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국어: 김치 (kimchi) — 만드는 게 아니라 담그는 음식
김치
**김치 (gimchi)**는 배추나 무 같은 채소를 소금에 절인 뒤 양념에 버무려 발효시킨 음식이라는 뜻이다.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이 가장 먼저 외우는 단어이면서, 동시에 가장 오래 오해한 채로 쓰는 단어이기도 하다. 이유는 단순하다. 김치는 메뉴판에 적힌 요리 하나의 이름이 아니라, 한국 사람의 냉장고 한 칸과 일 년 살림의 리듬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11월이 되면 뉴스가 배추값을 보도하고, 집집마다 올해는 몇 포기를 담글지 통화가 오간다. 이 단어를 제대로 쓰려면 뜻만이 아니라 이 말이 오가는 자리를 알아야 한다.
먼저 알아 둘 것은, 김치가 종류를 묶는 총칭에 가깝다는 점이다. 배추김치 (baechu-gimchi), 깍두기 (kkakdugi), 총각김치 (chonggak-gimchi), 갓김치 (gatgimchi), 파김치 (pagimchi), 오이소박이 (oisobagi) — 재료가 바뀌면 이름이 바뀌지만 전부 김치다. 그래서 한국 사람이 “집에 김치 있어?”라고 물을 때는 특정 반찬 하나를 묻는 게 아니라 “절여서 발효시킨 그 종류의 반찬”이 있느냐를 묻는 것이다.
두 번째로, 김치라는 말에는 시간이 들어 있다. 갓 버무려 아직 발효되지 않은 것은 겉절이 (geotjeori), 알맞게 익은 것은 그냥 김치, 오래 묵혀 시어진 것은 묵은지 (mugeunji) 또는 신김치 (singimchi)라고 부른다. 그래서 “김치가 맛있다”와 “김치가 잘 익었다 (gimchi-ga jal igeotda)”는 서로 다른 칭찬이다. 앞은 맛 이야기고, 뒤는 발효가 알맞은 지점에 왔다는 이야기다.
세 번째가 가장 자주 틀리는 지점인데, 김치는 만드는 게 아니라 담근다 (damgeuda). 이 동사 하나를 바꾸는 것만으로 문장이 훨씬 한국어다워진다.
국립국어원 사전으로 확인하기
먼저 국가 기관의 사전이 이 말을 어떻게 풀고 있는지 그대로 보자.
김치 「명사」 배추나 무 등의 채소를 소금에 절인 후 양념에 버무려 발효시켜서 만든 음식.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같은 사전에 실린 다국어 뜻풀이도 함께 옮긴다. 언어마다 초점이 조금씩 다른 게 재미있다.
- [en] kimchi — A staple of the Korean diet made by salting vegetables such as kimchi cabbages, white radishes, etc., and seasoning and fermenting them.
- [ja] キムチ — 白菜や大根などの野菜を塩に漬けた後、薬味を混ぜて発酵させて作った食べ物。
- [es] kimchi — Alimento que se prepara salando legumbre como el col o nabo que luego se mezcla con condimentos y se deja para la fermentación.
- [zh] 辛奇 — 把白菜或萝卜等蔬菜用盐腌过后拌上作料,经过发酵而成的食物。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영어 뜻풀이만 “a staple of the Korean diet(한국인 식단의 주된 음식)”라는 말을 앞에 세워 두었다는 점을 눈여겨볼 만하다. 중국어 표제가 파오차이(泡菜)가 아니라 辛奇(신치)인 이유는 아래 문화 배경에서 다시 다룬다.
※ 포르투갈어 뜻풀이는 이 사전에 실려 있지 않아 우리가 직접 옮겼다(자체 번역): kimchi — prato feito de vegetais como acelga ou nabo, primeiro salgados e depois temperados e fermentados.
이제 사전에 실린 실제 사용 예문을 보자. 뜻풀이보다 예문이 이 단어의 자리를 훨씬 잘 보여 준다.
그 상인은 올 겨울에는 배추 가격 인상으로 김치 가격도 상승할 것 같다고 했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 배추값이 오르면 김치값이 오른다는, 시장과 뉴스에서 해마다 반복되는 문장이다. 김치가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물가 지표에 가깝게 다뤄진다는 걸 보여 주는 예문이다.
나는 밀가루와 김치를 가지고 김치전을 만들었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 김치가 완성된 반찬이면서 동시에 다른 요리의 재료가 된다는 점이 드러난다. 김치전 (gimchijeon), 김치찌개 (gimchijjigae), 김치볶음밥 (gimchi-bokkeumbap)은 모두 시어진 김치를 처리하는 지혜에서 나온 요리다.
