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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발 (jokbal): 그릇 없이도 차려지는 밤의 상

족발

**족발 (jokbal)**은 돼지의 발, 또는 그 발을 간장 양념에 푹 조려 낸 음식이라는 뜻이다. 한국에서 밤 열 시가 넘어 “야식 뭐 시킬까?”라는 말이 나오면 치킨 다음으로 가장 자주 튀어나오는 이름이 바로 이 두 글자다. 이사한 날 짐 박스 사이에서, 야근이 끝난 사무실 회의실 책상에서, 시험이 끝난 자취방 바닥에서 — 족발은 접시가 없어도, 밥상이 없어도 신문지 한 장만 깔면 차려지는 음식이다.

이 단어가 학습자에게 재미있는 이유는 뜻이 두 겹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 뜻은 말 그대로 돼지의 발이라는 신체 부위다. 정육점 진열대나 조리법 설명, 시장 좌판에서 쓰이는 쪽이다. 두 번째 뜻은 그 발을 간장과 마늘, 생강, 대파 같은 것을 넣은 국물에 몇 시간이고 조려 낸 요리다. 그리고 실제 한국 사람들이 이 말을 입에 올릴 때는 거의 언제나 두 번째 뜻이다. 친구가 “어제 족발 먹었어”라고 하면 그건 발을 씹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윤기 나는 갈색 고기를 새우젓에 찍어 먹었다는 이야기다.

함께 붙어 다니는 동사도 정해져 있다. **족발을 시키다 (jokbareul sikida)**는 배달로 주문한다는 뜻이고, **족발을 뜯다 (jokbareul tteutda)**는 손으로 잡고 발라 먹는다는 뜻이다. 포크와 나이프로 조용히 썰어 먹는 음식이 아니라, 비닐장갑을 끼고 뼈에서 살을 떼어 내며 먹는 음식이라는 것이 이 동사 하나에 다 들어 있다. 세는 말도 알아 두면 좋다. 가게에서는 마리가 아니라 접시로 세거나, 크기에 따라 소자·중자·대자로 부른다.

국립국어원 사전으로 확인하기

족발 「명사」 돼지의 발. 또는 그것을 조린 음식. [영어] jokbal; braised pigs’ feet — Food made by boiling them down. [일본어] とんそく【豚足】 — 豚の足。または、それを煮詰めた料理。 [스페인어] jokbal — Pata de cerdo o plato cocido de pata de cerdo. [중국어] 猪蹄,酱猪蹄 — 猪的脚部;或指用其炖煮而成的食物。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사전에는 포르투갈어 뜻풀이가 실려 있지 않다. 참고용으로 옮기면 “jokbal — pé de porco, ou prato feito cozinhando-o lentamente” 정도가 되겠는데, 이 한 줄은 사전 번역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옮긴 것임을 밝혀 둔다.

뜻풀이 한 줄이 짧아 보이지만 그 안에 두 뜻이 다 들어 있다는 점을 눈여겨보자. “돼지의 발”과 “그것을 조린 음식”이 마침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놓여 있다. 아래는 사전이 함께 싣고 있는 실제 사용 예문이다.

손님, 족발은 무엇으로 드릴까요?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가게 주인이 손님에게 건네는 말이다. 이 질문이 나오는 이유는 족발집에서 앞발이냐 뒷발이냐, 크기는 소자냐 대자냐를 고르게 하기 때문이다. 한국 식당에서 이 문장을 들으면 “대자 하나 주세요” 하고 크기를 답하면 된다.

가게로 들어간 세 남자는 족발과 막걸리를 주문했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족발이 어떤 자리의 음식인지 이 한 문장이 다 보여 준다. 혼자가 아니라 셋이고, 밥이 아니라 술이 함께 나온다. 족발은 기본적으로 여럿이 나눠 뜯는 안주다.

돼지 족발은 약한 불로 한참 삶아야 속살까지 잘 익어서 제맛이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조리법을 말하는 문장이다. 여기서 “돼지 족발”처럼 앞에 ‘돼지’를 붙여 쓰기도 한다는 점을 확인해 두자. 실제로 족발은 두세 시간 이상 약한 불에서 조려야 껍질이 말랑해지고 살이 뼈에서 떨어진다.

족발은 노려서 조금만 먹어도 금방 질린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여기 나오는 **노리다 (norida)**는 고기에서 나는 특유의 누린 기름 냄새를 가리키는 형용사다. 족발을 삶을 때 생강과 된장, 커피나 한약재까지 넣는 집이 있는 것도 이 냄새를 잡기 위해서다. 즉 이 문장은 족발을 싫어하는 사람이 그 이유를 말할 때의 전형적인 표현이다.

