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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숙 — 만나기만 하면 부딪히는 사이, 그런데 왜 헤어지지 않을까

앙숙

**앙숙 (angsuk)**은 원한을 품고 서로 미워하는 사이라는 뜻이다. 한 번 크게 다투고 만 관계가 아니라, 미움이 오래 쌓여서 굳어버린 관계를 가리키는 말이다.

한국 드라마를 보다 보면 이 장면이 반드시 나온다. 주인공 둘이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눈빛이 사나워지고, 그때부터 사사건건 부딪힌다. 회의실에서 부딪히고, 엘리베이터에서 부딪히고, 급기야 옆집으로 이사까지 온다. 그런데 시청자는 이미 알고 있다 — 저 둘은 12회쯤 되면 손을 잡는다는 걸. 이 관계를 한국 사람들은 한 단어로 부른다. 바로 **앙숙 (angsuk)**이다.

뜻과 뉘앙스

앙숙에는 다른 말로 대체하기 어려운 조건이 세 가지 들어 있다.

첫째, 쌍방향이다. 한쪽만 미워하고 다른 쪽은 아무 생각이 없다면 앙숙이 아니다. 두 사람이 마주 서서 똑같이 미워해야 성립한다. 그래서 앙숙은 대부분 앙숙 사이 (angsuk sai), **앙숙 관계 (angsuk gwangye)**처럼 관계를 가리키는 말과 함께 쓰인다.

둘째, 시간이 필요하다. 어제 처음 싸운 사이는 앙숙이 될 수 없다. 미움이 반복되고 누적되어 이제는 이유조차 흐릿해진 상태, 그게 앙숙이다. 사전 예문에 “오래전부터”라는 말이 붙는 이유가 여기 있다.

셋째, 뜻은 세지만 말투는 의외로 가볍다. 이게 학습자가 가장 놓치기 쉬운 부분이다. 앙숙은 실제 대화에서 심각한 얼굴로 나오는 일이 드물다. 야구팀 두 개, 형과 동생, 옆집 고양이와 우리 집 고양이 — 이렇게 웃으면서 말할 때 훨씬 자주 등장한다. 진짜로 심각한 원한에는 오히려 다른 말을 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앙숙은 주로 제3자를 관찰하며 쓰는 말이다. “쟤네 둘은 앙숙이야”는 아주 자연스럽지만, “우리는 앙숙이에요”는 상황을 가려 써야 한다. 이 감각은 뒤에서 다시 다루겠다.

국립국어원 사전으로 확인하기

국가 기관이 만든 사전은 이 단어를 어떻게 적어 두었는지 그대로 옮겨 본다.

앙숙 「명사」 원한을 품고 서로 미워하는 사이. [영어] being like cats and dogs; being on bad terms — A state of having a grudge against and hate one another, or such a relationship. [일본어] あだ【仇】/ あだがたき・きゅうてき【仇敵】 — 恨みがあって憎み合う関係。 [스페인어] personas que se odian, enemigos — Personas que se odian y sienten rencor el uno por el otro, la relación entre ellas. [중국어] 冤家对头,死对头,宿敌 — 怀着怨恨,相互讨厌的关系。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영어 뜻풀이가 재미있다. being like cats and dogs, 즉 “고양이와 개 같은 사이”다. 한국어 앙숙과 영어 관용구가 그리는 그림이 거의 겹친다.

포르투갈어 번역은 사전에 실려 있지 않다. 참고용으로 우리가 옮기면 inimigos figadais / pessoas que se odeiam mutuamente 정도가 되는데, 이 포르투갈어만은 사전 인용이 아니라 우리 번역임을 밝혀 둔다.

이제 사전이 실어 둔 실제 사용 예문을 보자.