외국에 나가서 며칠만 있어 보면, 제일 먼저 김치 생각이 간절히 난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 향수를 말할 때 김치가 대표 선수로 나온다. “김치 생각이 나다 (gimchi saenggagi nada)”는 굳어진 표현처럼 쓰여서, 고향이 그립다는 말을 에둘러 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직접 배추를 조금씩 갈아 김치를 담그신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 바로 그 동사, 담그다가 나온다. 그리고 주체 높임 -시-가 붙어 담그신다가 된 것도 함께 보자. 김치라는 명사에는 높임말이 없고, 높임은 언제나 동사 쪽이 진다.
나는 새로 담근 김치가 입에 감겨서 계속 그것만 먹는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 “새로 담근 김치”는 겉절이 상태에 가깝다. “입에 감기다 (ibe gamgida)”는 맛이 입에 착 붙어 자꾸 손이 간다는 뜻의 관용 표현으로, 김치 이야기와 아주 잘 붙는 말이다.
실제 대화로 보기
상황: 11월 말 토요일 아침, 준경네 아파트 앞 주차장. 어제 김장을 마친 준경이 커다란 김치통을 들고 내려왔다.
준경: 이거 받아. 어제 어머니가 김치 담그셨는데 너 갖다주라고 하셨어. Take this. My mom made kimchi yesterday and told me to bring you some.
에밀리: 헐, 이 통을 다? 나 혼자 사는데 이걸 언제 다 먹어. Whoa, this whole container? I live alone — when am I ever going to finish this?
준경: 지금은 겉절이니까 그냥 먹고, 좀 있다 시어지면 찌개 끓여. 그게 더 맛있어. Right now it is fresh, so just eat it as is. Once it turns sour, make a stew with it — that is even better.
에밀리: 아 맞다, 신 김치로 끓여야 국물이 진하지. 어머니한테 잘 먹겠다고 전해 줘. Oh right, sour kimchi makes the broth richer. Tell your mom thank you for me.
준경: 응, 통은 다음에 만날 때 돌려주고. 우리 엄마 통 되게 따져. Sure. Just give the container back next time — my mom is really particular about her containers.
에밀리: 알겠어. 김치보다 통을 더 잘 지킬게. Got it. I will guard the container even better than the kimchi.
마지막 대사가 농담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있는 일이다. 김치통을 빌려주고 돌려받는 일은 한국에서 꽤 진지한 살림의 절차다.
이렇게 쓰면 어색합니다
✗ 어머니, 김치 만드셨어요? ✓ 어머니, 김치 담그셨어요? → 문법은 틀리지 않았지만 한국 사람은 김치에 만들다를 거의 쓰지 않는다. 소금에 절이고 묻어 두고 시간을 기다리는 음식에는 담그다를 쓴다. 간장·된장·술도 마찬가지다. 만들다를 쓰면 집에서 담근 게 아니라 공장에서 찍어 낸 듯한 느낌이 난다.
✗ (식당에서) 저기요, 김치 하나 주세요. ✓ (식당에서) 저기요, 김치 좀 더 주세요. → 김치는 값을 매겨 주문하는 요리가 아니라 상에 기본으로 깔리는 밑반찬이다. 하나·둘로 세어 주문하면 메뉴에 없는 걸 시키는 말이 되어 종업원이 잠깐 멈칫한다. 더 필요할 때는 “좀 더 주세요”가 맞고, 대개 값을 따로 받지 않는다.
상황별 활용 예문
상황 1 — 자취를 시작한 친구 집에 갔더니 냉장고가 텅 비어 있다.
반찬 없으면 김치라도 꺼내 먹어. (banchan eopseumyeon gimchi-rado kkeonae meogeo.)
조사 -라도는 “최선은 아니지만 그거라도”라는 뜻이다. 김치가 한국 식탁에서 최소한의 마지노선으로 여겨진다는 감각이 이 한 글자에 그대로 담겨 있다.
상황 2 — 처음 간 백반집에서 반찬이 유난히 맛있다.
여기 김치 직접 담그시나 봐요. (yeogi gimchi jikjeop damgeusina bwayo.)
식당 주인에게 통하는 최고의 칭찬이다. 사서 쓰지 않고 손수 담근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만드시나 봐요보다 담그시나 봐요가 훨씬 자연스럽다.
상황 3 — 김치냉장고 깊숙한 곳에서 오래된 통을 꺼내며.
이 김치 너무 익었다. 찌개나 끓이자. (i gimchi neomu igeotda. jjigae-na kkeurija.)
