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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busan) — 여행 가방에 넣는 부산, 사전 안에 사는 부산

**부산 (busan)**은 ‘정신이 없을 만큼 어지럽거나 시끄러움’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한국 사람 앞에서 ‘부산’이라고 말해 보면 열에 아홉은 바다부터 떠올린다. 서울 다음으로 큰 도시, 해운대의 파도와 자갈치 시장의 생선 궤짝이 있는 남쪽 항구 도시 부산 (Busan) 말이다. 한국어를 배우다 보면 이렇게 소리는 같은데 뿌리가 다른 말을 만나게 된다. 오늘은 그 두 개의 부산을 한 번에 정리한다 — 여행 가방에 넣어 갈 부산과, 사전 안에 사는 부산.

부산

먼저 사전에 뜻풀이로 올라 있는 부산부터 보자. 이 부산은 ‘바쁘다’와 완전히 같지 않다. 바쁘다가 ‘할 일이 많다’는 사실을 말한다면, 부산은 눈에 보이는 소란을 말한다. 사람이 왔다 갔다 하고, 물건 부딪히는 소리가 나고, 보고 있는 쪽이 정신이 없어지는 상태다. 그래서 이 말에는 ‘움직임에 비해 성과가 없어 보인다’는 살짝 못마땅한 온도가 붙어 있다.

중요한 것은 혼자 쓰이는 일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명사지만 실제로는 거의 언제나 세 가지 꼴로 나타난다.

  • 부산하다 (busanhada) — 부산한 아침, 교실이 부산하다
  • 부산을 떨다 (busaneul tteolda) — 아침부터 부산을 떨다 (소란스럽게 굴다)
  • 부산히 (busanhi) — 부산히 짐을 싸다

한편 도시 이름 부산은 고유 명사라 뜻풀이가 따로 필요 없다. 대신 조사와 붙는 모양을 통째로 외워 두면 여행 회화가 바로 굴러간다. 부산에 가다 (busan-e gada), 부산으로 가다 (busan-euro gada), 서울에서 부산까지 (seoure-seo busan-kkaji), 부산 사람 (busan saram). 목적지를 콕 찍을 때는 ‘에’, 방향을 가리킬 때는 ‘으로’다.

국립국어원 사전으로 확인하기

부산 (명사) 정신이 없을 만큼 어지럽거나 시끄러움. [en] bustle; fuss — A state of being so noisy and disordered that one feels upset. [ja] 慌ただしくてうるさくて落ち着きがないさま。 [es] alboroto, bullicio, ajetreo, atasco — Ambiente desordenado y ruidoso tanto que desconcierta. [zh] 吵闹,闹腾,忙活 — 混乱或嘈杂到让人头晕。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포르투갈어 뜻풀이는 사전에 없어 우리가 직접 옮겼다 — agitação; alvoroço (barulho e desordem que deixam a pessoa aturdida). 사전에 실린 번역이 아니라는 점을 밝혀 둔다.

재미있는 것은 사전이 함께 보여 주는 예문들이다. 뜻풀이는 ‘시끄러움’인데, 예문에 나오는 부산은 전부 도시 이름이다. 학습자가 헷갈리기 딱 좋은 자리라서, 예문을 그대로 옮기고 하나씩 상황을 붙여 둔다.

저 내일 부산에 가요.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 (jeo naeil busan-e gayo) 가장 기본형이다. 동료에게 내일 일정을 알리는 자리. ‘에’가 도착지를 찍어 준다.

부산이 고향이에요?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 (busani gohyang-ieyo) 처음 만난 사람의 억양이 서울말과 달라서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상황. 한국에서 아주 흔한 인사 대화다.

서울과 부산 간의 거리는 얼마나 됩니까?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 (seoulgwa busan gane georineun eolmana doemnikka) ‘~간(間)의 거리’는 문어체에 가깝다. 회화라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얼마나 걸려요?’ 쪽이 자연스럽다.

고속 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달려 부산에 가까워지자 우리들은 설레기 시작했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 차창 밖 풍경이 바뀌면서 바다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 순간. 부산이 한국인에게 어떤 감정으로 붙어 있는 도시인지 한 문장에 다 들어 있다.

나는 운전해서 부산에 갈 때는 경부 고속 도로를 이용한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 경부 고속 도로는 서울과 부산을 잇는 한국의 대표 고속 도로다. 이름 자체가 서울(京)과 부산(釜)에서 한 글자씩 따왔다.

실제 대화로 보기

상황: 서울역 3번 승강장. 부산행 KTX 출발 3분 전인데 에밀리가 이제야 계단을 뛰어 올라온다.

준경: 야! 빨리! 부산 가는 열차 이거 놓치면 한 시간 기다려야 돼. Hey! Hurry! If we miss this train to Busan, we have to wait an hour.

에밀리: 가고 있어, 가고 있어! 아, 김밥 사느라고… I’m coming, I’m coming! Ah, I was buying gimbap…

준경: 됐고 일단 타. 먹는 건 앉아서 먹어. Forget it, just get on. You can eat once you sit down.

에밀리: 근데 너 아침부터 왜 이렇게 부산을 떨어? 두 시간 반이면 도착하잖아. But why have you been making such a fuss since this morning? We’ll be there in two and a half hours.

준경: 어? 너 그 말도 알아? 도시 말고 그 부산? Huh? You know that word too? Not the city — that 부산?

에밀리: 나 여기 산 지 십오 년이야. 야, 문 닫힌다! I’ve lived here fifteen years. Hey, the doors are closing!

