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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시장 — 낮엔 그냥 길, 여섯 시가 넘으면 장이 서는 곳

야시장

야시장은 밤에 열리는 시장이라는 뜻이다. 낮에는 주차된 차와 셔터 내린 가게뿐이던 골목에 해가 지면 좌판이 깔리고 전구 줄이 켜지고, 자정이 지나면 다시 걷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빈 길로 돌아가는 장터다. 한국에 여행 온 사람이 가장 빨리 외우게 되는 장소 이름 중 하나가 야시장 (yasijang) 인데, 이유는 단순하다. 숙소에 짐을 풀고 나면 이미 저녁이고, 그 시간에 가장 재미있는 곳이 거기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에게 이 단어는 정보보다 온도로 먼저 온다. “야시장 갈까?”라는 말에는 밥을 먹자는 뜻과 좀 걷자는 뜻과 오늘은 일찍 안 들어간다는 뜻이 한꺼번에 들어 있다. 그래서 이 말은 계획표에 적히는 단어라기보다 저녁 무렵에 불쑥 튀어나오는 단어다.

뉘앙스에서 붙잡아야 할 조건은 두 가지다. 첫째, 이어야 한다. 밤늦게까지 문을 여는 것과 밤에 서는 것은 다르다. 둘째, 임시로 선다. 야시장은 건물이 아니라 시간이다. 그래서 한국어는 야시장에 “있다”보다 “선다”는 동사를 붙인다 — 야시장이 서다 (yasijangi seoda). 장이 섰다가 걷힌다는 감각이 이 단어의 뼈대다. 여기에 먹거리 중심이라는 성격이 얹힌다. 야시장에서 사는 것은 대개 손에 들고 걸으면서 먹는 것들이고, 그래서 이 단어는 구경하다와 유난히 잘 붙어 다닌다. 물건을 사러 가는 곳이라기보다 걸어 다니며 보는 곳이라는 뜻이다.

국립국어원 사전으로 확인하기

야시장 「명사」 밤에 열리는 시장. [en] night market — A market that opens at night. [ja] よいち【夜市】。よみせ【夜店】 — 夜に立つ市。 [es] mercado nocturno — Mercado que abre de noche. [zh] 夜市 — 晚上开的市场。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포르투갈어 뜻풀이는 사전에 실려 있지 않아, 아래 한 줄은 우리가 직접 옮긴 것임을 밝혀 둔다 — mercado noturno: mercado que funciona à noite.

사전이 함께 싣고 있는 실제 사용 예문을 원문 그대로 옮기고, 각각이 어떤 자리에서 나오는 말인지 붙여 본다. 먼저 짧은 연어 세 개다.

야시장에 나가다. 야시장을 구경하다. 야시장이 서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야시장에 나가다 (yasijange nagada) — “가다”가 아니라 “나가다”인 점이 재미있다. 집이나 숙소 안에 있다가 밖으로 나선다는 뜻이 붙어 있어서, 저녁을 먹고 나서 슬슬 움직이는 그림이 그려진다. 실제로 한국어에서 야시장은 “나가는” 곳이지 “들어가는” 곳이 아니다.

야시장을 구경하다 (yasijangeul gugyeonghada) — 위에서 말한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 짝이다. 사러 가는 게 아니라 보러 간다. 결과적으로 사게 되더라도, 출발할 때의 마음은 구경이다.

야시장이 서다 (yasijangi seoda) — 학습자가 가장 늦게 익히는 표현이자 가장 한국어다운 표현이다. 장은 열리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선다. 매주 금요일에, 명절 앞에, 축제 기간에 잠깐 섰다가 사라진다는 뜻이다.

다음은 문장 단위 예문이다.

밤중에 야시장을 돌아다니면서 길거리 음식을 먹었던 게 기억에 남아.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여행을 다녀온 뒤 친구에게 반말로 하는 말이다. “기억에 남아”라는 마무리가 중요한데, 야시장이 한국어에서 어떤 감정과 묶여 있는지 보여 준다. 대단한 일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밤에 걸어 다니며 먹은 기억 자체가 남는 곳이다.

