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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amuteun) — 말이 길어졌을 때 결론으로 데려다주는 한마디

아무튼

이사 온 첫날 세탁기가 안 돌아가서 기사님을 불렀는데, 기사님 오시는 길이 막혔고, 그래서 관리실에 먼저 들렀다가 경비 아저씨랑 이야기가 길어져서… 듣는 사람 표정이 슬슬 흐려진다. 이럴 때 한국 사람들은 한마디로 이야기를 착지시킨다. **아무튼 (amuteun)**은 ‘무엇이 어떻게 되어 있든’이라는 뜻이다. 앞에 무슨 사정이 있었든 그건 접어두고 결론만 말하겠다는 신호다.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이 가장 늦게 손에 넣는 말이 바로 이런 부류다. 뜻은 한 줄이면 끝나는데, 정작 어려운 건 ‘언제 이 말을 꺼내는가’이기 때문이다. 아무튼은 문장의 뜻을 바꾸지 않는다. 대신 대화의 방향을 바꾼다. 앞말이 아무리 길고 복잡했어도 ‘그건 됐고’라고 한 번 밀어낸 뒤, 남은 한 문장에 무게를 싣는다.

그래서 아무튼 뒤에는 대개 짧고 단단한 문장이 온다. 아무튼 잘됐다 (amuteun jaldwaetda), 아무튼 고마워 (amuteun gomawo), 아무튼 결론은 이겁니다 (amuteun gyeollon-eun igeomnida). 길게 늘어놓은 사정을 한 손으로 쓸어 담아 옆으로 치우고, 정말 하고 싶었던 말 하나만 남기는 것이다.

온도는 중립에 가깝다. 화가 난 말도 아니고 다정한 말도 아니다. 다만 이 말은 쓰는 사람을 ‘정리하는 사람’의 자리에 세운다. 그래서 자기 이야기를 자기가 접을 때는 겸손하게 들리고, 남의 이야기를 접을 때는 자칫 재촉으로 들린다. 이 차이가 오늘 글의 핵심이다.

국립국어원 사전으로 확인하기

먼저 국가 기관의 사전이 이 말을 어떻게 풀어 놓았는지 보자.

아무튼 「부사」 무엇이 어떻게 되어 있든. [en] in any case; anyway — Regardless of how something turns out. [ja] とにかく。なにはともあれ【何はともあれ】 — 何がどうなっていても。 [es] en todo caso, de todos modos — Sea como fuere. [zh] 反正,总之 — 不管怎么样。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포르투갈어 뜻풀이는 사전에 실려 있지 않다. 아래 한 줄은 사전 인용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옮긴 것임을 밝혀 둔다 — de qualquer forma; de todo modo — Independentemente de como as coisas aconteçam.

‘무엇이 어떻게 되어 있든’. 뜻풀이 자체가 이미 앞말을 통째로 괄호에 넣는 모양이다. 이제 사전에 실린 실제 예문을 보면서, 그 괄호가 어떤 상황에서 쳐지는지 확인해 보자.

아무튼 시험이 끝나서 좋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시험을 잘 봤는지 못 봤는지는 아직 모른다. 성적이 어떻든 일단 끝났다는 사실 하나만 붙잡는 문장이다. 아무튼의 가장 기본적인 쓰임이다.

차 사고가 나서 약간의 부상을 당하기는 했지만 아무튼 무사해서 다행이었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앞에 ‘-기는 했지만’이 있다는 점을 눈여겨보자. 나쁜 일을 먼저 인정한 뒤 아무튼으로 접고, 마지막에 좋은 결론을 놓는다. 이 ‘-지만 … 아무튼 …’ 짜임은 한국어 대화에서 통째로 굳어져 나온다.

난 함께 싸우지 못하지만 아무튼 성공적으로 해결되길 바랄게.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내가 도와줄 수 없다는 미안함을 길게 설명하는 대신 한 번에 접고, 응원만 남긴다. 사과나 변명을 짧게 끊고 싶을 때 아주 자주 쓰인다.

알았어, 아무튼 넌 그 곳에 갈 수 있기만 하면 된다는 거지?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상대의 긴 설명을 듣고 나서 요점만 확인하는 문장이다. 앞에 ‘알았어’가 붙어 있는 게 중요하다. 다 들었다는 신호를 준 다음에 접기 때문에 무례하게 들리지 않는다.

지수는 항상 반지와 목걸이를 하고, 화장을 진하게 하고 비싼 옷을 입고, 아무튼 화려한 여자였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여러 가지를 나열하다가 ‘한마디로 말하면’으로 넘어가는 쓰임이다. 나열이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을 때 아무튼이 마침표를 찍어 준다.

