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남의 말은 높이고 내 말은 낮추는 한 단어
한국 회사에 다니는 외국인이 가장 먼저 통째로 외우게 되는 문장이 있다. ‘확인해 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말씀 (malsseum)**은 남의 말을 높여 이르는 말이자 동시에 자기 말을 낮춰 이르는 말, 곧 ‘말’의 높임말이라는 뜻이다. 한 단어가 위아래 두 방향으로 동시에 움직이기 때문에, 한국어 경어법의 구조를 가장 짧게 보여 주는 단어이기도 하다.
이 말이 오가는 자리는 생각보다 넓다. 상사에게 보고하는 전화, 병원에서 의사의 지시를 옮길 때, 명절 밥상에서 어른이 한 이야기를 나중에 전할 때, 결혼식에서 사회자가 주례를 소개할 때, 교회에서 목사가 성경을 펼칠 때. 하루에 한 번은 반드시 지나가는 단어인데 학습자에게는 유독 미끄럽다. 명사 ‘말 (mal)‘을 ‘말씀’으로 바꿔 끼우기만 하면 끝나는 게 아니라, 뒤에 무엇을 붙이느냐에 따라 높이는 대상이 정반대로 바뀌기 때문이다.
방향은 두 갈래다. 첫째, 남의 말을 가리킬 때. ‘선생님의 말씀’, ‘어머님이 말씀하셨어요’처럼 쓰면 그 말의 주인을 높인다. 이때 짝이 되는 동사가 **말씀하시다 (malsseumhasida)**다. 둘째, 내 말을 가리킬 때.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처럼 쓰면 내 말을 낮춰서 듣는 사람을 높인다. 이때의 짝은 **말씀드리다 (malsseumdeurida)**다. 같은 명사인데 뒤따르는 동사 하나로 높임의 화살표가 뒤집힌다.
그래서 판별 기준은 하나면 충분하다. 지금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윗사람이 말한다면 ‘말씀하시다’, 내가 말한다면 ‘말씀드리다’. 이 하나만 붙잡아 두면 실수의 절반이 사라진다.
여기에 세 번째 쓰임이 붙는다. 종교, 특히 개신교와 천주교에서 ‘말씀’은 그 자체로 성경 구절이나 설교를 가리킨다. ‘오늘 말씀은 요한복음입니다’처럼 앞뒤에 아무 설명이 없어도 통한다. 한국 드라마에 교회나 성당 장면이 나올 때 자주 들리는 용법이라 알아 두면 귀가 한 겹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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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명사」
- (높이는 말로) 남의 말. [en] words — (polite form) Words of another person. [ja] おはなし【お話】。おことば【お言葉】。おおせ【仰せ】 — 他人の言葉を敬っていう語。 [es] (EXPRESIÓN DE RESPETO) El habla del otro. [zh] 话 — (敬语)别人的言语。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 (낮추는 말로) 자기의 말. [en] words — (impolite form) One’s own words. [ja] はなし【話】。ことば【言葉】 — 自分の言葉をへりくだっていう語。 [es] (EXPRESIÓN DE HUMILDAD) Habla propia. [zh] 话 — (谦词)自己的言语。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 성경에 있는 하느님의 말. [en] words in the Bible — The words of God in the Bible. [ja] おはなし【お話】。おことば【お言葉】。おおせ【仰せ】 — 聖書に書いてある神様の言葉。 [es] palabra de Dios — Palabra de Dios que se encuentra en la Biblia. [zh] 神默示,神谕 — 《圣经》中神的话语。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한 표제어 안에 존대(1번)와 겸양(2번)이 나란히 실려 있다는 점을 눈여겨보자. 사전이 굳이 ‘높이는 말로’와 ‘낮추는 말로’를 갈라 적어 둔 이유가 바로 앞에서 말한 화살표 뒤집힘이다. 참고로 포르투갈어 뜻풀이는 이 사전에 실려 있지 않아, 아래는 사전 인용이 아닌 우리 쪽 자체 번역이다 — palavras (forma de respeito): as palavras de outra pessoa / palavras (forma de humildade): as próprias palavras / a palavra de Deus na Bíblia.
다음은 사전에 실린 실제 사용 예문이다.
네, 일단 해 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업무 현장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형태다. 지금 당장 답을 줄 수 없을 때 시간을 버는 문장이기도 하다. 말하는 사람이 ‘나’이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malsseumdeurigetseumnida)**가 된다.