그녀는 족발에 붙어 있는 살을 발라내어 아이의 입에 넣어 주었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족발이 손으로 발라 먹는 음식이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장면이다. 뼈에서 살을 떼어 남의 입에 넣어 주는 행동은 한국에서 정을 표현하는 아주 익숙한 방식이다. 음식 이름 하나에 이런 온기가 붙어 다닌다는 걸 보여 주는 예문이다.

실제 대화로 보기

상황: 이사 온 첫날 밤. 짐 박스가 아직 거실에 그대로 쌓여 있고, 두 사람은 바닥에 앉아 배달 앱을 켠 참이다.

준경: 그릇 박스가 어디 갔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냥 시켜 먹자. I have no idea where the box with the dishes went. Let’s just order in.

에밀리: 그럼 족발 어때? 이사한 날엔 그릇 없어도 되는 게 최고야. Then how about jokbal? On moving day, something you don’t need dishes for is the best.

준경: 오, 좋다. 근데 너 발 모양 그대로 나오는 거 안 무서워? Oh, nice. But doesn’t it freak you out that it comes out shaped like an actual foot?

에밀리: 야, 나 한국 산 지 십오 년이야. 뼈 발라 먹는 거 너보다 잘해. Hey, I’ve lived in Korea for fifteen years. I strip the bone better than you do.

준경: 인정. 그럼 족발 대자에 막걸리 한 병? Fair enough. Large jokbal and a bottle of makgeolli, then?

에밀리: 콜. 박스 위에 신문지 깔면 그게 상이지, 뭐. Deal. Spread newspaper on a box and there’s your table.

이렇게 쓰면 어색합니다

족발은 사물 이름이라 높임과 낮춤을 가리지 않지만, 학습자가 자주 걸려 넘어지는 자리가 두 군데 있다.

✗ (식당에서) 사장님, 돼지발 하나 주세요. ✓ (식당에서) 사장님, 족발 소자 하나 주세요. → 사전 예문의 “돼지 족발”처럼 앞에 ‘돼지’를 붙일 수는 있지만, 음식 이름은 언제나 ‘족발’이다. ‘돼지발’이라고 하면 메뉴가 아니라 손질 안 된 재료를 달라는 말처럼 들린다.

✗ (친구 손을 보며) 네 손 진짜 족발 같다. ✓ (친구 손을 보며) 네 손 진짜 통통하다. → 족발을 사람의 손발에 갖다 붙이면 그 순간 놀림말이 된다. 아주 친한 사이의 농담이 아니면 상대가 정색한다. 하물며 손윗사람에게는 절대 쓰지 않는다.

상황별 활용 예문

1. 야근이 확정된 저녁, 동료에게

한국 회사에서 야근이 길어질 때 가장 흔한 위로는 음식이다. 반말로 편하게 던지는 말이다.

오늘 야근 확정이래. 족발이나 시켜 먹자. oneul yageun hwakjeongirae. jokbarina sikyeo meokja. (오늘 야근 확정이래. 족발이나 시켜 먹자. / They say we’re definitely working late. Let’s just order jokbal.)

‘-이나’를 붙이면 “대단한 건 아니지만 이거라도”라는 느낌이 붙어서 부담 없이 권하는 말이 된다.

2. 부모님께 대접할 때

족발은 씹기 부드럽고 나눠 먹기 좋아서 어른을 모시는 자리에도 자주 오른다. 이때는 존댓말로 간다.

어머니, 오늘은 제가 살게요. 족발 좋아하시죠? eomeoni, oneureun jega salgeyo. jokbal joahasijyo? (어머니, 오늘은 제가 살게요. 족발 좋아하시죠? / Mom, it’s on me today. You like jokbal, right?)

3. 가게에 들어가 주문할 때

사전 예문의 “손님, 족발은 무엇으로 드릴까요?”에 대한 답이 바로 이것이다.

여기 족발 소자 하나랑 막걸리 한 병 주세요. yeogi jokbal soja hanarang makgeolli han byeong juseyo. (여기 족발 소자 하나랑 막걸리 한 병 주세요. / One small jokbal and a bottle of makgeolli, please.)

존댓말·반말과 비슷한 표현

족발 자체는 명사라 형태가 변하지 않고, 높임은 뒤에 오는 서술어가 진다.

