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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글맞다 — 혼내려다 웃어 버리게 만드는 그 얼굴

능글맞다

**능글맞다 (neunggeulmatda)**는 음흉하고 능청스러운 데가 있다는 뜻이다. 분명히 지적을 당했는데 정색하지 않고 슬쩍 웃어넘기는 사람, “안 된다”는 대답을 듣고도 웃는 얼굴로 계속 조르는 사람, 속으로는 셈을 다 끝내 놓고 겉으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을 짓는 사람 — 한국어는 그런 사람을 두고 이 말을 쓴다.

한국 드라마를 보다 보면 이 단어가 자막에 뜨는 순간이 꽤 자주 온다. 여자 주인공이 정색하고 화를 내는데 남자 주인공은 웃고만 있다. 화를 내던 쪽이 오히려 민망해질 무렵, 옆에 있던 친구가 한마디 던진다. “쟤 진짜 능글맞아 (neunggeulmaja).” 이때 이 말은 욕도 아니고 칭찬도 아니다. 미워하려다 만 자리, 딱 그 중간에 놓인다.

이 말의 핵심은 얼굴이다. 부끄러워해야 할 자리에서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 뻔뻔함을 차가움이 아니라 웃음으로 덮는다. 그래서 이 단어에는 거의 언제나 표정이 따라붙는다. 실제 회화에서도 **능글맞게 웃다 (neunggeulmatge utda)**처럼 웃음과 짝을 지어 나오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웃음이 빠지면 이 말은 잘 성립하지 않는다. 무표정하게 남을 속이는 사람은 능글맞은 것이 아니라 그냥 **음흉하다 (eumhyunghada)**에 가깝다.

강도는 생각보다 세지 않다. 사전 뜻풀이에 “음흉하고”가 들어 있어서 무섭게 들리지만, 실제로는 훨씬 가볍게 쓰인다. 정말 해를 끼친 사람에게는 이 말을 잘 쓰지 않는다. 오히려 밉지 않은 (mipji aneun) 뻔뻔함, 결국 당해 주고 마는 넉살 쪽이다. 부정적인 뜻인데 애정이 섞일 수 있는, 온도가 미묘한 단어다. 한국어 학습자가 사전 뜻만 보고 “나쁜 말”로 분류해 두면 드라마 속 웃음의 결을 놓치게 된다.

국립국어원 사전으로 확인하기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은 이 단어를 형용사로 싣고, 뜻을 이렇게 풀이한다.

능글맞다 「형용사」 음흉하고 능청스러운 데가 있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같은 사전이 제공하는 다국어 번역은 다음과 같다.

[en] wily; sneaky — Somewhat cunning and shameless. [ja] あつかましい — 陰険でずうずうしいところがある。 [es] astuto, taimado, artero — Que tiene aspecto astuto e insidioso. [zh] 耍滑,油滑,赖皮 — 有阴险凶恶、假惺惺之处。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영어 풀이의 shameless(부끄러움이 없는)와 일본어 풀이의 ずうずうしい(넉살 좋게 뻔뻔한)를 나란히 놓고 보면 이 단어의 무게중심이 어디인지 보인다. ‘속인다’보다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쪽이다. 참고로 포르투갈어 번역은 이 사전에 등재되어 있지 않다. 굳이 옮기면 malandro, cara de pau 정도가 가까운데, 이 포르투갈어는 사전 자료가 아니라 우리가 붙인 자체 번역임을 밝혀 둔다.

사전이 함께 싣고 있는 실제 사용 예문은 두 개다. 둘 다 그대로 옮기고 해설을 붙인다.

구렁이같이 능글맞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구렁이같이 능글맞다 (gureongigachi neunggeulmatda) — 구렁이는 몸집이 큰 뱀이다. 붙잡으려 해도 스르르 빠져나가고,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다. 책임을 물으려 할 때마다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는 사람, 대답을 요구했는데 웃으며 자리를 뜨는 사람을 두고 쓰는 말이다.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감각이 이 비유의 전부다.