그러니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회의나 발표에서 이야기가 길어졌을 때 요점으로 돌아가는 신호다. 주어가 ‘제’라는 점이 ‘말씀드리다’와 딱 맞물린다.
엄마한테 반에서 일 등을 했다고 말씀드렸는데 별 반응이 없으셨어요.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말씀’이 회사 전용이 아니라는 증거. 가족 사이에서도 부모에게 하는 말은 ‘말씀드리다’다. 문장 끝의 ‘없으셨어요’까지 함께 높임으로 맞춰져 있는 점도 같이 보면 좋다.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 새겨듣도록 하겠습니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여기서는 동사 없이 명사 그대로 쓰였다. 선생님의 말씀 (seonsaengnimui malsseum) — 남의 말을 가리키므로 1번 뜻이다. 조언을 들은 뒤 정중하게 받아들이는 정형 문장이라 통째로 외워 둘 만하다.
아버지는 양심에 가책되는 일은 하지 말고 늘 떳떳하게 살라고 말씀하셨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윗사람이 한 말을 나중에 전하는 자리. 주어가 ‘아버지’이므로 ‘-시-‘가 붙은 **말씀하셨다 (malsseumhasyeotda)**가 쓰였다. 앞의 예문들과 정확히 반대 방향이다.
실제 대화로 보기
상황: 추석 저녁, 준경의 본가 부엌. 상을 다 치우고 둘이 설거지 중이다.
준경: 그거 그냥 담가 놔. 이따 내가 할게. Just leave that soaking. I’ll do it later.
에밀리: 어, 근데 아까 어머님이 말씀하신 거 있잖아. 김치 두 통 가져가라는 거, 진심이셔? Oh, but that thing your mom said earlier? Take two containers of kimchi — was she serious?
준경: 진심이지. 아까부터 김치통 꺼내 놓으셨잖아. Dead serious. She’s had the containers out this whole time.
에밀리: 아 어떡해, 우리 집 냉장고 자리 없는데. 나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돼? Oh no, there’s no room in our fridge. Can I just tell her honestly?
준경: 드려. 근데 ‘필요 없어요’ 말고 ‘다음에 꼭 받을게요’로. Go ahead. But say ‘I’ll definitely take some next time,’ not ‘I don’t need it.’
에밀리: 알았어. 진짜, 어머님 말씀 거절하는 게 제일 어렵다니까. Got it. Honestly, turning down your mom is the hardest thing there is.
두 사람은 서로에게 반말을 쓴다. 그런데 그 반말 안에서도 어머님을 가리키는 부분만은 ‘말씀하신’, ‘말씀드려도’, ‘말씀’으로 꼬박꼬박 높아진다. 한국어의 높임은 듣는 사람만이 아니라 문장 안에 등장하는 사람에게도 걸린다 — 이 대화가 그 장면을 그대로 보여 준다.
이렇게 쓰면 어색합니다
✗ (팀장님께) 팀장님, 제가 지금 말씀하시겠습니다. ✓ (팀장님께) 팀장님, 제가 지금 말씀드리겠습니다. → ‘-시-‘는 문장의 주어를 높이는 표시다. 주어가 ‘제’인데 ‘-시-‘를 붙이면 자기를 자기가 높이는 꼴이 되어, 공손하려다 오히려 웃음이 난다.
✗ (후배에게) 아까 네가 한 말씀, 다시 해 봐. ✓ (후배에게) 아까 네가 한 말, 다시 해 봐. → 또래나 아랫사람에게 ‘말씀’을 쓰면 정중하게 들리는 게 아니라 비꼬는 말투가 된다. 한국인은 상대와 일부러 거리를 두거나 화가 났을 때 이 과잉 높임을 무기처럼 쓴다.
상황별 활용 예문
1. 병원 접수 창구에서, 지난주 진료 때 들은 지시를 전할 때
지난번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검사, 오늘 받으러 왔어요. (jinanbeone seonsaengnimkkeseo malsseumhasin geomsa, oneul badeureo wasseoyo.)
의사의 말을 그대로 옮기는 자리다. 말한 사람이 나보다 윗사람이므로 ‘말씀하시다’를 쓴다. 접수 창구 직원에게 하는 말이지만, 문장 속에서 높여야 할 사람은 자리에 없는 의사라는 점이 재미있다.
