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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방송 (jaebangsong) — 어제 놓친 그 회, 새벽 두 시에 다시 옵니다

재방송

한국 드라마 팬이라면 새벽 두 시에 리모컨을 쥐고 앉아 본 적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재방송 (jaebangsong) 은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이미 방송했던 프로그램을 다시 방송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어제 본방송을 놓친 12회가 오늘 새벽에 다시 나온다면 그게 재방송이고, 명절 연휴 낮에 채널을 아무리 돌려도 어디선가 본 듯한 예능만 흘러나온다면 그것도 전부 재방송이다.

한자로는 다시 재(再)에 방송(放送)을 붙인 말이다. 글자 그대로 다시 내보낸다는 뜻이라, 단어 자체에는 좋고 나쁨의 색깔이 없다. 방송사 편성표에도 쓰이고, 친구끼리 하는 말에도 쓰이고, 뉴스 자막에도 그대로 쓰인다. 한국어 학습자에게 이 단어가 반가운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재방송은 자막 없이 같은 회차를 두 번 듣게 해 주는 장치라서, 처음엔 자막으로 이해하고 두 번째엔 귀로만 따라가는 연습을 하기에 딱 맞는다.

동사로 쓸 때는 방송사가 주어면 재방송하다 (jaebangsonghada), 프로그램이 주어면 재방송되다 (jaebangsongdoeda) 가 된다. 명사 그대로 붙여 쓰는 표현도 많다. 재방송을 보다 (jaebangsong-eul boda), 재방송을 놓치다 (jaebangsong-eul nochida), 재방송 편성 (jaebangsong pyeonseong) 처럼 쓴다.

뉘앙스에서 딱 하나만 기억하면 된다. 재방송에는 시간표가 있다. 방송사가 정해 둔 시각에 다시 나가는 것이 재방송이다. 내가 보고 싶을 때 눌러서 고르는 것은 재방송이 아니라 다시보기 (dasibogi) 다. 이 구분이 흐려지면 뒤에 나올 오용으로 바로 이어진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쓰임도 있다. 이미 들은 이야기를 또 들을 때 한국 사람들은 그 얘기 재방송이네 하고 말한다. 방송 용어를 사람 입에 옮겨 붙인 비유인데, 웃으며 하는 핀잔이지 칭찬은 아니다.

국립국어원 사전으로 확인하기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은 재방송을 이렇게 풀이한다.

재방송 「명사」 라디오나 텔레비전 등에서 이미 방송했던 프로그램을 다시 방송함. [영] re-run — The act of airing again a show that has already been aired on radio, TV, etc. [일] さいほうそう【再放送】 — ラジオやテレビなどで、以前に放送した番組を再び放送すること。 [서] retransmisión — Acción de volver a transmitir programas ya emitidos en la radio o televisión. [중] 重播 — 重新播放广播或电视等已经播放过的节目。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포르투갈어 뜻풀이는 사전에 실려 있지 않다. 참고를 위해 편집부에서 옮기면 reprise — ato de transmitir novamente um programa já exibido no rádio, na televisão etc. 정도가 된다. 이 한 줄만은 사전이 아니라 우리 번역임을 밝혀 둔다.

사전에 실린 실제 사용 예문도 함께 본다. 짧은 문장 안에 이 단어가 사는 자리가 다 들어 있다.

재방송이라서 곧이어 다음 회 또 하니까 그냥 둬.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재방송의 특징을 정확히 짚은 문장이다. 재방송은 한 회만 나오는 일이 드물고 두세 편을 이어서 몰아 트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채널을 돌리려는 상대에게 그냥 두라고 말리는 상황이다. 그냥 둬는 채널을 바꾸지 말라는 뜻의 아주 자연스러운 구어다.

나는 어제 못 봤던 드라마를 재방송으로 보았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학습자가 가장 먼저 외워야 할 형태가 여기 있다. 재방송으로 보다 (jaebangsong-euro boda). 조사 -으로가 붙어 어떤 경로로 봤는지를 나타낸다. 본방송을 놓친 사람이 하는 가장 흔한 말이다.

