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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룩시장 — 오늘 하루만 상인이 되는 자리

벼룩시장

벼룩시장 (byeoruksijang) 은 중고품을 싸게 사고파는 시장이라는 뜻이다. 토요일 아침, 아파트 단지 주차장 한쪽에 돗자리가 깔린다. 옆집 아이는 작아진 운동화를 내놓고, 그 옆에서는 이사를 앞둔 부부가 밥솥과 선풍기를 펼쳐 놓는다. 가격표는 매직으로 대충 쓴 종이 조각이고, 그마저도 한마디 흥정에 쉽게 내려간다.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오늘 하루만 상인이 되는 자리 — 한국 사람들이 벼룩시장이라고 부르는 곳의 풍경이다.

한국어 학습자가 이 단어에서 가장 자주 놓치는 것은 규모와 시간이다. 벼룩시장에는 건물도 점포도 간판도 없다. 정해진 날 아침에 생겼다가 저녁이면 흔적 없이 사라진다. 그래서 이 말에는 자연스럽게 붙는 동사가 따로 있다 — 벼룩시장이 열리다 (byeoruksijangi yeollida), 벼룩시장이 서다 (byeoruksijangi seoda). 백화점이나 마트는 서지 않는다. 서는 것은 임시로 생겼다 없어지는 장이다. 이 동사 하나만 함께 외워 두어도 문장이 훨씬 한국 사람 말처럼 들린다.

두 번째는 파는 사람이 누구냐다. 벼룩시장의 판매자는 대개 장사꾼이 아니라 이웃이다. 재고를 떼 온 사람이 아니라, 집에 있던 물건을 정리하러 나온 사람이다. 그래서 이 단어에는 거래보다 정리와 나눔의 냄새가 배어 있다. 물건값이 싼 이유도 이윤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어감이다. 헌 물건, 싸게라는 말이 뜻풀이에 들어 있지만 벼룩시장은 절대 낮잡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알뜰하고 정겨운 쪽에 가깝다. 구청 안내문에도, 학교 가정통신문에도, 뉴스 자막에도 그대로 쓰인다. 격이 낮은 말이 아니라는 뜻이다.

국립국어원 사전으로 확인하기

벼룩시장 「명사」 중고품을 싸게 사고파는 시장.

  • [en] flea market — The market where secondhand goods are sold and bought cheaply.
  • [ja] フリーマーケット。のみのいち【蚤の市】。がらくたいち【がらくた市】 — 中古品を安く売り買いする市場。
  • [es] mercadillo, mercado de pulgas — Mercado en que se venden y se compran artículos de segunda mano a bajo precio.
  • [zh] 跳蚤市场 — 廉价买卖二手物品的市场。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뜻풀이가 아주 짧다. 중고품, 싸게, 사고파는, 시장 — 네 조각뿐이다. 그런데 이 네 조각이 앞에서 말한 성격을 모두 담고 있다. 새 물건이 아니고(중고품), 이윤보다 처분이 목적이고(싸게), 한쪽만 파는 전시가 아니라 양방향이며(사고파는), 개인의 거래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모이는 자리(시장)라는 것이다.

포르투갈어 뜻풀이는 사전에 실려 있지 않아 아래는 우리가 직접 옮긴 것이다 — mercado de pulgas 또는 feira de usados (브라질), feira da ladra (포르투갈). 사전에 근거한 번역이 아니라는 점을 밝혀 둔다.

이제 사전에 실린 실제 사용 예문을 하나씩 보자.

오늘부터 벼룩시장 개시라는데 한번 가 볼래?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친구나 가족에게 말을 거는 반말 문장이다. 개시라는 단어에서 이 장이 오늘 시작해서 며칠간만 열린다는 것이 드러난다. 한번 가 볼래는 부담 없이 던지는 제안이다. 벼룩시장 이야기는 이렇게 계획이 아니라 즉흥적인 제안으로 시작되는 일이 많다.

우리 벼룩시장에 구경하러 가지 않을래?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여기서 눈여겨볼 말은 사러가 아니라 구경하러다. 벼룩시장은 목적을 가지고 물건을 사러 가는 곳이라기보다, 뭐가 있나 훑어보러 가는 곳이다. 실제로 한국 사람들은 벼룩시장 이야기를 할 때 구경 간다, 한 바퀴 돌아본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벼룩시장에는 가게들이 다채로이 열려 있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가게라고 했지만 상설 점포가 아니라 돗자리 한 장, 접이식 탁자 하나짜리 자리다. 다채로이라는 부사가 벼룩시장의 핵심을 짚는다. 파는 사람이 제각각이니 물건도 제각각이다. 그릇 옆에 낡은 기타가 있고 그 옆에 아기 옷이 쌓여 있다.

벼룩시장에서 사다. / 벼룩시장에 내다 팔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조사가 짝을 이룬다. 살 때는 벼룩시장에서, 팔 때는 벼룩시장에다. 특히 내다 팔다는 집 안에 있던 것을 밖으로 가지고 나가서 판다는 그림을 그대로 담은 말이라, 벼룩시장과 궁합이 아주 좋다.

