 100일 기념일까지 — 한국 사람에게 백 일은 한 고비를 재는 익숙한 자다. tvN 드라마 《백일의 낭군님》(tvN, 2018) 같은 제목의 백일도 아기가 아니라 이 백 일이라는 기간을 가리킨다. 다만 이런 쓰임들은 대개 숫자로 100일이라고 적고, 붙여 쓴 백일은 여전히 아기의 것이다.

오늘의 퀴즈

다음 중 백일을 자연스럽게 쓴 문장은 무엇일까?

① 이 보고서 쓰는 데 백일 걸렸어요. ② 조카가 다음 주에 백일이라 떡 돌린대요. ③ 할아버지, 백일 축하드려요.

정답은 ②다. ①은 기간을 말하는 자리이므로 백 일 또는 100일이라고 띄어 쓰거나 숫자로 적어야 한다. ③은 백일이 아기에게만 쓰는 말이라 성립하지 않는다 — 어른의 생신은 그냥 생신이다. ②만이 사전의 뜻 그대로, 태어난 지 백 번째 되는 날을 맞은 아기의 이야기다.

이 글의 단어 뜻풀이와 예문은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krdict.korean.go.kr)에서 가져왔으며, 해당 부분(번역 포함)은 CC BY-SA 2.0 KR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배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