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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 한국에서는 '닭'과 '치킨'이 다른 음식입니다

치킨

치킨(chikin)은 토막을 낸 닭에 밀가루 등을 묻혀 기름에 튀기거나 구운 음식이라는 뜻이다. 영어 chicken을 그대로 들여온 말처럼 보이지만, 한국어로 건너오면서 뜻이 훨씬 좁아졌다. 금요일 저녁 여덟 시, 아파트 복도에 고소한 기름 냄새가 퍼지고 엘리베이터에서 헬멧 쓴 배달 기사가 내리는 장면 — 한국 사람이 ‘치킨’이라고 말할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정확히 그 한 가지다.

그래서 학습자가 가장 먼저 부딪히는 벽이 여기 있다. 영어의 chicken은 마당에서 우는 살아 있는 닭도, 마트 정육 코너의 생고기도, 삼계탕 속 살점도 전부 가리킨다. 하지만 한국어의 치킨 (chikin) 은 오직 튀기거나 구워서 완성된 그 음식만 가리킨다. 재료와 동물은 닭 (dak) 이 맡는다. 이 경계선 하나만 확실히 잡아도 한국어 문장이 갑자기 자연스러워진다.

뉘앙스는 가볍고 밝다. 격식을 따지는 말이 아니라 손윗사람 앞에서도 부담 없이 꺼낼 수 있고, 문장 끝만 상대에 맞춰 바꾸면 된다 — 치킨 드세요 (chikin deuseyo) / 치킨 먹어 (chikin meogeo). 오히려 이 단어가 실제로 하는 일은 음식 이름보다 신호에 가깝다. 치킨 시킬까? (chikin sikilkka?) 라는 한마디는 ‘오늘 저녁은 좀 놀자, 조금 더 같이 있자’는 제안이다. 그래서 이 말은 배가 고플 때보다 마음이 헐거워질 때 더 자주 나온다.

국립국어원 사전으로 확인하기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은 이 단어를 이렇게 풀이한다.

치킨 「명사」 토막을 낸 닭에 밀가루 등을 묻혀 기름에 튀기거나 구운 음식. [en] fried chicken — A dish made by coating chopped chicken with flour, and frying or baking it. [ja] フライドチキン。とりのからあげ【鶏のから揚げ】 — 適当に切った鶏肉に小麦粉などの衣をまぶして、食用油で揚げたり焼いたりした食べ物。 [es] pollo frito, pollo a la brasa — Trozos de pollo rebozados en harina y fritos o cocidos a la brasa. [zh] 炸鸡 — 将切成块的鸡肉裹上面粉,放入油锅里炸或烤的食物。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뜻풀이에서 ‘토막을 낸 닭’과 ‘튀기거나 구운’이라는 두 조건에 주목하자. 조리 전 상태는 이 단어에 들어오지 못한다. 참고로 포르투갈어 뜻풀이는 사전에 실려 있지 않아 아래 번역은 저희가 직접 옮긴 것이며, 사전 수록 내용이 아니다 — frango frito: pedaços de frango empanados com farinha, fritos ou assados.

이제 사전이 제시한 실제 사용 예문을 하나씩 보자.

지수는 맥주에 치킨을 곁들여 먹으면서 축구 경기를 보았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치킨이 놓이는 가장 전형적인 자리다. 맥주와 축구 중계. 한국에서 이 세 가지는 거의 한 세트로 움직여서, 국가대표 경기가 있는 날이면 치킨집 주문이 밀려 배달이 두 시간씩 걸리기도 한다.

너는 치킨 먹을 때 어떤 부위를 제일 좋아해?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친한 사이의 반말 질문이다. 한국에서 이 질문은 취향을 묻는 가벼운 말 같지만, 실제로는 ‘내가 다리를 양보할지 말지’를 정하는 실용적인 협상이기도 하다. 닭다리, 날개, 퍽퍽살(가슴살)에 각자 확고한 파가 있다.

우리집 앞에서 치킨을 들고 서 있는 지수의 모습에 서운한 마음이 눈 녹듯 녹아버렸어. 지수가 많이 미안했다고 하더라고.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이 예문은 치킨이 단순한 음식이 아님을 잘 보여 준다. 말로 사과하기 쑥스러울 때 한국 사람은 치킨을 들고 나타난다. 봉투 하나가 ‘미안해’를 대신하는 것이다.

