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리다 — 받는 사람을 높이는 단 하나의 단어
드리다
**드리다 (deurida)**는 ‘주다’의 높임말로, 무엇을 다른 사람에게 건네어 가지게 하거나 쓰게 한다는 뜻이다. 물건이 오가는 손동작은 똑같은데, 받는 쪽을 높여서 말하는 단어다.
한국어를 배우다 보면 이상한 순간이 온다. 편의점 계산대에서 알바생이 “봉투 드릴까요?”라고 하고, 회사에서 팀장이 “제가 대표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하고, 설날 아침에 조카가 “세배 드릴게요”라고 한다. 물건, 말, 인사 — 오가는 것이 전부 다른데 단어는 하나다. 오늘은 이 하나를 제대로 잡는다.
한국어의 높임법은 세 갈래로 움직인다. 문장의 주어를 높이는 주체 높임(‘-시-’), 듣는 사람을 높이는 상대 높임(‘-요’, ‘-습니다’), 그리고 문장 안에서 행위가 향하는 대상을 높이는 객체 높임이다. 드리다는 이 세 번째를 맡는다. 어미를 덧붙여 높이는 것이 아니라 단어 자체가 통째로 바뀐다는 점이 특징이다. 같은 무리에 뵙다 (boepda), 여쭙다 (yeojupda), **모시다 (mosida)**가 있다. 현대 한국어에 남은 객체 높임 어휘는 사실상 이 넷이 전부라, 한 번 외워 두면 평생 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드리다는 문장의 끝맺음과 따로 논다.
이거 할머니께 드려. (igeo halmeonikke deuryeo.)
친구에게 하는 반말이다. 그런데 받는 사람인 할머니는 여전히 높다. 문장 끝은 반말, 문장 속 대상은 높임 — 이 두 축이 독립적으로 돈다. 그래서 “드리다를 쓰면 존댓말”이라고 외우면 반드시 틀린다. 정확히는 받는 사람이 나보다 위일 때 쓰는 말이다.
두 번째. 드리다는 물건에만 쓰지 않는다. 말과 마음에도 쓴다. 인사드리다, 말씀드리다, 감사드리다, 부탁드리다, 사과드리다 — 한국 회사에서 하루에 열 번은 듣는 말들이다. 띄어쓰기가 헷갈리는데, 사전에 한 단어로 오른 감사드리다·말씀드리다·인사드리다·부탁드리다는 붙여 쓰고, 사이에 조사가 들어가면 ‘감사를 드리다’처럼 띄어 쓴다.
세 번째. 다른 동사 뒤에 붙어 그 행위 전체를 높이기도 한다. 들어 드릴게요 (deureo deurilgeyo),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annaehae deurigetseumnida). 한국 서비스업 말투의 뼈대가 이 ‘-아/어 드리다’다. 카페, 은행, 병원에서 듣는 문장의 절반이 여기서 나온다.
국립국어원 사전으로 확인하기
드리다 (동사)
- (높임말로) 주다. 무엇을 다른 사람에게 건네어 가지게 하거나 사용하게 하다. [en] give; offer — (honorific) To give; to hand something over to someone or allow someone to use it. [ja] さしあげる【差し上げる】 — 「与える」の謙譲語。何かを誰かに渡して持たせたり使わせたりする。 [es] obsequiar — (TRATAMIENTO HONORÍFICO) Dar. Traspasar una cosa a una persona para que se adueñe o la aproveche. [zh] 致,呈,献,奉上 — (尊称)给。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 윗사람에게 어떤 말을 하거나 인사를 하다. [en] say; say hello — To say something or to greet an elder. [ja] もうしあげる【申し上げる】 — 目上の人に何かを言ったり挨拶をしたりする。 [es] saludar al mayor — Expresar un saludo o dirigirse al superior o al mayor. [zh] 致,道 — 向上级或年长者说话或打招呼。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 신에게 빌거나 신을 경배하는 의식을 하다. [en] pray; worship — To pray to God or perform a ceremony of worship. [ja] ささげる【捧げる】。くようする【供養する】 — 神に祈ったり、敬拝する儀式を行なったりする。 [es] ofrendar — Brindar culto o adoración a Dios mediante un ritual. [zh] 献上,奉上,献给 — 向神祈祷或敬拜神的仪式。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포르투갈어 번역은 사전에 실려 있지 않아 아래는 자체 번역이며 사전 인용이 아니다: 1) dar, oferecer — (honorífico) entregar algo a alguém para que o possua ou utilize; 2) saudar — dizer algo a alguém mais velho ou cumprimentá-lo; 3) ofertar — rezar a Deus ou realizar um ritual de adoração.
