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맨스 (womaenseu) — 사랑은 아닌데 사랑 같은, 여자들의 우정
워맨스
**워맨스 (womaenseu)**는 여성과 여성 사이의 깊고 뜨거운 우정을 연애에 빗대어 이르는 말이다. 연인은 아닌데 연인만큼 서로에게 몰입하고, 서로를 위해 판을 뒤엎고, 서로의 편에 마지막까지 남는 관계 — 그 온도를 가리키는 단어다.
한국 드라마를 보다 보면 이런 순간이 온다. 남녀 주인공이 우여곡절 끝에 손을 잡는데, 정작 시청자의 심장은 다른 장면에서 뛴다.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던 두 여자가 옥상에서 담배 한 대를 나눠 피우는 장면. 한 명이 회사에서 무너질 때 아무 말 없이 옆자리에 앉아주는 장면. 그 장면을 보고 시청자들이 실시간 채팅창에 쏟아내는 말이 바로 워맨스 (womaenseu) 다.
뉘앙스를 조금 더 뜯어보자. 이 말에는 세 가지가 동시에 들어 있다. 첫째, 강도다. 그냥 친하다가 아니라 서사의 중심이 될 만큼 진하다. 둘째, 비연애다. 연애의 문법(설렘·질투·헌신)을 빌려 쓰지만 관계 자체는 연애가 아니다. 셋째, 감상자의 시선이다. 워맨스는 당사자가 자기 관계를 부르는 말이라기보다, 그 관계를 지켜보는 사람이 감탄하며 붙이는 이름에 가깝다. 그래서 이 말은 드라마 리뷰·팬 커뮤니티·예능 자막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쓰인다.
품사는 명사이고, 뒤에 조사를 붙여 자유롭게 쓴다. 워맨스가 좋다 (womaenseuga jota), 워맨스를 기대하다 (womaenseureul gidaehada), 워맨스 케미 (womaenseu kemi) 처럼 다른 신조어와도 잘 붙는다.
실제 대화로 보기
상황: 금요일 밤, 준경의 집. 12부작 드라마 마지막 회를 실시간으로 보는 중이다. 끓여둔 라면이 식어간다.
에밀리: 야, 지금이야! 방금 둘이 손잡았어! Hey, right now! They just held hands!
준경: 아니 무슨 남자주인공보다 저 둘이 더 설레냐. Seriously, those two give me more butterflies than the male lead.
에밀리: 그러니까. 나 이 드라마 워맨스 때문에 보는 거야. 남주 나오면 그냥 넘겨. Right? I’m only watching this for the womance. I skip whenever the male lead shows up.
준경: 인정. 근데 너 그 단어 어디서 배웠어? Fair. But where’d you pick up that word?
에밀리: 커뮤니티에서 맨날 봐. 근데 이거 한국에서만 쓰지? 캐나다 친구들한테 워맨스 설명하려니까 딱 맞는 말이 없더라. I see it in online communities all the time. But it’s a Korean thing, right? When I tried to explain womance to my Canadian friends, there was no exact word.
준경: 브로맨스는 영어에서 온 건데, 그거 보고 우먼 붙여서 만든 말이니까. 야, 국물 다 졸았어. Bromance came from English, and this one was made by swapping in “woman.” Hey — the broth’s all boiled away.
이렇게 쓰면 어색합니다
✗ (실제 연인인 두 여성에게) 두 분 워맨스 진짜 보기 좋아요. ✓ (실제 연인인 두 여성에게) 두 분 진짜 잘 어울려요. → 워맨스는 「연애가 아닌」 관계에 붙는 이름이다. 실제 연인 사이에 쓰면 그 관계를 우정으로 축소해 버리는 말이 되어 실례가 된다.
✗ (회사 워크숍 발표에서) 저희 팀은 부장님과 저의 워맨스로 굴러갑니다. ✓ (회사 워크숍 발표에서) 저희 팀은 부장님과의 두터운 신뢰로 굴러갑니다. → 인터넷에서 자란 신조어라 온도가 가볍고, 위아래가 있는 관계에 얹으면 상사를 놀리는 것처럼 들린다. 또래끼리, 혹은 작품 이야기를 할 때 쓰는 말이다.
상황별 활용 예문
1) 드라마를 다 보고 SNS에 후기를 올릴 때
이 드라마 진짜 워맨스 맛집이다. i deurama jinjja womaenseu matjibida. (이 드라마는 정말 워맨스를 잘 뽑아낸 작품이다.)
맛집 (matjip) 은 원래 「음식이 맛있는 가게」지만, 요즘은 「무언가를 유난히 잘하는 곳·작품」이라는 뜻으로 넓게 쓴다. 워맨스와 붙으면 「여자 캐릭터들 관계를 기가 막히게 그린 드라마」라는 칭찬이 된다.
2) 오래된 친구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우리 이 정도면 워맨스 아니냐? uri i jeongdomyeon womaenseu aninya? (우리 이쯤 되면 워맨스라고 불러도 되지 않아?)
십 년째 서로의 이사·이별·퇴사를 다 지켜본 친구에게 던지는 말이다. 당사자가 자기 관계를 워맨스라고 부를 때는 이렇게 반쯤 웃으면서 말한다. 진지하게 선언하면 오히려 어색해진다.
3) 공적인 글이나 리뷰에서 존댓말로
이번 시즌은 로맨스보다 워맨스가 중심입니다. ibeon sijeuneun romaenseuboda womaenseuga jungsimimnida. (이번 시즌은 남녀 연애보다 여성들의 관계가 이야기의 축입니다.)