원래 재방송은 재미가 없지만 개그 프로그램은 다시 봐도 항상 재미가 있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재방송에 따라붙는 정서가 드러난 문장이다. 결말을 아는 채로 보는 것이라 김이 샌다는 인식이 기본값이고, 그 기본값을 뒤집는 예외로 개그 프로그램을 든다. 한국 사람들이 재방송을 어떻게 느끼는지가 이 한 문장에 담겨 있다.

이번 무대의 재방송 요청이 쇄도했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앞의 문장들과 온도가 다르다. 시청자가 방송사에 다시 틀어 달라고 요구하는 상황이라 재방송이 아쉬움이 아니라 열광의 증거가 된다. 음악 방송의 명장면이나 시상식 무대 뒤에 실제로 자주 벌어지는 일이다. 기사체 문장이라 쇄도했다 같은 딱딱한 서술어가 붙었다.

재방송을 보다. / 재방송을 듣다. / 재방송을 요청하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사전이 정리해 둔 기본 연어다. 보다는 텔레비전, 듣다는 라디오에 붙는다는 점만 기억하면 된다.

실제 대화로 보기

상황: 설 연휴 이튿날 오후. 상을 물린 거실 소파에서 리모컨을 돌리고 있다.

에밀리: 어? 이거 나 저번 주에 봤는데. 왜 또 해? Huh? I already watched this last week. Why is it on again?

준경: 명절엔 죄다 재방송이야. 이 시국에 누가 새로 찍냐. During the holidays it is all re-runs. Who is out there shooting new stuff right now?

에밀리: 아 맞다, 나 어제 12회 놓쳤는데. 그거 재방송 언제 해? Oh right, I missed episode 12 yesterday. When is the re-run for that?

준경: 새벽 두 시. 그냥 자고 내일 앱으로 봐. Two in the morning. Just go to sleep and watch it on the app tomorrow.

에밀리: 아니야, 나는 재방송으로 봐야 재밌어. 중간에 광고까지 나와야 실감 나지. No way, it is more fun for me as a TV re-run. It does not feel real without the commercials in the middle.

준경: 진짜 별나다. 난 먼저 잔다. You are something else. I am going to bed.

이렇게 쓰면 어색합니다

✗ 그 드라마 넷플릭스에서 재방송으로 봤어. ✓ 그 드라마 넷플릭스에서 다시보기로 봤어. → 재방송은 방송사가 시각을 정해 다시 내보내는 것이다. 내가 아무 때나 골라서 누르는 건 다시보기 또는 VOD다. 시간표가 없으면 재방송이 아니다.

✗ (부장님께) 부장님, 그 얘기 아까 하셨는데요. 완전 재방송이네요. ✓ (친구에게) 야, 그 얘기 아까 했잖아. 완전 재방송이야. → 같은 말을 반복한다는 뜻의 비유적 용법은 또 그 소리냐는 핀잔이다. 친한 또래끼리는 웃고 넘기지만 손윗사람에게 쓰면 무례하게 들린다. 윗사람에게는 아까 말씀해 주신 부분이죠 정도로 돌려 말하는 편이 안전하다.

상황별 활용 예문

상황 1 — 본방송을 놓치고 편성표를 뒤질 때

어제 방송분 재방송 언제 해요? (eoje bangsongbun jaebangsong eonje haeyo?) 어제 나간 회차 재방송이 언제인지 묻는 말. 팬 커뮤니티나 방송사 게시판에서 매일 올라오는 문장이다. 방송분은 방송된 회차라는 뜻이라 통째로 외워 두면 좋다.

상황 2 — 채널을 돌리려는 사람을 말릴 때

이거 재방송인데 그냥 봐. 나 이 장면 다시 보고 싶어. (igeo jaebangsong-inde geunyang bwa. na i jangmyeon dasi bogo sipeo.) 이미 본 걸 알면서도 그 장면 하나 때문에 계속 두는 상황. -인데는 앞의 사실을 인정하면서 그래도 하고 이어 가는 연결 어미다.