세 번째 뜻은 일상 회화에서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제사상에 술을 드리다, 기도를 드리다처럼 굳어진 자리에서만 살아 있다.
사전에 실린 실제 사용 예문 중 셋을 그대로 옮긴다.
- 간언을 드리다.
- 간청을 드리다.
- 감사를 드리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간언을 드리다 — 간언은 윗사람의 잘못을 조심스럽게 지적하는 말이다. 사극에서 신하가 임금 앞에 엎드려 하는 그 장면에 붙는다. 현대 회화에서는 쓸 일이 없지만, 사극 자막에서 만나면 이 뜻이다.
간청을 드리다 — 간절히 부탁한다는 뜻. 지금은 이 자리를 ‘부탁드립니다’가 거의 다 가져갔다. 문어체나 공식 서한에서만 남아 있다.
감사를 드리다 — 셋 중 오늘도 매일 쓰는 말이다. 격식 있는 자리의 인사말에서는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처럼 조사를 넣어 늘려 쓰고, 일상에서는 붙여 쓴 “감사드립니다”로 짧게 나온다.
덧붙이면, 사전에서 ‘드리다’로 검색하면 두드리다·건드리다처럼 글자만 겹치는 다른 동사의 예문도 함께 걸린다. 뜻이 전혀 다른 말이라 이 글에는 싣지 않았다.
실제 대화로 보기
상황: 준경의 본가 현관 앞. 에밀리가 홍삼 세트를 들고 서 있다. 초인종을 누르기 직전.
준경: 그거 네가 직접 드려. 내가 들고 들어가면 내 선물 되는 거야. Hand that over yourself. If I carry it in, it becomes my gift.
에밀리: 알았어. 근데 뭐라고 해? “이거 드립니다” 하면 너무 딱딱하지 않아? Okay. But what do I say? Wouldn’t “이거 드립니다” sound too stiff?
준경: “약소하지만 드리려고 가져왔어요” 해. 그게 제일 무난해. Say “It’s not much, but I brought this for you.” That’s the safest.
에밀리: 인사부터 하는 게 맞지? 처음 뵙는 거니까. I should greet them first, right? It’s my first time meeting them.
준경: 응, 고개 숙이고 “처음 뵙겠습니다” 먼저. 말씀 드리는 건 그다음이야. Yeah, bow and say “처음 뵙겠습니다” first. Talking comes after.
에밀리: 야, 나 손 떨려. 벨은 네가 눌러. Hey, my hands are shaking. You ring the bell.
이렇게 쓰면 어색합니다
✗ (선생님께) 선생님, 이 자료 저한테 드릴 수 있으세요? ✓ (선생님께) 선생님, 이 자료 저한테 주실 수 있으세요? → 드리다는 받는 사람을 높이는 말인데, 여기서 받는 사람은 ‘나’다. 결국 내가 나를 높이는 꼴이 된다. 윗사람이 나에게 줄 때는 주는 사람을 높이는 **주시다 (jusida)**를 쓴다.
✗ (후배에게) 이거 너한테 드릴게. ✓ (후배에게) 이거 너 줄게. → 문법은 멀쩡한데 자리가 어긋난다. 친구나 아랫사람에게 드리다를 쓰면 갑자기 벽을 세우는 느낌이 되고, 상황에 따라 비꼬는 말로 들린다.
상황별 활용 예문
1) 보고 전에 운을 뗄 때 (회사) 부장님, 잠깐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bujangnim, jamkkan malsseumdeuril ge itseumnida.) 한국 회사에서 상사에게 말을 거는 표준 시작 문장이다. 용건부터 바로 꺼내지 않고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로 한 박자 쉬어 주는 것이 예의로 통한다. 이 한 문장이 없으면 아무리 내용이 정중해도 성급하다는 인상을 준다.
2) 명절 아침, 세배를 마치고 (가족) 할머니, 새해 인사드립니다. 건강하세요. (halmeoni, saehae insadeurimnida. geonganghaseyo.) 절을 하고 고개를 들면서 하는 말이다. ‘인사드리다’라는 말이 절이라는 행위와 거의 붙어 있어서, 이 자리에서 “인사할게요”라고 하면 어른들 표정이 미묘해진다.
3) 계산대 앞 (가게) 영수증 드릴까요? (yeongsujeung deurilkkayo?) 여기서는 손님이 윗사람이다. 나이와 무관하게, 서비스를 받는 쪽이 높아진다. 스무 살 아르바이트생이 열여덟 살 손님에게도 이렇게 말한다. 드리다가 나이가 아니라 자리를 따르는 말이라는 것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예다.