벼룩시장이 열리다. / 벼룩시장이 서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앞에서 말한 그 동사다. 사전에도 이 두 연어가 나란히 실려 있다. 열리다는 행사에, 서다는 장에 어울리는 말인데 벼룩시장은 둘 다 된다. 행사이면서 장이기 때문이다.

실제 대화로 보기

상황: 이사를 일주일 앞둔 준경의 집. 거실 한가운데 안 쓰는 물건이 산더미로 쌓여 있고, 에밀리가 짐 정리를 도와주러 왔다.

준경: 이거 다 어떡하지. 버리자니 멀쩡하고, 가져가자니 짐이고. What do I do with all this? Too good to throw out, too much to take with me.

에밀리: 버리지 마. 이번 주 토요일에 단지에서 벼룩시장 열려. Don’t throw it out. There’s a flea market in the complex this Saturday.

준경: 어, 그거 아무나 자리 깔아도 돼? Oh, can just anyone set up a spot?

에밀리: 응, 경비실에 이름만 적으면 돼. 나 작년에 나갔다가 스무 개는 팔았어. Yeah, you just put your name down at the security office. I did it last year and sold like twenty things.

준경: 오, 대박. 그럼 토요일 벼룩시장, 나도 자리 하나 잡을게. Wow, nice. Then I’ll grab a spot at Saturday’s flea market too.

에밀리: 근데 그 스피커는 두고 가. 벼룩시장 은 안 팔 걸 정하는 게 반이야. But leave that speaker out of it. Half of a flea market is deciding what not to sell.

이렇게 쓰면 어색합니다

✗ 지난 주말에 남대문시장 갔는데, 벼룩시장 이라 사람이 진짜 많더라. ✓ 지난 주말에 남대문시장 갔는데, 재래시장이라 사람이 진짜 많더라. → 남대문시장이나 광장시장처럼 상인이 상설 점포에서 새 물건을 파는 곳은 재래시장 또는 전통시장이라고 한다. 벼룩시장은 개인이 쓰던 물건을 정해진 날에만 임시로 펼쳐 놓는 자리다. 규모가 크고 오래됐다고 벼룩시장이 되는 것이 아니다.

✗ (직접 만든 물건을 파는 작가에게) 이런 걸 다 벼룩시장 에 들고 나오셨네요. ✓ (직접 만든 물건을 파는 작가에게) 이런 걸 다 플리마켓에 들고 나오셨네요. → 요즘 플리마켓이라는 이름을 단 행사에는 새로 만든 수공예품이 더 많다. 만든 사람 앞에서 벼룩시장이라고 부르면 남이 쓰던 헌 물건 취급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다. 같은 뿌리의 말인데도 자리가 갈린다.

상황별 활용 예문

1. 엘리베이터에서 이웃과 마주쳤을 때

안내문을 보고 알게 된 소식을 옆집 사람에게 전하는 상황이다. 존댓말이지만 딱딱하지 않은, 동네 사람끼리의 말투다.

이번 주 토요일에 놀이터 쪽에 벼룩시장 선대요. 애들 옷 정리하시면 한번 나와 보세요. ibeon ju toyoire nolliteo jjoge byeoruksijang seondaeyo. aedeul ot jeongnihasimyeon hanbeon nawa boseyo. (이번 주 토요일에 놀이터 쪽에 벼룩시장이 선대요. 아이들 옷 정리하시면 한번 나와 보세요.)

2. 물건을 버리기 아까울 때

혼잣말처럼 시작해서 상대에게 의견을 묻는 흐름이다. 아깝다와 벼룩시장은 한국어에서 굉장히 자주 붙어 다니는 짝이다.

이거 아직 멀쩡한데 버리기 아깝다. 벼룩시장 에 내다 팔까? igeo ajik meolijeonghande beorigi akkapda. byeoruksijange naeda palkka? (이거 아직 멀쩡한데 버리기 아깝다. 벼룩시장에 내다 팔까?)

3. 여행 이야기를 할 때

벼룩시장은 해외 여행 이야기에서도 자주 나온다. 파리, 런던, 도쿄의 유명한 벼룩시장은 한국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관광 코스다.

파리 가면 벼룩시장 은 꼭 가 봐. 거기서 산 접시가 아직도 우리 집에 있어. pari gamyeon byeoruksijangeun kkok ga bwa. geogieseo san jeopsiga ajikdo uri jibe isseo. (파리에 가면 벼룩시장은 꼭 가 봐. 거기서 산 접시가 아직도 우리 집에 있어.)

존댓말·반말과 비슷한 표현

벼룩시장은 사물의 이름이라 높임에 따라 단어 자체가 바뀌지는 않는다. 달라지는 것은 뒤에 붙는 서술어뿐이다. 친구에게는 벼룩시장 간다, 윗사람에게는 벼룩시장에 다녀오려고 합니다처럼 쓰면 된다. 공적인 안내문에서도 그대로 쓸 수 있어서, 구청이나 아파트 관리사무소 게시물에 나눔 벼룩시장 같은 이름이 자주 붙는다.

정작 학습자를 헷갈리게 하는 것은 높임이 아니라 비슷한 말들이다. 아래 다섯 개는 겹치는 듯하면서 자리가 다르다.