그 둘은 틈만 나면 서로 물어뜯는 앙숙이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Geu dureun teumman namyeon seoro mureotteunneun angsugida. “틈만 나면”이 핵심이다. 늘 싸우는 게 아니라, 마주칠 기회만 생기면 어김없이 싸운다는 말이다. 앙숙의 지속성과 반복성이 이 한 구절에 다 들어 있다.

오래전부터 앙숙이었던 두 집단은 세력 다툼을 그치지 않았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Oraejeonbuteo angsugieotdeon du jipdaneun seryeok datumeul geuchiji anatda. 앙숙은 사람 둘 사이에만 쓰는 말이 아니다. 회사와 회사, 팀과 팀, 집안과 집안처럼 집단끼리도 앙숙이 된다. 사극이나 사회면 기사에서 이 용법을 자주 만난다.

앙숙으로 지내다. / 앙숙이 되다. / 앙숙 사이. / 앙숙 관계.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Angsugeuro jinaeda / Angsugi doeda / Angsuk sai / Angsuk gwangye. 사전이 정리해 둔 네 가지 결합형이다. 통째로 외워 두면 바로 쓸 수 있다. 앙숙이 되다는 관계가 그렇게 변했다는 뜻이고, 앙숙으로 지내다는 그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는 뜻이다. 시간의 방향이 다르다.

처음에는 만나기만 하면 싸우는 앙숙이었는데 자꾸 싸우다 보니 정이 들어서 사귀기 시작했어요.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Cheoeumeneun mannagiman hamyeon ssauneun angsugieonneunde jakku ssauda boni jeongi deureoseo sagwigi sijakaesseoyo. 사전 예문인데 드라마 줄거리를 그대로 요약해 놓은 것 같다. 뒤의 문화 배경 부분에서 이 문장을 다시 꺼내겠다.

나와 승규는 어릴 때부터 친한 동네 친구였지만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다툰 후 앙숙이 되어 버렸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Nawa Seunggyuneun eoril ttaebuteo chinhan dongne chinguyeotjiman han yeojareul saie dugo datun hu angsugi doeeo beoryeotda. 앙숙은 남남 사이보다 원래 가까웠던 사이에서 더 아프게 생긴다. 이 예문이 그 점을 정확히 보여 준다.

실제 대화로 보기

상황: 잠실야구장 3루 관중석. 오래된 라이벌 팀끼리 붙는 주말 경기, 8회말이다.

준경: 야, 저기 봐. 1루쪽 완전 뒤집어졌어. 진짜 앙숙이구나, 이 두 팀. Hey, look over there. The first-base side has completely lost it. These two teams really are arch-rivals.

에밀리: 근데 왜 이렇게까지 사이가 나빠? 무슨 일 있었어? But why do they dislike each other this much? Did something happen?

준경: 옛날에 한국시리즈에서 몇 번 붙었거든. 그때부터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They met in the Korean Series a few times back in the day. They’ve been out for each other ever since.

에밀리: 아, 그럼 30년 넘은 앙숙 관계네. 부모가 자식한테 물려주고 그러겠다. Ah, so it’s a rivalry over 30 years old. Parents probably hand it down to their kids.

준경: 물려주지, 당연히. 근데 웃긴 게, 경기 끝나면 저 사람들 같이 치맥해. Of course they do. But the funny part is, after the game they go get chicken and beer together.

에밀리: 뭐야, 그럼 앙숙이 아니라 그냥 친한 거잖아. What? Then they’re not enemies at all, they’re just friends.

이렇게 쓰면 어색합니다

✗ (남편과 어제 다툰 뒤 친구에게) 우리 어제 좀 싸웠어. 요즘 완전 앙숙이야. ✓ (남편과 어제 다툰 뒤 친구에게) 우리 어제 좀 싸웠어. 요즘 좀 서먹해. → 앙숙은 몇 년 치 미움이 쌓여야 붙는 말이다. 어제 한 번 다툰 일에 쓰면 과장이 심해서 듣는 사람이 “이혼하니?” 하고 놀란다. 일시적인 상태에는 서먹하다 (seomeokada), 사이가 안 좋다 (saiga an jotda) 쪽이 맞다.