실제 대화로 보기

상황: 에밀리의 이사 당일 저녁. 짐은 겨우 다 올라왔고, 두 사람이 상자 사이에 앉아 배달 짜장면을 기다린다.

에밀리: 아니 사다리차가 두 시간이나 늦게 왔잖아. 엘리베이터 예약도 앞집이랑 겹치고. The ladder truck showed up two hours late. And the elevator booking overlapped with the neighbors’.

준경: 그래서 아까 관리실 아저씨랑은 얘기 잘 됐어? So did things work out with the building manager?

에밀리: 겨우. 근데 그릇 담은 상자 하나가 안 보여. 어디 갔지? Barely. But one box of dishes is missing. Where did it go?

준경: 아무튼 짐은 다 들어왔잖아. 상자는 내일 밝을 때 찾자. Anyway, everything made it inside. Let’s look for the box tomorrow in the daylight.

에밀리: 그러네. 아무튼 오늘 진짜 고마워. 너 없었으면 나 아직 1층에 있어. True. Anyway, thank you so much today. Without you I’d still be down on the first floor.

준경: 짜장면이나 빨리 와라. 배고파 죽겠다. Just let the jjajangmyeon get here already. I’m starving.

준경의 아무튼은 걱정 하나를 접는 아무튼이고, 에밀리의 아무튼은 하루 전체를 접고 고마움만 남기는 아무튼이다. 같은 단어인데 접는 대상의 크기가 다르다.

이렇게 쓰면 어색합니다

✗ (팀장님이 배경을 설명하는 중에) 팀장님, 아무튼 그래서 언제까지 하면 되나요? ✓ (팀장님이 배경을 설명하는 중에) 팀장님, 그럼 정리하면 언제까지 하면 될까요? → 아무튼에는 앞말을 ‘그건 됐고’라고 밀어내는 힘이 있다. 손윗사람이 말하는 중간에 넣으면 재촉으로 들린다. 남의 말을 접을 때는 ‘정리하면’, ‘그러니까 말씀은’ 쪽이 안전하다.

✗ (친구가 한참 울면서 힘든 얘기를 한 직후) 아무튼 잘될 거야. ✓ 많이 힘들었겠다. 그래도 잘될 거야. → 내용은 위로인데 아무튼이 ‘그 얘긴 이제 그만’으로 읽힌다. 상대가 감정을 쏟아낸 직후에는 접지 말고 먼저 받아 주는 말을 놓는다.

정리하면 이렇다. 내 이야기를 내가 접을 때는 마음껏 써도 되고, 남의 이야기를 접을 때는 한 번 더 생각한다.

상황별 활용 예문

① 회의가 길어질 때 (존댓말) — 의견이 갈려 30분째 제자리다. 결론을 내야 하는 사람이 방향을 튼다.

아무튼 이번 주 안에는 결정을 해야 합니다. (amuteun ibeon ju aneneun gyeoljeong-eul haeya hamnida.) Anyway, we need to make a decision within this week.

여기서 아무튼은 ‘누구 말이 옳은지는 나중에’라는 뜻이다. 시비를 가리지 않은 채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해 준다.

② 친구가 스스로 이야기를 마무리할 때 (반말) — 헤어진 이야기를 20분쯤 하다가 본인이 접는다.

아무튼 그래서 헤어졌어. (amuteun geuraeseo heeojyeosseo.) Anyway, so that’s how we ended up breaking up.

이 아무튼은 ‘이제 이 얘기 그만할게’라는 신호이기도 하다. 듣는 사람은 캐묻지 말고 ‘그랬구나’ 하고 받아 주면 된다.

③ 통화를 끊기 전 (존댓말) — 오랜만에 연락한 선배와 근황을 한참 나눴다.

아무튼 조만간 얼굴 한번 봬요. (amuteun jomangan eolgul hanbeon bwaeyo.) Anyway, let’s meet up in person sometime soon.

전화를 끊는 신호로 아주 흔한 문장이다. ‘이제 끊읍시다’라고 직접 말하기 어려운 자리에서 아무튼이 그 역할을 부드럽게 대신한다.