신조어지만 콘텐츠 비평·기사에서는 존댓말과도 무리 없이 붙는다. 단어 자체가 무례한 게 아니라, 사람에게 직접 들이댈 때만 조심하면 된다.
존댓말·반말과 비슷한 표현
워맨스는 명사라서 그 자체에 높임이 없다. 문장 끝을 바꿔 쓰면 된다 — 친구에게는 워맨스 좋다 (womaenseu jota), 격식 있는 자리에서는 워맨스가 인상적이었습니다 (womaenseuga insangjeogieotseumnida). 다만 앞서 봤듯 손윗사람과의 관계에 이 단어를 붙이는 것은 문장 끝을 아무리 높여도 어색하다.
| 표현 | 온도·강도 | 쓰는 자리 |
|---|---|---|
| 워맨스 (womaenseu) | 뜨겁고 서사적. 감탄이 섞임 | 드라마·영화 감상, 또래끼리 농담. 윗사람에겐 안 씀 |
| 브로맨스 (beuromaenseu) | 워맨스와 같은 온도, 대상만 남성 | 같은 자리. 남자 둘의 관계에 씀 |
| 케미 (kemi) | 가볍고 즉물적. 관계보다 「합」 | 배우·인물 조합 전반. 남녀·동성 가리지 않음 |
| 절친 (jeolchin) | 따뜻하지만 담담함 | 일상 대화 어디서나. 자기 친구를 소개할 때 |
| 우정 (ujeong) | 중립적이고 다소 문어적 | 글·연설·공식적인 자리 |
케미 (kemi) 는 영어 chemistry에서 온 말로, 「둘이 붙여 놨을 때 나오는 반응」을 가리킨다. 한 장면만 보고도 쓸 수 있다. 반면 워맨스는 관계가 쌓여야 붙는 이름이다. 1화에서 케미가 좋았던 두 사람이 12화까지 서로를 지켜내면 그때 워맨스가 된다.
문화 배경 — 브로맨스 다음에 온 이름
조어 방식은 단순하다. 영어 bromance(brother + romance)가 한국에 들어와 브로맨스 (beuromaenseu) 로 자리를 잡았고, 그 자리에 brother 대신 woman을 끼워 넣어 워맨스 (womaenseu) 가 만들어졌다. 그래서 이 단어는 영어처럼 생겼지만 한국 인터넷에서 자란 말이고, 영어권에 그대로 옮기면 잘 통하지 않는다. 에밀리가 대화에서 「딱 맞는 말이 없더라」고 한 이유가 그것이다.
순서가 브로맨스 다음이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 단어의 역사를 말해준다. 남자 둘의 진한 관계에 먼저 이름이 붙었고, 여자 둘의 관계에는 한참 뒤에야 이름이 생겼다. 오랫동안 한국 드라마에서 여성 캐릭터는 남자 주인공의 상대역이거나 그 자리를 두고 다투는 라이벌이었다. 두 여자가 마주 앉으면 화제는 대개 남자였다.
그 구도가 흔들린 작품들이 쌓이면서 워맨스라는 말이 힘을 얻었다. 포털 업계에서 일하는 세 여성의 야심과 연대를 그린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tvN, 2019), 재벌가의 며느리와 큰며느리가 적대 관계에서 출발해 결국 서로의 가장 든든한 동맹이 되는 《마인》(tvN, 2021), 매일 밤 술잔을 앞에 두고 서로의 바닥까지 봐주는 세 친구의 이야기 《술꾼도시여자들》(티빙, 2021), 라이벌로 만나 서로를 가장 깊이 이해하게 되는 두 펜싱 선수의 관계가 남녀 서사만큼 큰 축을 차지한 《스물다섯 스물하나》(tvN, 2022). 이런 작품들의 방영 기간에 커뮤니티 게시판 제목에는 워맨스라는 단어가 빼곡히 올라왔다.
그래서 이 단어를 안다는 것은 신조어 하나를 외우는 일이 아니다. 한국 드라마의 시청자들이 무엇에 목말라 있었는지, 그리고 그 갈증에 이름을 붙이는 순간을 아는 일이다. 다음에 한국 드라마를 볼 때, 남녀 주인공의 키스신보다 여자 둘이 말없이 라면을 나눠 먹는 장면에서 마음이 더 크게 움직인다면 — 축하한다, 당신은 이미 워맨스에 빠진 것이다.
오늘의 퀴즈
친구 수민이 새 드라마를 보고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남녀 주인공 연애는 솔직히 별로였는데, 여주인공이랑 그 회사 선배 둘이 나오는 장면은 진짜 미쳤어. 12화에서 선배가 여주인공 대신 사표 내는 거 보고 울었잖아.
수민이가 지금 감탄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① 로맨스 (romaenseu) ② 워맨스 (womaenseu) ③ 브로맨스 (beuromaenseu)
정답: ②
여성 두 인물이 서로를 위해 자기 것을 내놓는 관계, 그리고 그 관계가 남녀 연애보다 시청자의 마음을 흔든 상황 — 워맨스를 설명하는 데 이보다 정확한 그림은 없습니다. ①은 남녀 주인공 쪽이라 수민이가 「별로였다」고 한 부분이고, ③은 남성 두 인물의 관계에 쓰는 말이라 이 장면과는 맞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