익다 (ikda)는 발효가 진행됐다는 뜻이지 상했다는 뜻이 아니다. 너무 익은 김치는 버리는 게 아니라 요리 재료로 승격된다. 상하다 (sanghada)와 헷갈리지 말 것 — 그건 정말 버려야 하는 상태다.
존댓말·반말과 비슷한 표현
김치는 사물의 이름이라 존댓말과 반말의 구별이 따로 없다. 높임은 언제나 함께 쓰는 동사가 진다. 담그다 → 담그시다, 먹다 → 드시다로 바뀌는 식이다. “어머니가 김치를 담그신다”, “할머니, 김치 좀 드세요 (halmeoni, gimchi jom deuseyo)”처럼 쓰면 된다.
대신 학습자가 자주 헷갈리는 것은 김치와 그 이웃 단어들의 경계다.
| 표현 | 뉘앙스·범위 | 쓰는 자리 |
|---|---|---|
| 김치 (gimchi) | 절여 발효시킨 반찬 전체를 아우르는 총칭 | 어디서나. 종류를 따지지 않을 때 |
| 겉절이 (geotjeori) | 갓 버무려 아직 발효 전. 아삭하고 신맛이 없다 | 김장 직후, 식당에서 “겉절이 주세요” |
| 묵은지 (mugeunji) | 일 년 넘게 묵혀 시고 깊은 맛 | 찜·찌개 이야기할 때. 별미 대접 |
| 김장 (gimjang) | 음식이 아니라 늦가을에 김치를 대량으로 담그는 일 | 11~12월. 가족 행사처럼 말한다 |
마지막 줄을 특히 조심하자. “김장 먹었어요”는 어색하고, “김장 했어요 / 김장 도와드렸어요”가 맞다. 김장은 먹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다.
문화 배경 — 담그고, 나누고, 통을 돌려받는 일
어원을 먼저 짚자. 김치는 한자어 침채(沈菜, 채소를 물에 담근다)에서 딤채를 거쳐 김치로 굳어졌다는 설이 가장 널리 받아들여진다. 1990년대에 나온 김치 전용 냉장고 브랜드 이름이 ‘딤채’인 것도 이 옛말에서 가져온 것이다. 담근다는 동사가 이 단어의 뿌리에 그대로 박혀 있는 셈이다.
김장은 늦가을에 온 가족이, 때로는 이웃까지 모여 하루 종일 배추를 절이고 속을 버무리는 연중행사다.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는데, 등재된 것은 김치라는 음식이 아니라 ‘김장,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라는 점이 중요하다. 무엇을 먹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나누느냐가 핵심이라고 국제기구가 인정한 것이다. 그래서 김장 다음 날이면 대화에 나온 준경처럼 통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생기고, 빈 통을 돌려주는 일이 다음 만남의 구실이 된다.
한국 드라마에서 김장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온 가족이 한자리에 오래 앉아 손을 놀리는 몇 안 되는 상황이라, 묵혀 둔 갈등이 터지거나 반대로 슬며시 봉합되는 자리로 쓰기에 알맞기 때문이다. 절인 배추 사이로 오가는 말이 대사보다 많은 걸 전한다.
마지막으로 사전의 중국어 표제가 泡菜(파오차이)가 아니라 辛奇(신치)인 이유. 한국 정부가 2021년에 김치의 공식 중국어 표기를 辛奇로 정리했기 때문이다. 발음이 김치와 가깝고 ‘맵고 기이하다’는 뜻의 글자를 골랐다.
덤으로 하나. 한국에서 사진을 찍을 때 “치즈” 대신 “김치~”라고 외친다. 마지막 모음에서 입꼬리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한국에 가서 카메라 앞에 섰을 때 이 말이 들리면 웃으면 된다.
오늘의 퀴즈
어머니가 배추를 절여 김치를 만드는 장면을 가장 자연스러운 한국어로 옮긴 것은?
- 어머니는 김치를 만드신다.
- 어머니는 김치를 담그신다.
- 어머니는 김치를 요리하신다.
정답 보기
정답은 2번, 어머니는 김치를 담그신다 (eomeoni-neun gimchi-reul damgeusinda).
1번은 문법상 틀리지 않지만 공장에서 생산하는 느낌이 나고, 3번의 요리하다는 불에 익히는 조리에 쓰는 말이라 발효 음식과는 맞지 않는다. 절이고 묻어 두고 시간을 기다리는 음식에는 담그다를 쓴다는 것만 기억하면, 오늘 배운 것의 절반은 챙긴 셈이다.
이 글의 단어 뜻풀이와 예문은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krdict.korean.go.kr)에서 가져왔으며, 해당 부분(번역 포함)은 CC BY-SA 2.0 KR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배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