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글

퇴사 (toesa) — 사전에는 두 가지 뜻, 사무실에는 한 가지 뜻

퇴사

**퇴사 (toesa)**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떠나는 일이라는 뜻이다. 한국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봉투 하나를 상사 책상에 툭 올려놓고 나가는 장면, 그 장면 전체를 두 글자로 줄이면 바로 이 말이다. 친구에게서 “나 퇴사했어”라는 메시지가 오면 그건 오늘 하루 근무가 끝났다는 뜻이 아니라, 그 회사에 더는 나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사전을 펼치면 이야기가 조금 갈라진다. 국립국어원 사전은 퇴사에 뜻을 두 개 싣고 있는데, 첫 번째가 “회사에서 일을 끝내고 집으로 감”이다. 사전에는 분명히 있지만, 오늘날 한국 사람들은 그 뜻으로 이 말을 거의 쓰지 않는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갈 때는 **퇴근 (toegeun)**이라고 한다. 그래서 저녁 여섯 시에 “먼저 퇴사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면 사무실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는다. 말한 사람은 사전의 1번 뜻으로 말했는데, 듣는 사람은 전부 2번 뜻으로 알아듣기 때문이다.

퇴사라는 단어 자체에는 감정이 실려 있지 않다. 화가 나서 나가든, 더 좋은 곳으로 옮기든, 몸이 아파 쉬려고 나오든 전부 퇴사다. 심지어 해고를 당한 경우에도 겉으로는 퇴사라고 표현해 주는 일이 많다. 그래서 이 말은 상대의 사정을 굳이 들추지 않고 사실만 전할 수 있게 해 주는, 꽤 배려 깊은 단어이기도 하다. 다만 단어가 중립적이라고 해서 소식까지 가벼운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퇴사 소식은 이사나 결혼처럼 “인생의 큰 사건” 칸에 들어간다. 그래서 이 말을 들은 사람의 첫 반응은 거의 언제나 똑같다. “왜?”

국립국어원 사전으로 확인하기

먼저 사전이 뭐라고 적어 두었는지 그대로 보자. 뜻이 두 개라는 점, 그리고 그 두 뜻이 얼마나 다른지가 이 단어의 전부다.

퇴사 「명사」

  1. 회사에서 일을 끝내고 집으로 감. [en] leaving work; going home from work — An act of going home after finishing a day at work. [ja] たいしゃ【退社】 — 会社でその日の勤めを終えて帰宅すること。 [es] retirada del trabajo, salida de la oficina — Acción de regresar a casa después de terminada la jornada laboral. [zh] 下班 — 完成工作从公司回家。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퇴사 「명사」 2. 회사를 그만둠. [en] resignation; quitting a job — To quit one’s job at a company. [ja] たいしゃ【退社】 — 会社を辞めること。 [es] renuncia al trabajo — Acción de renunciar al trabajo. [zh] 辞职,退出公司 — 不再做某公司的工作。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포르투갈어 번역은 이 사전에 실려 있지 않아, 아래는 이 글에서 직접 옮긴 것이다: 1. saída do trabalho / 2. demissão, pedido de demissão.

이제 사전이 함께 실어 둔 실제 사용 예문을 보자. 예문이 전부 2번 뜻으로 쓰이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보면 좋다.

승규야 너 퇴사했다며?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친구 사이의 반말이다. “-다며?”는 남에게 전해 들은 소식을 확인할 때 쓰는 말끝이라, 이 한 문장 안에 “소문으로 먼저 들었다”는 사정까지 들어 있다. 퇴사 소식이 본인 입이 아니라 남의 입으로 먼저 도는 일은 아주 흔하다.

내가 퇴사한다는 걸 온 회사 사람들이 다 알고 있어서 정말 깜짝 놀랐어.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앞 예문의 뒷이야기 같은 문장이다. 한국 회사에서 퇴사 소식이 퍼지는 속도를 잘 보여 준다. 보통 팀장에게 먼저 말하고 순서대로 알리려 하지만, 대개 그 계획보다 소문이 빠르다.

삼 년 전에 홍보를 하는 회사에 입사했고 작년 이월에 동 회사를 퇴사했습니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면접이나 이력서에서 쓰는 딱딱한 말투다. **입사 (ipsa, 회사에 들어감)**와 퇴사가 짝을 이루어 한 직장의 시작과 끝을 표시한다. 경력을 설명할 때 이 두 단어는 거의 항상 함께 나온다.