상황 3 — 다시 틀어 달라고 요청할 때

그 무대만이라도 재방송해 주시면 안 될까요? (geu mudae-manirado jaebangsonghae jusimyeon an doelkkayo?) 방송사에 정중히 부탁하는 말투. -만이라도는 전부는 못 해도 그것만은이라는 뜻이고, -면 안 될까요는 한국어에서 가장 부드러운 부탁 형식 중 하나다.

존댓말·반말과 비슷한 표현

재방송 자체는 명사라 높낮이가 없다. 문장 끝을 바꾸면 그만이다. 윗사람에게는 재방송합니다 / 재방송해요, 친구에게는 재방송해. 다만 비유적으로 쓸 때는 반말 자리에서만 쓴다.

표현온도·강도쓰는 자리
재방송 (jaebangsong)중립. 사실 그대로편성표, 뉴스, 일상 대화 어디서나
다시보기 (dasibogi)중립. 내가 고르는 쪽OTT·앱. 시간표 없이 눌러 볼 때
본방사수 (bonbangsasu)뜨겁고 신남팬덤·SNS. 격식 있는 자리엔 안 씀
재탕 (jaetang)부정적. 우려먹는다는 핀잔친한 사이. 공식 문서엔 절대 안 씀

재탕은 원래 한 번 우린 재료를 다시 우린다는 뜻이라, 편성표를 가리킬 때 쓰면 방송사를 흉보는 말이 된다. 사실을 말할 땐 재방송, 불만을 말할 땐 재탕이라고 생각하면 갈리는 자리가 분명해진다.

문화 배경 — 새벽 두 시와 명절 낮

한국의 재방송에는 두 개의 고정된 시간대가 있다. 하나는 심야에서 새벽으로 넘어가는 시각이다. 어제 본방송을 못 본 사람을 위한 자리라 드라마 팬들에게는 마지막 기회처럼 여겨졌다. 다른 하나는 설과 추석 연휴 낮이다. 제작진도 쉬는 기간이라 편성표가 재방송과 특선 영화로 채워지고, 그래서 명절 하면 상을 물린 뒤 소파에 앉아 어디서 본 듯한 화면을 멍하니 보는 풍경이 따라온다. 위의 대화가 명절 거실에 놓인 이유가 그것이다.

반대편에는 본방사수 (bonbangsasu) 가 있다. 본방송을 사수한다, 즉 처음 나가는 방송을 목숨 걸고 지킨다는 뜻의 팬덤 말이다. 시청률이 곧 작품의 수명이던 시절, 팬들이 서로에게 오늘 밤 꼭 본방으로 보자고 독려하면서 굳어졌다. 본방사수와 재방송은 같은 프로그램을 두고 갈라진 두 태도인 셈이다.

지금은 이 지형이 많이 바뀌었다. 다시보기와 OTT가 자리를 대신하면서 새벽 두 시에 알람을 맞추는 사람은 줄었다. 그래도 재방송이라는 말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얘기 재방송이네 같은 비유로 방송 밖으로 걸어 나와 일상어가 되었다. 한국어를 배우는 입장에서는 이 단어 하나로 편성표도 읽고 친구의 핀잔도 알아듣게 되는 셈이다.

오늘의 퀴즈

에밀리가 지난주에 방송된 드라마를 넷플릭스에서 직접 골라서 봤다. 이 상황에 가장 알맞은 말은?

  1. 나 그거 재방송으로 봤어.
  2. 나 그거 다시보기로 봤어.
  3. 나 그거 본방사수했어.

정답은 2번이다. 방송사가 정한 시각에 다시 나가는 것이 재방송이고, 내가 원하는 때에 골라 누르는 것은 다시보기다. 3번은 처음 방송될 때 실시간으로 봤다는 뜻이라 지난주 방송을 이제 본 상황과는 맞지 않는다.

이 글의 단어 뜻풀이와 예문은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krdict.korean.go.kr)에서 가져왔으며, 해당 부분(번역 포함)은 CC BY-SA 2.0 KR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배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