이렇게 쓰면 어색합니다

✗ 오늘 사무실이 진짜 부산이에요. ✓ 오늘 사무실이 진짜 부산해요. → 이 뜻의 부산은 혼자 서지 못한다. 명사인데도 ‘부산이다’라고 끊으면 한국인 귀에는 문장이 덜 끝난 것처럼 들린다. 부산하다·부산을 떨다·부산히, 이 세 꼴로만 기억하자.

✗ (부장님께) 부장님, 아침부터 부산을 떠시네요. ✓ (부장님께) 부장님, 아침부터 많이 바쁘시네요. → ‘부산을 떨다’에는 ‘괜히 소란스럽게 군다’는 핀잔이 섞여 있다. 손윗사람의 움직임에 붙이면 ‘쓸데없이 왔다 갔다 한다’는 말로 들려서 실례가 된다. 윗사람에게는 ‘바쁘시네요’ 쪽이 안전하다.

상황별 활용 예문

1) 연휴 계획을 말할 때 (친구에게) 이번 연휴에 부산에 가려고 기차표 알아보고 있어. (ibeon yeonhyu-e busan-e garyeogo gichapyo arabogo isseo) I’m looking up train tickets — I’m planning to go to Busan this holiday.

2) 숙소에서 길을 물을 때 (존댓말) 부산 처음인데요, 해운대까지 여기서 얼마나 걸려요? (busan cheoeum-indeyo, haeundae-kkaji yeogi-seo eolmana geollyeoyo) It’s my first time in Busan — how long does it take to get to Haeundae from here?

3) 아침에 늦잠 잔 가족에게 (반말, 두 번째 뜻) 아침부터 뭘 그렇게 부산해? 아직 삼십 분 남았어. (achim-buteo mwol geureoke busanhae) Why are you in such a flurry this early? We still have thirty minutes.

존댓말·반말과 비슷한 표현

도시 이름 쪽은 문장 끝만 바꾸면 된다 — 부산에 가 (반말) / 부산에 가요 (존댓말) / 부산에 갑니다 (격식체). 뜻풀이 쪽도 마찬가지다 — 부산해 / 부산해요 / 부산합니다. 다만 ‘부산을 떨다’는 상대의 행동을 평가하는 말이라 존댓말로 바꿔도 무례함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하자.

표현온도·강도쓰는 자리
부산하다소란스럽고 정신없음, 약간 못마땅아침 집 안, 이삿날, 시험 전 교실
분주하다중립. 바쁘게 움직임문어체·보고서에도 쓸 수 있음
어수선하다정리가 안 됨. 소리보다 상태방·분위기·마음에 두루
호들갑을 떨다강한 핀잔. 과장된 반응아주 친한 사이에서만
바쁘다중립. 할 일이 많음윗사람에게도 안전

문화 배경 — 서울역에서 두 시간 반

부산의 한자는 釜山, ‘가마솥 부’와 ‘뫼 산’이다. 옛 지역의 산 모양이 가마솥을 엎어 놓은 것 같아 그렇게 불렀다는 설이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니 뜻풀이의 부산과 도시 부산은 이름이 같을 뿐 아무 관계가 없다 — 순전한 동음이의어다. 시끄러운 항구 도시라서 부산이라 부른다는 설명을 가끔 듣지만, 그건 지어낸 이야기다.

서울역에서 KTX를 타면 두 시간 반이면 부산역에 닿는다. 이 거리감이 한국인의 마음속에 ‘떠남’의 기본 단위로 박혀 있어서, 노래에도 드라마에도 부산은 늘 ‘남쪽 끝, 바다가 있는 곳’으로 등장한다. 좀비 재난 영화 《부산행》(2016)의 제목이 목적지 하나만으로 성립하는 것도 그래서다.

부산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귀가 놀란다. 부산 사투리는 억양의 오르내림이 크고 문장 끝이 짧게 떨어진다. ‘~예’, ‘~아이가’, 말머리의 ‘마’ 같은 표현이 대표적이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7》(tvN, 2012)은 부산에 사는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라 등장인물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 사투리로 말하는데, 표준어만 배운 학습자가 처음 들으면 자막 없이는 절반쯤 놓친다. 영화 《국제시장》(2014)의 무대가 된 국제시장, 새벽마다 경매가 열리는 자갈치 시장, 해운대와 광안리의 해변, 그리고 해마다 가을에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BIFF)까지 — 여행자에게 부산은 도시 하나가 아니라 목록이다.

두 개의 부산을 한 문장에 넣어 보면 이렇게 된다. ‘부산역은 늘 부산하다.’ 발음이 거의 같은 이 문장을 한국인에게 들려주면 대개 웃는다. 말장난이지만, 두 단어를 한 번에 외우는 데는 이만한 방법이 없다.

오늘의 퀴즈

다음 중 어색한 문장은 무엇일까요?

① 저 내일 부산에 가요. ② 아침부터 집 안이 부산해요. ③ 이사하는 날이라 부산히 짐을 쌌다. ④ 오늘 사무실이 정말 부산이에요.

정답은 ④. 이 뜻의 부산은 혼자 서술어가 되지 못해서 ‘부산이에요’라고 끝낼 수 없다. ‘부산해요’로 고쳐야 자연스럽다. ①은 도시 이름, ②와 ③은 각각 부산하다·부산히 꼴로 바르게 쓰였다.

이 글의 단어 뜻풀이와 예문은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krdict.korean.go.kr)에서 가져왔으며, 해당 부분(번역 포함)은 CC BY-SA 2.0 KR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배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