✗ (부장님 앞 공식 회의에서) 부장님, 저희 팀이랑 영업팀은 원래 앙숙이잖아요. ✓ (부장님 앞 공식 회의에서) 부장님, 저희 팀이랑 영업팀이 좀 부딪히는 일이 많죠. → 문법은 완벽하지만 자리가 어긋난다. 공식 석상에서 두 부서 관계를 앙숙으로 규정해 버리면, 농담으로 던진 말이 회의록에 남는 선언이 된다. 그 자리에서는 관계를 이름 붙이지 말고 현상만 말하는 편이 안전하다.

상황별 활용 예문

1. 명절에 오랜만에 만난 사촌이 형제 사이를 물을 때

우리 형이랑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 완전 앙숙이었어. 근데 군대 갔다 오니까 세상 둘도 없는 친구 됐지. (Uri hyeorang naneun gohakgyo ttaekkaji wanjeon angsugieosseo. Geunde gundae gatda onikka sesang duldo eomneun chingu doetji.)

형제 사이에 앙숙을 쓰면 오히려 정겹게 들린다. 뒤에 반전이 붙기 때문이다. “앙숙이었어”라는 과거형은 지금은 아니라는 뜻을 이미 품고 있어서, 한국 사람들은 이 문장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화해한 결말을 기대한다.

2. 회사 안 두 부서의 오래된 신경전을 동료에게 설명할 때

저 두 부서는 평소엔 괜찮은데 예산 회의만 열리면 앙숙이 돼요. (Jeo du buseoneun pyeongsoen gwaenchanneunde yesan hoeuiman yeollimyeon angsugi dwaeyo.)

앙숙이 되다는 조건이 붙을 때 특히 잘 어울린다. 늘 그런 게 아니라 특정 상황에서만 관계가 뒤집힌다는 뜻이 살아난다. 앞의 오용 예와 달리 이 문장은 동료끼리 하는 사담이라 온도가 맞는다.

3. 집에 놀러 온 친구에게 반려동물 이야기를 할 때

우리 집 고양이랑 앞집 고양이가 앙숙 사이라서 창문만 열면 난리가 나요. (Uri jip goyangirang apjip goyangiga angsuk sairaseo changmunman yeolmyeon nalliga nayo.)

앙숙이 얼마나 가볍게도 쓰일 수 있는지 보여 주는 문장이다. 사람이 아닌 동물에게 쓰면 무게가 완전히 빠지고 귀여운 농담이 된다. 사전 뜻풀이의 영어 like cats and dogs와 겹쳐 읽으면 더 재미있다.

존댓말·반말과 비슷한 표현

앙숙은 명사이므로 그 자체에는 높임이 없다. 문장을 맺는 서술어가 높임을 결정한다.

  • 반말: 쟤네 둘은 앙숙이야. (angsugiya)
  • 존댓말: 그 두 분은 앙숙이에요. (angsugieyo)
  • 격식체: 두 집단은 오랜 앙숙입니다. (angsugimnida)

다만 격식체로 쓸 수 있다는 것과 격식 있는 자리에서 써도 된다는 것은 다르다. 앙숙은 사람 관계를 단정하는 말이라, 보고서나 공식 발언보다는 이야기하듯 전할 때 어울린다.

비슷해 보이는 말들을 견주면 자리가 분명해진다.