2. 부동산 계약 전, 처음 전화를 거는 순간
계약서 때문에 여쭤볼 게 있는데, 잠깐 말씀 나눌 수 있을까요? (gyeyakseo ttaemune yeojjwobol ge inneunde, jamkkan malsseum nanul su isseulkkayo?)
‘말씀 나누다’는 대화 자체를 정중하게 부르는 표현이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부담 없이 쓸 수 있고, ‘이야기 좀 하죠’보다 훨씬 부드럽게 문을 연다.
3. 회의가 끝나갈 때 마지막으로 끼어들며
제가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jega majimageuro han malsseumman deurigetseumnida.)
‘한 말씀’은 짧게 말하겠다는 예고다. 실제로 짧은지는 아무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이 이 표현의 오랜 농담거리다.
존댓말·반말과 비슷한 표현
| 표현 | 온도·강도 | 쓰는 자리 |
|---|---|---|
| 말씀 (malsseum) | 격식 있고 무겁다 | 윗사람의 말, 또는 윗사람에게 하는 내 말 |
| 말 (mal) | 중립 | 어디서나. 또래·아랫사람에겐 이쪽 |
| 말씀하시다 (malsseumhasida) | 상대를 높임 | 주어가 윗사람일 때 |
| 말씀드리다 (malsseumdeurida) | 나를 낮춤 | 주어가 나일 때 |
| 여쭈다 (yeojjuda) | 나를 낮춤, 질문 전용 | 윗사람에게 물을 때만 |
| 이야기하다 (iyagihada) | 부드럽고 편함 | 격식이 낮은 자리, 가벼운 존댓말 자리 |
표에서 빠진 칸이 하나 있다. ‘말씀’에는 반말 짝이 없다. 친구끼리 ‘네 말씀’이라고 하지 않고 그냥 ‘네 말’이라고 한다. 높임 전용으로만 존재하는 단어여서, 이 말이 나오는 순간 그 자리의 온도가 한 단계 올라간다고 봐도 된다.
문화 배경 — 마이크 앞의 한 말씀
한국의 공식 행사에는 ‘한 말씀’의 자리가 거의 정해져 있다. 결혼식의 주례, 회식에서 첫 잔을 들기 전의 부장님, 졸업식의 교장 선생님, 집들이에서 가장 나이 많은 손님. 사회자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라고 하면 문자 그대로 한 문장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 자리의 모두가 알고 있다. 오피스 드라마에서 회식 장면에 신입 사원이 갑자기 지목당해 얼어붙는 장면이 반복해서 나오는 이유도 여기 있다. 말할 준비가 아니라 ‘높여서 말할 준비’가 안 되어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한국인끼리도 자주 틀리는 문장이 하나 있다. 행사장에서 흔히 들리는 ‘사장님 말씀이 계시겠습니다’다. ‘계시다’는 사람에게 쓰는 말인데 이 문장의 주어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이다. 표준 언어 예절에서는 ‘사장님 말씀이 있으시겠습니다’ 쪽을 권한다. 사람을 직접 높이는 것과, 그 사람에게 딸린 것을 통해 간접적으로 높이는 것을 구별하는 규칙이다. 학습자가 이걸 알고 있으면 한국인이 오히려 놀란다.
앞의 대화에서 에밀리가 김치를 거절하기 어려워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어머님 말씀’이라고 부르는 순간, 그 말은 이미 단순한 제안이 아니라 받아들여야 할 무엇이 되어 있다. 단어가 관계의 무게를 미리 실어 나른다.
오늘의 퀴즈
팀장님께 보고하는 상황이다. 빈칸에 알맞은 것은?
팀장님, 제가 확인해 보고 다시 ( ).
① 말씀하시겠습니다 ② 말씀드리겠습니다 ③ 말씀이 계시겠습니다
정답: ② 말씀드리겠습니다 (malsseumdeurigetseumnida)
말하는 사람이 ‘저’이므로 나를 낮추는 ‘말씀드리다’를 쓴다. ①은 주어가 나인데 ‘-시-‘로 자기를 높인 꼴이고, ③은 주어가 사람이 아니라 ‘말씀’이어서 ‘계시다’와 애초에 어울리지 않는다. 오늘 이 문장 하나만 입에 붙여 두면, 한국에서 일하는 첫날 걸려 오는 전화는 무사히 넘길 수 있다.
이 글의 단어 뜻풀이와 예문은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krdict.korean.go.kr)에서 가져왔으며, 해당 부분(번역 포함)은 CC BY-SA 2.0 KR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배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