보조용언으로 쓰는 연습도 하나. 제가 들어 드릴게요. (jega deureo deurilgeyo.) — 무거운 짐을 든 어르신 옆에서 쓰는 문장이다. “제가 들게요”도 틀리지 않지만, ‘드리다’를 붙이면 그 도움이 상대를 향한다는 사실이 문장에 새겨진다.
존댓말·반말과 비슷한 표현
드리다에는 반말 짝이 따로 없다. ‘주다’가 평범한 말이고 드리다가 그 높임말이라, 반말로 말하고 싶으면 주다로 돌아가면 된다. 다만 앞서 본 것처럼 문장 끝을 반말로 맺으면서 드리다는 그대로 둘 수 있다 — “할머니께 드려”처럼.
| 표현 | 온도·강도 | 쓰는 자리 |
|---|---|---|
| 주다 (juda) | 중립·기본형 | 친구·아랫사람. 방향 제한 없음 |
| 드리다 (deurida) | 받는 사람을 높임 | 내가 윗사람에게 건넬 때 |
| 주시다 (jusida) | 주는 사람을 높임 | 윗사람이 나에게 건넬 때 |
| 올리다 (ollida) | 격식·의례 | 편지 맺음말(‘○○ 올림’), 제사. 일상 대화엔 안 씀 |
| 바치다 (bachida) | 무겁고 비장함 | 나라·신·대의 앞. 사람에게 쓰면 과장 |
헷갈리기 쉬운 이웃도 하나 짚는다. **드시다 (deusida)**는 ‘먹다’의 높임말이라 드리다와 아무 관계가 없다. “할머니, 많이 드세요”는 맞지만 “할머니, 많이 드리세요”는 뜻이 완전히 달라진다 — 할머니더러 누군가에게 주라는 말이 된다. 소리가 비슷해서 학습자가 가장 자주 미끄러지는 지점이다.
문화 배경 — 두 손으로 건네는 순간
드리다는 거의 항상 몸짓과 함께 온다. 한국에서 윗사람에게 무언가를 건넬 때는 두 손으로 준다. 한 손으로 줘야 하는 상황이면 다른 손을 그 팔 아래에 살짝 받친다. 술자리에서 잔을 드릴 때, 명절에 봉투를 드릴 때, 면접장에서 서류를 드릴 때 이 자세가 나온다. 말과 몸이 한 세트라서, 드리다를 입으로만 말하고 손은 툭 내밀면 오히려 더 어색해진다.
봉투 문화도 이 단어와 붙어 있다. 결혼식 축의금, 장례식 부의금, 설날 세뱃돈은 모두 흰 봉투에 넣어 두 손으로 드린다. 지폐를 그대로 건네는 일은 거의 없다. 돈이라는 노골적인 물건을 종이 한 겹으로 감싸는 것 자체가 ‘드리다’의 태도다.
드라마를 보면 이 단어가 관계의 온도계로 쓰인다. 사이가 서먹한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제가 해 드릴게요”라고 말할 때의 거리감, 반대로 오래 다투던 아들이 아버지에게 술 한잔 드리겠다고 물을 때의 화해 신호 — 같은 단어가 장면에 따라 벽도 되고 다리도 된다. 자막에 찍히는 give 한 글자로는 절대 보이지 않는 층이다. 한국 드라마를 자막 없이 보고 싶다면, 이런 단어부터 귀에 넣어야 한다.
오늘의 퀴즈
선생님께 지난주 수업 자료를 부탁하는 상황이다. 괄호에 알맞은 말은?
“선생님, 지난주 자료 좀 ( )?”
① 드릴 수 있으세요 ② 주실 수 있으세요
정답: ②
자료를 받는 사람은 ‘나’다. 받는 사람을 높이는 드리다를 쓰면 스스로를 높이게 된다. 여기서 높여야 할 사람은 자료를 건네줄 선생님이므로 ‘주시다’를 쓴다. 반대로 내가 선생님께 자료를 건넨다면 그때는 **“선생님, 자료 드릴게요”**가 맞다. 방향이 바뀌면 단어도 바뀐다 — 드리다를 잡는 열쇠는 이 한 줄이다.
이 글의 단어 뜻풀이와 예문은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krdict.korean.go.kr)에서 가져왔으며, 해당 부분(번역 포함)은 CC BY-SA 2.0 KR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배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