피자를 주문하든가 치킨을 주문하든가 하나를 주문하세요.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배달 음식의 양대 산맥이 나란히 붙어 있다. 여럿이 모였을 때 ‘피자냐 치킨이냐’는 거의 의례적인 논쟁이고, 결국 둘 다 시키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닭다리로만 구성된 치킨이 인기를 끌고 있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한 문장 안에 ‘닭다리’와 ‘치킨’이 함께 있는 점이 중요하다. 재료·부위를 말할 때는 ‘닭’이 붙고(닭다리, 닭가슴살), 완성된 음식 전체를 부를 때 ‘치킨’이 된다. 두 단어의 역할 분담이 이 예문에 그대로 드러난다.

실제 대화로 보기

상황: 금요일 저녁 한강공원. 돗자리를 펴 놓고 배달 앱으로 시킨 음식을 기다리는 중이다.

준경: 기사님이 3번 출구 앞이래. 나 뛰어갔다 올게. The driver says he’s at Exit 3. I’ll run over and grab it.

에밀리: 같이 가! 나 치킨 식은 거 진짜 못 먹어. I’ll come too! I really can’t eat cold chicken.

준경: 근데 반반 시키자니까 왜 굳이 후라이드만 했어? By the way, I said let’s get half-and-half — why’d you insist on plain fried?

에밀리: 야, 치킨은 후라이드지. 양념은 세 조각 넘으면 물려. Come on, fried is what chicken is. Sauced gets cloying past three pieces.

준경: 하여간 너 한국 사람 다 됐다. 맥주는 내가 사 올게. Honestly, you’ve turned completely Korean. I’ll go buy the beer.

에밀리: 좋아, 그럼 진짜 치맥이네. 치킨 오기 전에 자리 맡아 놓을게. Nice, then it’s proper chimaek. I’ll hold our spot before the chicken gets here.

이렇게 쓰면 어색합니다

치킨은 사물의 이름이라 상대를 가려 쓰는 말은 아니다. 대신 학습자가 거의 예외 없이 겪는 오해 두 가지를 짚는다.

✗ 할머니 댁 마당에서 치킨이 울어요. ✓ 할머니 댁 마당에서 이 울어요. → 살아 있는 동물은 절대 치킨이 아니다. 치킨은 조리가 끝난 음식만 가리키므로, 이렇게 말하면 마당에서 튀긴 닭이 울고 있는 장면이 된다.

✗ 감기에 걸려서 엄마가 치킨죽을 끓여 주셨어요. ✓ 감기에 걸려서 엄마가 닭죽을 끓여 주셨어요. → 국물 요리나 찜 요리의 재료를 말할 때도 ‘닭’을 쓴다. 닭죽, 닭볶음탕, 닭갈비처럼 전통 조리법에는 치킨이 붙지 않는다. 치킨이 들어가는 이름은 대체로 튀김에서 출발한 요리(치킨 샐러드, 치킨 버거)다.

상황별 활용 예문

1. 회식이 일찍 끝나 아쉬울 때 (직장, 존댓말)

아직 아홉 시밖에 안 됐는데, 야식으로 치킨 어때요? 제가 시킬게요. (ajik ahop sibakke an dwaenneunde, yasigeuro chikin eottaeyo? jega sikilgeyo.) It’s only nine — how about chicken for a late-night snack? I’ll order it. 여기서 치킨은 ‘조금 더 같이 있자’는 제안을 부드럽게 감싸는 포장지 역할을 한다.

2. 힘든 하루를 끝내고 자신에게 보상할 때 (혼잣말, 반말)

오늘 발표 무사히 끝났으니까 나한테 치킨 한 마리 사 줘야겠다. (oneul balpyo musahi kkeunnasseunikka nahante chikin han mari sa jwoyagetda.) The presentation went fine, so I should treat myself to a whole chicken. 치킨은 ‘마리’로 센다. 한 마리, 두 마리 — 조각이 아니라 통째로 세는 것이 기본 단위다.