  • 반말: 족발 시킬까? (jokbal sikilkka?) — 친구, 동생, 가까운 동료에게
  • 존댓말: 족발 시킬까요? (jokbal sikilkkayo?) — 선배, 상사, 처음 만난 사람에게
  • 아주 정중하게: 족발 하나 부탁드립니다. (jokbal hana butakdeurimnida.) — 전화 주문이나 격식 있는 자리에서

밤에 함께 상에 오르는 이웃 음식들과 견주면 족발의 자리가 더 또렷해진다.

표현온도·강도쓰는 자리
족발 (jokbal)기름지고 든든, 뜯어 먹는 맛야식·술안주·회식 2차. 여럿이 나눠 먹는 자리
보쌈 (bossam)담백하고 정갈김치에 싸 먹는 음식. 가족 식사나 손님상에도 무난
순대 (sundae)서민적이고 간편분식집·포장마차. 혼자 먹기도 좋음
닭발 (dakbal)맵고 자극적, 확실히 술 쪽늦은 밤 술자리. 매운 걸 못 먹는 자리엔 안 시킴

족발과 보쌈은 배달 앱에서 아예 한 카테고리로 묶여 있어서 반반으로 시키는 사람도 많다. 학습자가 둘을 자주 헷갈리는데, 족발은 발을 간장에 조린 것이고 보쌈은 살코기를 삶아 김치와 함께 내는 것이다.

문화 배경 — 겹말이 된 이름

‘족발’이라는 이름 자체가 재미있다. ‘족(足)’은 한자로 이미 ‘발’이라는 뜻이다. 거기에 우리말 ‘발’이 한 번 더 붙었으니, 뜻이 두 번 겹친 이름인 셈이다. 이런 겹말은 한국어에 종종 있는데, 말이 굳어져 쓰이다 보면 원래 한자 뜻이 잘 안 느껴져서 같은 뜻의 우리말을 덧붙이게 된다. 어차피 지금은 아무도 ‘족’만 따로 떼어 쓰지 않으니 ‘족발’ 통째로 한 단어로 외우면 된다.

족발이 놓이는 자리는 대개 정해져 있다. 밤이고, 여럿이고, 술이 있다. 회식 1차에서 고기를 먹고 2차로 옮겨 앉을 때, 야근이 자정을 넘길 때, 이사나 대청소처럼 몸 쓰는 일을 끝냈을 때다. 서울에는 장충동처럼 족발집이 줄지어 늘어선 거리가 따로 있을 만큼 오래된 배달·외식 메뉴이기도 하다.

한국 드라마를 보면 이 음식이 어떤 감정에 붙어 있는지 금방 보인다. 실연한 친구를 위로하러 가면서 손에 들고 가는 봉지, 이삿짐을 다 옮긴 뒤 빈 방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펼치는 상, 늦은 밤 부모가 자식 방문 앞에 말없이 놓아 두는 접시 — 대사 없이도 “같이 있어 줄게”라는 말이 되는 음식이다. 사전 예문에 나온 “살을 발라내어 아이의 입에 넣어 주었다”는 장면도 정확히 그 결이다.

먹는 방식에도 나름의 규칙이 있다. 비닐장갑을 끼고 손으로 뜯고, 새우젓에 찍고, 쌈에 싸서 마늘과 함께 먹는다. 콜라겐이 많아 피부에 좋다는 말과 함께 권하는 사람도 많은데, 사실 그 말은 권하는 사람의 다정함에 더 가깝다. 야식으로 시킬 때는 막국수나 냉면을 함께 시켜 마무리하는 것이 흔한 조합이다.

오늘의 퀴즈

족발집에 들어가 앉았다. 가장 자연스러운 주문은 무엇일까?

① 사장님, 돼지발 한 접시 주세요. ② 사장님, 족발 소자 하나 주세요. ③ 사장님, 족발 한 마리 주세요.

정답: ②

①의 ‘돼지발’은 음식 이름이 아니라 손질 전 재료를 가리키는 말처럼 들린다. 메뉴판에 적힌 이름은 언제나 ‘족발’이다. ③의 ‘마리’는 살아 있는 짐승을 통째로 셀 때 쓰는 단위라 발 요리에는 맞지 않는다. 족발은 접시로 세거나, 가게에서는 소자·중자·대자로 크기를 말해 주문한다. 이렇게 답하면 사전 예문 “손님, 족발은 무엇으로 드릴까요?”에 딱 맞는 대답이 된다.

이 글의 단어 뜻풀이와 예문은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krdict.korean.go.kr)에서 가져왔으며, 해당 부분(번역 포함)은 CC BY-SA 2.0 KR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배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