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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 좋아하는 그곳으로 떠나는 팬심의 여행

한국 드라마를 정주행하고 나면 이상한 마음이 생긴다. 주인공이 눈물 흘리던 그 바닷가, 두 사람이 처음 마주친 그 골목이 실제로 어디인지 궁금해지는 것이다. 결국 주말에 기차표를 끊고 그곳을 직접 찾아간다. 화면 속 장소에 내 두 발로 서 보는 순간의 그 벅참 — 한국 팬들은 이 여행을 성지순례 (seongjisullye) 라고 부른다.

성지순례

성지순례 (seongjisullye) 는 원래 종교에서 온 말이다. ‘성지(聖地)‘는 성스러운 땅을, ‘순례(巡禮)‘는 거룩한 곳을 찾아 돌아다니는 일을 뜻한다. 그래서 본래는 신자가 예루살렘이나 메카 같은 종교적 성지를 찾아가는 경건한 여정을 가리켰다.

그런데 요즘 한국의 젊은 세대, 특히 팬 문화 속에서 이 말은 완전히 다른 온도로 쓰인다. 좋아하는 드라마·영화의 촬영지, 아이돌이 다녀간 식당, 뮤직비디오에 나온 거리를 일부러 찾아가는 일 — 이것을 성지순례 라고 한다. 종교적 경건함이 있던 자리를 이제는 ‘덕심(팬으로서의 애정)‘이 대신 채운 셈이다. 온라인에서는 뜻이 한 번 더 넓어져서, 어떤 화제의 ‘원조 게시물’이나 전설처럼 회자되는 명소를 찾아가는 것도 성지순례라고 부른다.

핵심 뉘앙스는 ‘일부러, 마음먹고 찾아간다’는 데 있다. 그냥 지나가다 들르는 게 아니라, 그 장소 자체가 목적이 되어 시간과 돈을 들여 순례하듯 방문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말에는 ‘나 이만큼 좋아한다’는 자부심 섞인 설렘이 함께 묻어난다.

실제 대화로 보기

상황: 주말 오후, 강릉의 한 바닷가 버스정류장. 에밀리가 좋아하는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을 찍은 곳이라, 준경을 끌고 서울에서 세 시간을 달려왔다.

준경: 에밀리, 우리 이거 보려고 진짜 여기까지 온 거야? 그냥 버스정류장인데. Emily, we really came all the way here just to see this? It’s just a bus stop.

에밀리: 무슨 소리야. 여기가 그 마지막 장면 찍은 데라니까. 나한테는 완전 성지순례야. What do you mean? This is where they shot that final scene. For me, this is a total pilgrimage.

준경: 하긴, 너 그 드라마 다섯 번 봤다며. Well, you did say you watched that drama five times.

에밀리: 응, 여기 딱 서 있으니까 소름 돋아. 사진 좀 찍어줘, 그 각도로. Yeah, standing right here gives me goosebumps. Take a picture — that angle.

준경: 자, 웃어. …근데 저기 저 카페도 거기 나온 데 아니야? Okay, smile. …By the way, isn’t that café over there also in the show?

에밀리: 맞아! 그럼 우리 카페까지 제대로 성지순례 하는 거네. 가자! Yes! Then we’re doing the café pilgrimage properly too. Let’s go!

상황별 활용 예문

여기서부터는 직접 만든 예문으로, 실제로 이 표현이 어떻게 쓰이는지 살펴보자.

  1. 팬의 여행 계획 — “이번 휴가 때 부산으로 성지순례 갈 거야. 그 영화 나온 카페 다 돌 거야. (ibeon hyuga ttae busaneuro seongjisullye gal geoya.)” → 좋아하는 작품의 배경지를 통째로 여행 코스로 짜는, 가장 전형적인 쓰임이다.

  2. 온라인 원조 찾기 — 인터넷에서 오래된 명언이나 유명한 짤(밈)의 ‘원본 글’을 발견하면, 사람들은 댓글에 “성지순례 왔습니다 (seongjisullye watseumnida)“라고 적는다. → “전설의 그 게시물, 드디어 직접 보러 왔다”는 놀이 같은 표현이다.

  3. 맛집·단골집 방문 — “그 아이돌 자주 온다는 국밥집, 나 어제 성지순례 하고 왔어. (geu aideol jaju ondaneun gukbapjip, na eoje seongjisullye hago wasseo.)” → 스타가 다녀간 장소를 직접 찾아가 ‘인증’하는 문화다.

존댓말·반말과 유사 표현

  • 반말: “나 어제 성지순례 갔다 왔어. (na eoje seongjisullye gatda wasseo.)”
  • 존댓말: “저 지난 주말에 성지순례 다녀왔어요. (jeo jinan jumare seongjisullye danyeowasseoyo.)”

‘성지순례’는 보통 뒤에 가다·하다·다녀오다 (gada·hada·danyeooda) 를 붙여 동사처럼 쓴다. 비슷한 결의 말로는 무언가에 깊이 빠져 열정적으로 즐기는 것을 뜻하는 덕질 (deokjil) 이 있다. 성지순례는 그 덕질을 실천하는 한 방식인 셈이다. 또 장소만 콕 집어 부를 때는 줄여서 그냥 성지 (seongji) 라고도 한다. 예: “여기가 그 드라마 성지야. (yeogiga geu drama seongjiya.)”

문화 배경

성지순례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데에는 한류의 힘이 크다. 드라마 한 편이 세계적으로 히트하면, 그 촬영지에는 각국에서 팬들이 몰려든다. 실제로 지방 도시와 지방자치단체들은 촬영지를 관광 상품으로 만들어 안내 표지판을 세우고 지도를 나눠 주기도 한다. 화면 속 낭만이 실제 지역 경제를 움직이는 것이다.

동시에 이 말은 인터넷 밈으로도 생생하게 살아 있다. 누군가 대단한 일을 해낸 게시물, 혹은 훗날 유명해질 ‘떡밥’의 시작점을 발견하면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 “성지순례 왔다”며 흔적을 남긴다.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좋아하는 마음을 발걸음(혹은 클릭)으로 증명한다는 점에서 그 뿌리는 똑같다.

마무리 퀴즈

친구가 “나 이번 주말에 그 드라마 촬영한 섬으로 여행 간대!”라고 말했다. 이 상황을 요즘 유행하는 한 단어로 표현하면?

정답: 성지순례 (seongjisullye) — 좋아하는 작품의 배경지를 일부러 찾아가는 팬의 여행!

이 글의 단어 뜻풀이와 예문은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krdict.korean.go.kr)에서 가져왔으며, 해당 부분(번역 포함)은 CC BY-SA 2.0 KR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배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