그 가게 주인은 밤에 야시장에서 물건을 도매로 사다가 낮에 장사를 했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야시장이 관광지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 주는 문장이다. 밤에 물건이 도매로 오가고 낮에 그 물건이 다시 팔린다. 여행자에게는 야경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일터라는 뜻이다.

친구와 나는 가끔씩 야시장에 나가 쇼핑을 한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가끔씩”이라는 빈도 부사가 붙어 있는 데 주목하자. 야시장은 매일 가는 곳이 아니라 이따금 마음먹고 나가는 곳이다. 여기서는 구경이 아니라 “쇼핑”이라고 했으니, 옷이나 잡화 좌판이 큰 시장을 떠올리면 된다.

실제 대화로 보기

상황: 부산 여행 둘째 날 저녁. 숙소 앞 골목, 방금 해가 졌다.

준경: 저녁은 그냥 나가서 때우자. 여기서 열 걸음이면 야시장이야. Let’s just grab dinner out. The night market is ten steps from here.

에밀리: 진짜? 나 어제 낮에 저기 지나갔는데 아무것도 없었는데. Really? I walked past there yesterday afternoon and there was nothing.

준경: 낮엔 그냥 길이지. 여섯 시 넘어야 야시장이 서. During the day it’s just a street. The night market only sets up after six.

에밀리: 아, 그래서 사람들이 다 저쪽으로 몰려가는구나. 씨앗호떡도 있어? Ah, that’s why everyone’s heading that way. Do they have seed hotteok too?

준경: 있지. 대신 현금 좀 챙겨. 카드 안 되는 데 아직 많아. They do. But bring some cash — a lot of stalls still don’t take cards.

에밀리: 오케이. 오늘은 야시장 구경만 하고 안 사려고 했는데, 글렀다. Okay. I was gonna just look around the night market and not buy anything, but that’s out the window.

이렇게 쓰면 어색합니다

✗ 저희 편의점은 밤 늦게까지 해서 야시장이에요. ✓ 저희 편의점은 밤 늦게까지 영업해요. → 야시장은 밤에 잠깐 섰다가 걷히는 장터를 가리킨다. 밤늦게까지 문을 여는 상설 가게나 마트는 아무리 늦게 닫아도 야시장이 아니다.

✗ 새벽 네 시에 야시장에 가서 생선을 떼 왔어요. ✓ 새벽 네 시에 도매시장에 가서 생선을 떼 왔어요. → 야시장의 시간대는 해가 진 뒤부터 자정 무렵까지다. 동트기 전에 서는 장은 새벽시장이나 도매시장이라고 부른다. 같은 “밤”처럼 보여도 한국어는 이 둘을 다른 단어로 나눈다.

상황별 활용 예문

1. 주말 여행 일정을 정하는 단톡방에서

토요일 저녁은 야시장에서 해결하자. 거기 가면 다 있어. (toyoil jeonyeogeun yasijangeseo haegyeolhaja. geogi gamyeon da isseo.) Let’s sort out Saturday dinner at the night market. They’ve got everything there.

식당을 예약할지 말지 정하는 자리에서 나오는 말이다. “해결하자”는 표현이 붙으면 격식 없이 간단히 때우자는 뜻이 되는데, 야시장과 유난히 잘 어울린다.

2.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된 동료에게 동네를 알려 줄 때

이 골목은 금요일마다 야시장이 서니까 그날 저녁에 한번 와 보세요. (i golmogeun geumyoilmada yasijangi seonikka geunal jeonyeoge hanbeon wa boseyo.) A night market sets up in this alley every Friday, so come by that evening.

존댓말 자리에서도 “서다”는 그대로 쓴다. 요일을 함께 말해 주는 것이 이 단어의 예의인데, 야시장은 시간이 정해져 있어야 성립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3. 여행 다녀와 사진을 올리며

어제 야시장 구경만 하려다가 결국 두 손 가득 들고 나왔어요. (eoje yasijang gugyeongman haryeoda gyeolguk du son gadeuk deulgo nawasseoyo.) I meant to just look around the night market yesterday, but I came out with both hands full.