표정이 능글맞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표정이 능글맞다 (pyojeongi neunggeulmatda) — 앞에서 말한 ‘얼굴’이 사전 예문에도 그대로 나와 있다. 주어가 사람이 아니라 표정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 단어는 행동보다 얼굴에 먼저 얹힌다. 야단을 맞는 중인데 입꼬리가 올라가 있는 얼굴,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눈은 웃고 있는 얼굴이 여기에 해당한다.

실제 대화로 보기

상황: 토요일 오전 재래시장. 딸기 한 상자를 사고 막 가게 앞을 나서는 길이다.

준경: 봤지? 한 팩 더 받았잖아. See that? I got an extra pack.

에밀리: 아주머니가 안 된다고 세 번이나 말했는데 너는 계속 웃고만 있더라. 너 진짜 능글맞다. The lady said no three times and you just kept smiling. You’re seriously shameless.

준경: 능글맞은 게 아니라 친화력이라고 하는 거야. That’s not being sneaky, that’s called being personable.

에밀리: 그게 바로 능글맞은 거거든. 아까 그 표정 어디서 배웠어? *That is exactly what being sneaky is. Where did you learn that face?

준경: 우리 아버지. 아버지가 나보다 훨씬 능글맞으셔. My dad. He’s way slicker than me.

에밀리: 아, 유전이었구나. 그럼 다음 주 수박은 네가 사 와. Ah, so it’s hereditary. Then you’re buying the watermelon next week.

이렇게 쓰면 어색합니다

✗ (부장님께) 부장님은 참 능글맞으세요. ✓ (부장님께) 부장님은 참 넉살이 좋으세요. → 뜻 안에 “음흉하다”가 들어 있어서, 손윗사람에게 얼굴을 보고 하면 칭찬이 아니라 흉이 된다. 사람 좋고 붙임성 있다는 뜻을 전하고 싶다면 넉살이 좋다 (neoksari jota) 쪽이 안전하다.

✗ 그 사람이 투자한다고 속여서 수억을 가로챘대. 진짜 능글맞아. ✓ 그 사람이 투자한다고 속여서 수억을 가로챘대. 진짜 악질이야. → 이 말에는 실없는 웃음이 섞여 있어서 실제 피해의 무게를 담지 못한다. 가벼운 뻔뻔함에는 맞지만 범죄에 쓰면 사안을 우습게 만드는 말이 된다.

상황별 활용 예문

상황 1 — 세 번째 지각한 후배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온다. 미안한 기색은 없고, 눈이 마주치자 씩 웃는다.

세 번째 지각해 놓고 능글맞게 (neunggeulmatge) 웃기만 한다.

혼내려고 준비한 말이 목에서 걸린다. 이 단어가 가장 자주 쓰이는, 가장 전형적인 자리다.

상황 2 — 소개팅 다음 날, 친구에게 후기를 전한다. 첫인상은 별로였는데 이상하게 기억에 남는다.

능글맞은데 (neunggeulmajeunde) 이상하게 밉지가 않더라.

‘-는데’로 살짝 꺾어 주는 것이 요령이다. 부정적인 말 뒤에 반전을 붙이면 호감의 표현이 된다. 한국인이 이 단어를 애정 있게 쓸 때의 전형적인 어법이다.

상황 3 — 명절, 조카가 슬금슬금 다가와 팔짱을 낀다. 용돈 이야기는 아직 꺼내지도 않았는데 이미 답이 보인다.

이 녀석 벌써부터 능글맞아 (neunggeulmaja), 누구 닮았는지 모르겠네.

아이에게 쓰면 나무람이 아니라 귀여워하는 말에 가까워진다. 같은 단어인데 상대의 나이에 따라 온도가 완전히 달라진다.

존댓말·반말과 비슷한 표현

반말은 능글맞아 (neunggeulmaja), 존댓말은 능글맞아요 (neunggeulmajayo) / **능글맞습니다 (neunggeulmatseumnida)**이다. 다만 앞에서 본 것처럼 상대의 얼굴을 보고 존댓말로 쓰는 일은 드물고, 대개 자리에 없는 제삼자를 두고 말한다.