3. 집들이에 온 손님을 챙길 때 (윗사람에게, 존댓말)

치킨 좀 더 드세요. 다리는 아직 손도 안 댔어요. (chikin jom deo deuseyo. darineun ajik son do an daesseoyo.) Please have some more chicken. Nobody’s touched the drumsticks yet. 단어 자체는 그대로 두고 동사만 ‘드세요’로 올린다. 치킨에는 높임말 형태가 따로 없다.

존댓말·반말과 비슷한 표현

표현온도·강도쓰는 자리
치킨 (chikin)중립·일상어디서나. 배달·외식·대화 모두
통닭 (tongdak)정겹고 옛스러움시장 전기구이집, 옛날 통닭집. 윗세대가 즐겨 씀
닭 (dak)재료·동물 자체요리 재료, 살아 있는 닭. 튀김 음식엔 안 씀
치맥 (chimaek)가볍고 신남또래·SNS. 격식 차린 자리엔 안 씀

치킨은 명사라서 반말·존댓말이 단어 자체에서 갈리지 않는다. 갈리는 곳은 함께 쓰는 동사다. 친구에게는 치킨 시키자 (chikin sikija), 손윗사람에게는 치킨 주문할까요? (chikin jumunhalkkayo?) 처럼 바꾼다. 참고로 ‘시키다’는 배달을 부르는 일상어이고 ‘주문하다’가 조금 더 반듯하게 들린다.

문화 배경 — 금요일 밤의 국민 음식

조어 방식은 분명하다. 치킨은 영어 chicken을 그대로 들여온 외래어인데, 한국에 들어오면서 뜻이 ‘튀긴 닭 요리’로 좁아졌다. 이미 ‘닭’이라는 튼튼한 고유어가 동물과 재료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새 단어는 비어 있던 자리 — 서양식으로 튀긴 요리 — 로 밀려 들어간 것이다. 외래어가 원어보다 좁은 뜻을 갖게 되는 전형적인 사례다. 치맥(chimaek) 역시 치킨과 맥주의 앞 글자를 딴 합성어다.

순서로 보면 1960~70년대 시장과 명동의 전기구이 통닭이 먼저였고, 1980년대에 밀가루 옷을 입힌 프라이드치킨과 양념치킨이 등장하면서 지금의 풍경이 만들어졌다. 2002년 월드컵을 거치며 ‘경기 보는 날엔 치킨’이 굳어졌고, 지금도 프로야구 시즌이면 구장 관중석에 치킨 상자가 줄지어 놓인다.

드라마도 한몫했다. 2014년 방영된 SBS 《별에서 온 그대》에서 여주인공이 눈 내리는 날 창밖을 보며 던진 한마디는 아시아 여러 나라에 치맥 열풍을 만들었다.

눈 오는 날에는 치맥인데. —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SBS, 2014)

이 대사 이후 중국과 동남아시아에 한국식 치킨집이 빠르게 늘었다. 한국에는 치킨 브랜드가 수십 개에 달하고 동네마다 치킨집이 여러 곳 있어서, ‘한국은 치킨집이 편의점보다 많다’는 농담이 오래 돌았다. 그만큼 자영업의 현실이 담긴 말이기도 하다. 그러니 한국 친구가 ‘치킨 시킬까?‘라고 물으면, 그건 저녁 메뉴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밤을 같이 보내자는 초대에 가깝다.

오늘의 퀴즈

다음 중 한국어로 자연스러운 문장은 무엇일까요?

① 할머니 댁 치킨이 알을 낳았어요. ② 감기에 걸려서 치킨죽을 먹었어요. ③ 오늘 저녁에 치킨 시켜 먹을까?

정답 보기

정답: ③ 오늘 저녁에 치킨 시켜 먹을까?

①은 살아 있는 닭이므로 ‘닭이 알을 낳았어요’, ②는 전통 조리법이므로 ‘닭죽’이 맞습니다. 치킨은 튀기거나 구워서 완성된 음식에만 쓴다는 것만 기억하면 셋을 한 번에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의 단어 뜻풀이와 예문은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krdict.korean.go.kr)에서 가져왔으며, 해당 부분(번역 포함)은 CC BY-SA 2.0 KR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배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