직원들이 줄줄이 퇴사하면서 사실상 업무가 교착한 상태이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뉴스나 보고서의 문장이다. “줄줄이”는 여러 사람이 잇따라 나가는 모양을 그린 말이라, 회사 사정이 나빠졌다는 뜻이 문장 밖에 깔려 있다.

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만두고 싶죠. 하지만 가족의 만류에 퇴사할 생각을 접곤 합니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인터뷰 답변이다. “퇴사할 생각을 접다”라는 표현을 통째로 외워 두면 좋다. 마음속으로만 여러 번 퇴사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정확히 담은 말이다.

실제 대화로 보기

상황: 평일 오후 세 시, 동네 마트 채소 코너. 회사에 있어야 할 시간에 준경이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장바구니를 들고 서 있다.

에밀리: 어? 준경 씨? 이 시간에 여기서 뭐 해요? Huh? Junkyung? What are you doing here at this hour?

준경: 아… 나 지난달에 퇴사했어. Ah… I quit my job last month.

에밀리: 네? 왜 말을 안 했어요! 나 진짜 하나도 몰랐는데. What? Why didn’t you tell me! I had absolutely no idea.

준경: 말하면 다들 왜 그만뒀냐고 물어보잖아. 그거 설명하는 게 더 피곤해. If I tell people, everyone asks why I quit. Explaining that is more exhausting.

에밀리: 하긴. 근데 얼굴은 퇴사하기 전보다 훨씬 좋아 보여요. Fair enough. But you look way better than you did before you quit.

준경: 티 나? 요즘 아홉 시에 일어나서 아침도 챙겨 먹어. Can you tell? These days I get up at nine and even eat breakfast.

에밀리: 부럽다. 그래서 이제 뭐 할 거예요? I’m jealous. So what are you going to do now?

준경: 몰라. 일단 세 달은 아무 계획 없이 살아 보려고. No clue. For now I’m going to spend three months with no plans at all.

이렇게 쓰면 어색합니다

✗ (저녁 여섯 시, 팀장님께) 팀장님, 저 먼저 퇴사하겠습니다. ✓ (저녁 여섯 시, 팀장님께) 팀장님, 저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 사전에 “일을 끝내고 집으로 감”이라는 뜻이 있긴 하지만, 오늘날 사무실에서 이 말은 오직 “회사를 그만둔다”로만 들린다. 하루를 마치고 집에 갈 때는 반드시 퇴근이다.

✗ (모임에서 오늘 처음 만난 사람에게) 아, 퇴사하셨다면서요? 왜요? 혹시 잘리신 거예요? ✓ (모임에서 오늘 처음 만난 사람에게) 아, 요즘은 좀 쉬고 계세요? → 퇴사라는 단어 자체는 중립적이지만, 이유를 캐묻는 순간 남의 사정을 파고드는 말이 된다. 한국에서 퇴사 사유는 꽤 사적인 영역이라, 본인이 먼저 꺼낼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예의다.

상황별 활용 예문

1)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근황을 전할 때 (반말)

나 저번 달에 퇴사하고 지금은 좀 쉬고 있어. (na jeobeon dal-e toesahago jigeumeun jom swigo isseo.) I quit last month and I’m taking a break right now.

“퇴사하고 쉬고 있어”는 하나의 덩어리처럼 자주 붙어 다닌다. 다음 계획을 아직 말하고 싶지 않을 때 쓰기 좋은, 부드럽게 문을 닫는 표현이다.

2) 팀원들에게 정식으로 알릴 때 (존댓말)

이번 달까지만 근무하고 퇴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ibeon dalkkajiman geunmuhago toesahage doeeotseumnida. geudongan gamsahaetseumnida.) I’ll be working until the end of this month and then leaving the company. Thank you for everything.

“퇴사합니다” 대신 “퇴사하게 되었습니다”를 쓴 점이 핵심이다. 내가 결정했다는 느낌을 한 겹 눌러서, 남는 사람들에게 부담을 덜 주는 말투다. 퇴사 인사에서 거의 공식처럼 쓰인다.

3) 떠난 동료의 안부를 조심스럽게 물을 때 (존댓말)

김 대리님 퇴사하셨다면서요? 잘 지내신대요? (gim daerinim toesahasyeotdamyeonseoyo? jal jinaesindaeyo?) I heard Mr. Kim left the company. Is he doing all right?

이유를 묻지 않고 안부만 묻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앞의 “어색합니다” 항목과 정확히 반대되는, 안전하고 따뜻한 물음이다.