형용사이므로 관형형은 **능글맞은 (neunggeulmajeun)**이다. 동사처럼 ‘능글맞는’이라고 쓰면 틀린다. ‘능글맞는 사람’(✗) / ‘능글맞은 사람’(✓).

표현온도·강도쓰는 자리
능글맞다 (neunggeulmatda)웃음 섞인 뻔뻔함, 살짝 부정적또래·아랫사람. 제삼자를 두고 말할 때가 대부분
능청스럽다 (neungcheongseureopda)중립에 가까움. 시치미 떼기연기·유머에도 씀. 칭찬으로도 가능
넉살이 좋다 (neoksari jota)긍정. 붙임성윗사람에게도 안전
뻔뻔하다 (ppeonppeonhada)강한 비난. 웃음 없음사이가 상해도 괜찮을 때만

특히 능청스럽다와의 차이를 잡아 두면 좋다. 능청스러움은 ‘모르는 척’이 중심이라 배우의 연기를 칭찬할 때도 쓴다. 반면 능글맞음에는 ‘속셈’이 한 겹 더 얹혀 있어서 칭찬으로 돌아서기가 어렵다.

문화 배경 — 미워할 수 없는 능구렁이

조어를 보면 성격이 보인다. ‘-맞다’는 쌀쌀맞다 (ssalssalmatda), 청승맞다 (cheongseungmatda), 방정맞다 (bangjeongmatda), **앙증맞다 (angjeungmatda)**처럼 앞말이 가리키는 성질이 그 사람에게 배어 있음을 나타내는 접미사다. 목록에서 보이듯 이 접미사가 붙은 말은 대체로 곱지 않은 평가에 쓰인다. 그래서 이 단어도 기본값이 흉보는 쪽이다. 애정이 섞이려면 앞뒤 문맥이 그걸 받쳐 줘야 한다.

사전 예문에 나온 구렁이도 우연이 아니다. 한국어에는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을 **능구렁이 (neunggureongi)**라 부르는 오래된 비유가 있고, 일을 분명히 처리하지 않고 슬그머니 얼버무리는 태도를 **구렁이 담 넘어가듯 (gureongi dam neomeogadeut)**이라고 한다. 이 단어가 구렁이에서 나왔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지만, 두 표현이 같은 그림을 공유하는 것은 분명하다. 붙잡으려 하면 스르르 빠져나가는 몸.

드라마에서 이 단어가 유독 자주 들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로맨스물의 남자 주인공에는 크게 두 갈래가 있다. 하나는 까칠하게 굴다가 속마음을 들키는 쪽이고, 다른 하나는 처음부터 웃으면서 거리를 좁혀 오는 쪽이다. 후자를 한국 시청자는 “능글맞은 남주”라고 부른다. 상대가 화를 내도 웃고, 선을 그어도 넘어오고,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는 진심을 보인다. 이 유형이 사랑받는 이유는 그 뻔뻔함이 상대를 해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단어가 욕이 되지 않는 지점도 정확히 거기다. 웃음 뒤에 악의가 없다는 것을 서로 알고 있을 때, 이 말은 비난이 아니라 항복 선언이 된다.

오늘의 퀴즈

다음 중 **능글맞다 (neunggeulmatda)**를 가장 자연스럽게 쓴 문장은?

  1. 인사를 해도 받지 않고 그냥 지나가더라. 참 능글맞다.
  2. 약속에 한 시간 늦어 놓고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웃기만 한다. 참 능글맞다.
  3. 시험 준비를 밤새워 했다더니 정말 능글맞다.

정답: 2번

1번은 차갑고 무뚝뚝한 태도라 **쌀쌀맞다 (ssalssalmatda)**가 맞다. 3번의 성실함은 이 단어와 아무 관련이 없다. 2번에는 이 말의 두 조건이 모두 들어 있다 — 부끄러워해야 할 상황,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나온 웃음. 이 둘이 겹칠 때만 능글맞다가 성립한다.

이 글의 단어 뜻풀이와 예문은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krdict.korean.go.kr)에서 가져왔으며, 해당 부분(번역 포함)은 CC BY-SA 2.0 KR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배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