존댓말·반말과 비슷한 표현

아무튼은 부사라서 그 자체는 높임도 낮춤도 갖지 않는다. 높임은 뒤에 오는 서술어가 정한다 — **아무튼 감사합니다 (amuteun gamsahamnida)**와 **아무튼 고마워 (amuteun gomawo)**는 둘 다 자연스럽다. 다만 아주 격식 있는 자리(공식 보고, 사과문)에서는 앞말을 밀어내는 느낌 때문에 잘 쓰지 않는다. 구어에서는 **아무튼요 (amuteunyo)**처럼 ‘요’를 붙여 한마디로 쓰기도 한다.

비슷한 말이 유난히 많은 자리다. 뜻은 거의 같지만 온도가 다르다.

표현온도·강도쓰는 자리
아무튼 (amuteun)중립. 조용히 접는다어디서나. 존댓말·반말 모두
어쨌든 (eojjaetdeun)조금 더 단호. 결론을 밀어붙인다회의·논쟁. ‘어쨌든 마감은 내일이잖아’
하여튼 (hayeoteun)못마땅함이 자주 묻어난다친한 사이의 핀잔. ‘하여튼 너는 못 말려’
여하튼 (yeohateun)아무튼보다 딱딱하고 문어적글, 격식 있는 발언
그나저나 (geunajeona)접는 게 아니라 갈아탄다화제를 아예 바꿀 때. ‘그나저나 밥은 먹었어?‘
아무튼지 (amuteunji)뜻은 같고 예스러운 입말나이 있는 화자의 구어. 사전 예문에도 실려 있다

헷갈릴 때 기준은 하나다. 앞 이야기의 결론을 말하면 아무튼, 앞 이야기와 상관없는 새 이야기를 꺼내면 그나저나.

문화 배경 — 말허리를 자르지 않고 접는 법

한국어 대화에는 ‘말허리를 자르지 않는다’는 감각이 강하게 깔려 있다. 상대가 말을 마칠 때까지 기다리고, 끊어야 할 때도 ‘아, 그렇구나’ 같은 맞장구를 한 번 넣은 뒤에 들어간다. 아무튼은 이 문화 안에서 자란 말이다. 칼로 자르는 게 아니라 종이를 접듯 앞말을 접어 두고 넘어가기 때문에, 끊는 쪽도 끊기는 쪽도 덜 무안하다. 그래서 이 말은 자기 이야기를 자기가 접을 때 가장 자연스럽게 들린다.

드라마에서도 아무튼은 대개 마음이 복잡한 인물의 입에서 나온다. 고백하려다 실패한 인물이 어색해진 공기를 수습하려고 던지거나, 오래 다툰 가족이 더 말해 봐야 소용없다는 걸 알고 대화를 접으며 자리를 뜰 때 쓴다. 시청자는 그 한마디를 듣는 순간 ‘아, 이 사람 하고 싶은 말을 다 못 했구나’를 안다. 못다 한 말이 많을수록 아무튼은 더 크게 들린다.

말의 생김새도 잠깐 보자. 앞의 ‘아무’는 ‘아무나’, ‘아무 데나’ 할 때의 그 ‘아무’다 — 대상을 특정하지 않는 말이다. 뒤의 ‘-튼’은 ‘-하든’이 줄어든 꼴로 본다. ‘아무렇게 되든’이 통째로 뭉쳐 한 단어가 된 셈이다. 표기는 한국 사람도 자주 틀리는데, 아뭏든이 아니라 아무튼이 맞다. 소리 나는 대로 적기로 굳어진 부사이기 때문이고, ‘하여튼’, ‘요컨대’, ‘한사코’도 같은 무리에 속한다.

오늘의 퀴즈

친구가 30분째 회사 상사 흉을 보다가, 스스로 이야기를 마무리하려 한다. 빈칸에 가장 자연스러운 말은?

”…그래서 내가 그냥 참았어. (   ) 다음 주에 팀 바뀌니까 괜찮아.”

① 그나저나 ② 아무튼 ③ 오히려

정답: ② 아무튼

①’그나저나’는 앞 이야기와 상관없는 새 화제로 갈아탈 때 쓴다(‘그나저나 점심 먹었어?’). ③’오히려’는 예상과 반대되는 사실을 말할 때 쓴다. 여기는 길게 늘어놓은 사정을 접고 결론 하나만 남기는 자리이므로 아무튼이 맞다. 참고로 ‘어쨌든’을 넣어도 통하지만, 그 편이 조금 더 단호하게 들린다.

오늘 하루 중에 이야기가 길어지는 순간이 오면, 마음속으로 한번 붙여 보자. 아무튼,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였더라.

이 글의 단어 뜻풀이와 예문은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krdict.korean.go.kr)에서 가져왔으며, 해당 부분(번역 포함)은 CC BY-SA 2.0 KR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배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