표현온도·강도쓰는 자리
앙숙 (angsuk)오래 쌓인 미움. 세지만 농담조로도 쓴다제3자의 관계를 말할 때. 스포츠 팀·형제·이웃·부서
라이벌 (raibeol)경쟁심이 중심, 미움은 옅다실력을 겨루는 사이. 칭찬으로도 쓸 수 있다
원수 (wonsu)가장 무겁다. 용서가 어려운 단계실제로 큰 피해를 준 상대. 농담으로는 웬수로 변형해 쓴다
사이가 안 좋다 (saiga an jotda)가장 순하고 중립적이다어디서나. 조심스럽게 돌려 말할 때

앙숙라이벌의 차이가 특히 중요하다. 라이벌은 상대를 인정하는 마음이 깔려 있어서 “저 선수는 제 좋은 라이벌입니다” 같은 문장이 성립한다. 앙숙에는 그 존중이 없다. “저 선수는 제 좋은 앙숙입니다”는 성립하지 않는다.

문화 배경 — 미운 정이라는 이상한 감정

한국 드라마에서 앙숙은 사실상 연애의 출발선이다. 두 주인공이 처음부터 사이가 좋으면 이야기가 굴러가지 않으니, 작가는 먼저 둘을 최대한 못 잡아먹게 만들어 놓는다. 그리고 이 구도가 통하는 이유는 한국어에 **미운 정 (miun jeong)**이라는 개념이 있기 때문이다.

정 (jeong)은 오래 부대끼며 쌓이는 애착을 뜻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그 정이 좋아하는 마음에서만 생기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워하면서 계속 마주치는 것도 결국 부대끼는 일이고, 그렇게 쌓인 것이 미운 정이다. 그래서 “미운 정도 정이다”라는 말이 성립한다. 앙숙이 사랑으로 뒤집히는 드라마 전개가 한국 시청자에게 억지스럽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배경이 이것이다.

재미있는 건 국립국어원 사전조차 이 서사를 예문으로 실어 두었다는 점이다. 앞에서 본 “처음에는 만나기만 하면 싸우는 앙숙이었는데 자꾸 싸우다 보니 정이 들어서 사귀기 시작했어요”가 그것이다. 드라마 작가가 지어낸 것이 아니라, 사전 편찬자가 이 단어의 전형적인 쓰임으로 골라 넣은 문장이다.

드라마 밖에서 앙숙이 가장 활발하게 쓰이는 곳은 프로야구다. 한국 프로야구에는 수십 년 묵은 라이벌 구도가 몇 개 있고, 그 팀들이 붙는 날이면 중계와 기사에 앙숙이라는 단어가 쏟아진다. 그런데 실제 경기장 분위기는 위 대화 속 준경의 말처럼, 경기가 끝나면 서로 다른 유니폼을 입은 채 같이 치킨을 먹는 쪽에 가깝다. 앙숙이라는 말이 무섭게 들리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어에서 이 단어는 관계의 끝이 아니라, 관계가 유난히 진하다는 표시에 가깝다.

오늘의 퀴즈

다음 중 **앙숙 (angsuk)**을 가장 자연스럽게 쓴 문장은?

  1. 오늘 아침에 지하철에서 발을 밟혀서 그 사람이랑 앙숙이 됐어요.
  2. 우리 옆집이랑 저희 집은 주차 문제로 10년째 앙숙이에요.
  3. 저는 김 선배를 정말 존경해요. 좋은 앙숙이거든요.
  4. 부장님, 제안서 검토 결과 두 부서가 앙숙임을 보고드립니다.

정답: 2번

1번은 오늘 아침에 벌어진 일이라 시간이 전혀 쌓이지 않았다. 앙숙에는 누적된 세월이 필요하다. 3번은 존경을 담고 있으니 앙숙이 아니라 라이벌이 들어갈 자리다. 4번은 뜻은 맞지만 공식 보고라는 자리와 어긋난다 — “두 부서 간 갈등이 있음을 보고드립니다” 쪽이 맞다. 2번은 10년이라는 시간, 주차 문제라는 반복되는 원인, 이웃이라는 쌍방향 관계가 모두 갖춰져 있어 완벽하다.


이 글의 단어 뜻풀이와 예문은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krdict.korean.go.kr)에서 가져왔으며, 해당 부분(번역 포함)은 CC BY-SA 2.0 KR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배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