“구경만 하려다가”는 야시장 후기에 거의 관용구처럼 따라붙는 말이다. 앞서 본 것처럼 구경과 짝을 이루는 단어라, 그 전제를 깨는 방식으로 농담이 만들어진다.

존댓말·반말과 비슷한 표현

야시장은 사물·장소를 가리키는 명사라 그 자체에는 높낮이가 없다. 높낮이는 뒤에 붙는 서술어가 정한다 — 친구에게는 야시장 갈래? (yasijang gallae?), 손윗사람에게는 야시장 한번 가 보시겠어요? (yasijang hanbeon ga bosigesseoyo?) 처럼 쓰면 된다. 정작 학습자가 헷갈리는 것은 높임이 아니라 비슷한 시장 이름들이다.

표현온도·강도쓰는 자리
야시장 (yasijang)들뜸. 밤에 임시로 서는 장여행·동네 안내. 먹거리 이야기와 함께
새벽시장 (saebyeoksijang)부지런함. 해 뜨기 전 장도매·농수산물,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전통시장 (jeontongsijang)중립. 낮에 상설로 여는 장안내문·뉴스 등 공적인 자리
플리마켓 (peullimaket)가볍고 트렌디주말 마켓, SNS. 중고·수공예 중심

전통시장과 야시장은 겹치기도 한다. 낮에는 전통시장으로 돌아가던 한 골목이 저녁이면 야시장으로 바뀌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이때 한국 사람은 같은 장소를 시간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문화 배경 — 밤에만 켜지는 골목

야시장은 한자어다. 야(夜, 밤)시장(市場) 이 붙은 말이라, 글자 그대로 “밤 시장”이다. 그래서 밤 시장이라고 직역해 말하는 학습자가 많은데, 한국어에서 굳어진 형태는 야시장 쪽이다. 준말로 야시 (yasi) 라고 하기도 한다.

이 단어가 지금처럼 여행의 단어가 된 것은 2010년대다. 그전까지 야시장은 어딘가 낡고 소란스러운 어감이었지만, 부산 부평깡통야시장, 전주 남부시장 야시장, 서울의 밤도깨비야시장처럼 지자체와 상인회가 함께 꾸린 장이 하나둘 자리 잡으면서 성격이 바뀌었다. 지금은 지역을 소개하는 글에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야시장의 규칙 몇 가지는 알고 가면 편하다. 대개 저녁 여섯 시에서 일곱 시 사이에 시작해 밤 열한 시나 자정에 끝난다. 좌판마다 카드 단말기가 있는 곳이 늘었지만 현금이 여전히 빠르다. 그리고 대부분 서서 먹거나 걸으면서 먹는다. 한국 드라마에서 인물들이 속엣말을 털어놓는 장면이 자주 밤 시장이나 포장마차에서 벌어지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마주 앉아 눈을 보고 말하는 자리가 아니라 나란히 걸으며 말하는 자리라서, 낮에는 못 하던 말이 나온다.

그래서 “야시장 갈까?”는 초대의 말이기도 하다. 한 시간쯤 나란히 걷자는 제안이고, 대답이 “좋아”면 그 밤은 대체로 길어진다.

오늘의 퀴즈

다음 중 야시장을 자연스럽게 쓴 문장은 무엇일까요?

  1. 저희 가게는 24시간 영업이라 야시장이에요.
  2. 이 광장에는 매주 토요일 밤에 야시장이 섭니다.
  3. 새벽 다섯 시에 야시장에 가서 채소를 떼 왔어요.
정답 보기

정답: 2번

야시장은 정해진 날 밤에 임시로 서는 장이므로 “매주 토요일 밤에 야시장이 섭니다”가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1번은 밤늦게까지 여는 상설 가게일 뿐이라 야시장이 아니고, 3번의 새벽에 서는 장은 새벽시장이나 도매시장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이 글의 단어 뜻풀이와 예문은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krdict.korean.go.kr)에서 가져왔으며, 해당 부분(번역 포함)은 CC BY-SA 2.0 KR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배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