존댓말·반말과 비슷한 표현

말끝만 바꾸면 세 가지 높임을 모두 만들 수 있다. 친구에게는 퇴사했어 (toesahaesseo), 조금 편한 사이의 윗사람이나 동료에게는 퇴사했어요 (toesahaesseoyo), 공식적인 자리나 문서에서는 **퇴사했습니다 (toesahaetseumnida)**를 쓴다. 회사를 떠난 사람을 가리키는 **퇴사자 (toesaja)**라는 말도 있는데, 이건 사람 앞에서 부르는 말이 아니라 인사팀 서류에나 등장하는 단어다.

비슷해 보이는 말들이 여럿이라 자리를 가려 써야 한다.

표현온도·강도쓰는 자리
퇴사 (toesa)중립. 사실만 전달일상 대화·메신저. 가장 널리 쓰임
퇴근 (toegeun)중립. 매일 있는 일오늘 일과를 마치고 집에 갈 때
사직 (sajik)딱딱하고 공식적사직서·공문·뉴스 기사
퇴직 (toejik)무겁고 최종적정년이나 오래 다닌 직장을 떠날 때. 퇴직금
이직 (ijik)중립, 살짝 긍정적갈 회사가 이미 정해져 있을 때
그만두다 (geumanduda)담백한 구어친구 사이 반말 대화

특히 헷갈리기 쉬운 것이 퇴사와 이직이다. 이직은 다음 회사가 정해져 있다는 뜻을 품고 있어서, 갈 곳 없이 그만둔 사람에게 “이직하셨어요?”라고 물으면 조금 어긋난다. 그럴 때는 그냥 퇴사가 안전하다.

문화 배경 — 두 글자가 뜻을 바꾼 자리

퇴사의 한자는 退(물러날 퇴) 社(회사 사)다. 글자 그대로 읽으면 “회사에서 물러나다”가 된다. 문제는 그 물러남이 하루치일 수도, 영영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사전에 뜻이 두 개인 이유가 여기 있다. 그런데 한국어에서는 하루치 물러남을 退勤(퇴근)이 가져갔다. 勤은 ‘일·근무’를 뜻하니, 퇴근은 오늘의 일에서 물러나는 것이고 퇴사는 회사 자체에서 물러나는 것이다. 일에서 물러난 사람은 내일 또 오지만, 회사에서 물러난 사람은 다시 오지 않는다. 두 글자 차이가 그만큼 크다.

2010년대 후반부터 한국에서 퇴사는 하나의 문화 키워드가 되었다. 서점에는 퇴사를 다룬 에세이 코너가 따로 생겼고, 유튜브에는 “퇴사 브이로그”가 장르처럼 자리 잡았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옅어지면서, 퇴사가 실패의 표시가 아니라 선택의 표시로 옮겨 간 흐름이다. 회사원의 삶을 정면으로 다뤄 크게 화제가 된 드라마 《미생》(tvN, 2014) 이후로, 회사 안에서 버티는 일과 회사를 떠나는 일은 한국 대중문화가 가장 자주 다루는 주제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실제 퇴사에는 정해진 절차 같은 관습도 따라붙는다. 후임에게 일을 넘기는 **인수인계 (insuingye)**를 마치고, 마지막 날에는 팀에 커피나 간식을 돌리며 인사하고, 회사 단체 대화방에서 조용히 나간다. 그래서 한국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단체방을 나가는 순간이야말로 진짜 퇴사라는 농담이 오간다.

오늘의 퀴즈

저녁 여섯 시, 오늘 할 일을 모두 끝낸 에밀리가 가방을 챙기며 팀장님께 인사한다. 빈칸에 알맞은 말은?

“팀장님, 저 먼저 ○○하겠습니다.”

① 퇴사 ② 퇴근 ③ 이직 ④ 사직

정답 보기

정답은 ② 퇴근 (toegeun). 사전에는 퇴사에도 “일을 끝내고 집으로 감”이라는 뜻이 실려 있지만, 실제 사무실에서 이 말은 “회사를 그만둔다”로만 들린다. ①을 골랐다면 팀장님은 다음 날 아침까지 사직서를 기다리게 된다. ③ 이직과 ④ 사직 역시 회사를 떠난다는 뜻이라 퇴근 인사로는 쓸 수 없다.


이 글의 단어 뜻풀이와 예문은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krdict.korean.go.kr)에서 가져왔으며, 해당 부분(번역 포함)은 CC BY-SA 2.0 KR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배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