표현온도·강도쓰는 자리
벼룩시장 (byeoruksijang)중립, 정겹고 알뜰함동네 장터·학교 바자회·해외 관광지. 공식 안내문에도 그대로
플리마켓 (peullimaket)세련되고 트렌디함수공예·빈티지 마켓, 젊은 층과 SNS
알뜰장터 (altteuljangteo)실용적, 관공서 말투아파트·지자체가 여는 행사의 공식 이름
중고 시장 (junggo sijang)건조한 중립거래·경제 이야기. 장소가 아닌 시장 전체를 가리키기도 함
구제 시장 (guje sijang)마니아 느낌헌 옷을 전문으로 다루는 곳

특히 벼룩시장과 플리마켓의 거리를 기억해 두면 좋다. 어원은 같은데 요즘 한국에서 두 말은 서로 다른 그림을 부른다. 벼룩시장이라고 하면 돗자리와 이웃이 떠오르고, 플리마켓이라고 하면 예쁜 부스와 핸드메이드 액세서리가 떠오른다.

문화 배경 — 토요일 아침 주차장에 서는 장

벼룩시장은 순우리말처럼 생겼지만 사실은 번역해서 들여온 말이다. 영어 flea market, 그 앞의 프랑스어 marché aux puces를 글자 그대로 옮긴 것이다. 벼룩(flea, puce)과 시장(market, marché)을 한 단어씩 갈아 끼운 셈이다. 헌 가구와 헌 옷을 늘어놓고 팔던 자리라 벼룩이 있었다는 설명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일본어의 蚤の市(노미노이치)도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말이라, 한자 문화권 이웃 나라들이 나란히 같은 그림을 빌려 왔다는 점이 재미있다.

한국에 들어온 뒤 이 말은 아주 생활 속으로 내려앉았다. 가장 흔한 무대는 아파트 단지다. 주말 아침 관리사무소가 주차장 한 구역을 비워 주면 주민들이 돗자리를 깔고, 아이들 장난감과 안 쓰는 주방용품이 쏟아져 나온다. 학교에서는 바자회라는 이름으로 열리고, 초등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직접 값을 매기고 거스름돈을 계산해 보는 경제 교육 프로그램으로 벼룩시장을 여는 일도 많다. 지역 축제나 종교 단체의 나눔 행사에서도 벼룩시장은 단골 프로그램이다. 수익금을 기부하는 형태가 흔해서, 이 단어에는 장사보다 나눔의 인상이 더 강하게 붙어 있다.

1990년대부터는 《벼룩시장》이라는 이름의 무료 생활정보지가 전국에 뿌려졌다. 구인구직 광고와 중고 매물 광고를 빽빽하게 모아 놓은 신문이었는데, 지하철역 입구에 쌓여 있던 그 얇은 신문을 기억하는 한국 사람이 아주 많다. 인터넷 중고 거래 앱이 그 자리를 대신한 지금도 나이 든 세대에게 벼룩시장은 신문 이름으로 먼저 떠오르기도 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벼룩시장이 등장하는 자리도 정해져 있다. 이사를 앞두고 짐을 정리하는 장면, 오래된 물건을 처분하며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장면이다. 물건을 파는 행위 자체보다, 물건에 붙은 기억을 떠나보내는 장면으로 쓰인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이 벼룩시장에서 흥정하다가 결국 안 팔고 도로 싸 들고 오는 이야기가 그렇게 흔한 것이다.

하나 더. 벼룩시장은 한국에서 가격 흥정이 자연스러운 몇 안 되는 자리다. 백화점이나 편의점에서 깎아 달라고 하면 이상한 사람이 되지만, 벼룩시장에서는 조금만 깎아 주세요가 인사말에 가깝다. 파는 사람도 다 팔고 가벼운 몸으로 돌아가고 싶기 때문에, 오후가 되면 값이 뚝뚝 떨어진다. 늦게 가면 물건이 없고, 일찍 가면 비싸다 — 벼룩시장 단골들이 하는 말이다.

오늘의 퀴즈

다음 중 빈칸에 벼룩시장 을 넣었을 때 가장 자연스러운 문장은?

① 남대문 ( ) 은 100년이 넘은 곳이라 없는 게 없다. ② 이사 가기 전에 안 쓰는 물건을 ( ) 에 내다 팔았다. ③ 이 동네 ( ) 에서는 매일 아침 신선한 채소를 판다.

정답: ②

내다 팔다, 안 쓰는 물건, 이사라는 세 신호가 모두 벼룩시장을 가리킨다. ①은 오래된 상설 점포가 모인 곳이니 재래시장 또는 전통시장이 맞다. ③의 매일 아침이라는 말이 결정적인데, 벼룩시장은 매일 열리지 않는다. 정해진 날 아침에 섰다가 저녁이면 사라지는 장이라는 것, 그 하나만 기억해도 이 단어를 틀리게 쓸 일이 거의 없다.

이 글의 단어 뜻풀이와 예문은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krdict.korean.go.kr)에서 가져왔으며, 해당 부분(번역 포함)은 CC BY-SA 2.0 KR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배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