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 가게 주인부터 처음 만난 어른까지, 한국에서 가장 많이 불리는 호칭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된 사람이 가장 자주 겪는 곤란 중 하나는 ‘저 사람을 뭐라고 불러야 하지?‘다. 이름을 모르고, 나이도 모르고, 직함은 더더욱 모른다. 그럴 때 한국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꺼내 드는 말이 하나 있다. **사장님 (sajangnim)**은 가게나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을 높여 부르는 말이라는 뜻이다. 시장 과일 가게 앞에서도, 미용실 의자에 앉아서도, 거래처와 통화하면서도 이 말이 나온다. 한 단어인데 감당하는 자리가 이렇게 넓은 호칭은 흔치 않다.
사장님
구조는 단순하다. 직함 ‘사장’에 사람을 높이는 접미사 ‘-님’이 붙었다. 그런데 이 ‘-님’ 하나가 하는 일이 크다. **사장 (sajang)**은 직함 그 자체이고 3인칭 서술에 쓰는 말이라, 눈앞의 상대를 부를 때 그냥 ‘사장!’이라고 하면 부르는 게 아니라 시비를 거는 것처럼 들린다. 부를 때는 반드시 사장님이다.
뉘앙스에서 중요한 건 두 가지다. 첫째, 규모를 따지지 않는다. 직원 200명을 둔 회사의 대표도 사장님이고, 혼자 김밥을 마는 분식집 주인도 사장님이다. 한국에서 이 말은 ‘큰 기업의 CEO’라는 뜻이 아니라 ‘자기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에 가깝다.
둘째, 정중하되 딱딱하지 않다. 아주 격식 차린 자리의 말도 아니고 친근하게 툭 던지는 말도 아닌, 딱 중간의 온도다. 상대를 살짝 치켜세우면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그래서 처음 보는 어른에게 쓰기 좋고, 실제로 한국인들은 상대가 사장인지 확실하지 않을 때도 이 말을 먼저 꺼낸다. 틀려도 손해 볼 게 없는 호칭이기 때문이다.
국립국어원 사전으로 확인하기
사장님 「명사」 (높이는 말로) 가게나 회사의 사장. [en] president — (polite form) The president of a store or company. [ja] しゃちょう【社長】 — 店や会社の社長を敬っていう語。 [es] presidente, ta — (EXPRESIÓN DE RESPETO) Presidente de una tienda o empresa. [zh] 老板, 经理 — (敬语)店铺或公司的负责人。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뜻풀이 맨 앞의 ‘(높이는 말로)‘가 이 단어의 핵심이다. 사전이 뜻을 ‘사장’이라고만 적고 그 앞에 높임 표시를 붙였다는 건, 이 말이 가리키는 대상은 ‘사장’과 같고 달라지는 건 상대를 대하는 태도뿐이라는 뜻이다.
포르투갈어 뜻풀이는 사전에 실려 있지 않아 아래 번역은 자체적으로 옮긴 것이다. (사전 원문 아님)
[pt] patrão / chefe — (forma respeitosa) dono de uma loja ou empresa.
이제 사전이 싣고 있는 실제 사용 예문을 보자.
사장님, 무슨 일부터 할까요?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출근한 직원이 그날 업무를 확인하는 자리다. 문장 맨 앞에 호칭을 놓고 쉼표로 끊는 이 형태가 가장 전형적인 쓰임이다. 한국어에서는 이렇게 상대를 먼저 부르고 용건을 꺼내는 순서가 자연스럽다.
사장님, 이번 일은 제가 모두 맡아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앞 예문보다 훨씬 격식이 높다. ‘-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무거운 어미와 짝을 이루면서, 책임을 지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자리가 된다. 같은 호칭도 뒤에 붙는 말에 따라 온도가 달라진다는 걸 보여 준다.
가뜩 힘들어 죽겠는데 사장님이 야근을 하라고 하셔서.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이건 사장님 앞이 아니라 동료에게 하는 하소연이다. 불평을 하면서도 호칭은 여전히 ‘사장님’이고 ‘하셔서’라고 높임을 유지한다. 한국어의 높임말은 감정과 별개로 관계에 따라 유지되는 장치라는 점이 잘 드러난다.
사장님이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치자 직원들의 눈길이 모두 사장님에게로 갔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부르는 말이 아니라 3인칭으로 서술하는 쓰임이다. 이 자리에서도 ‘사장이’가 아니라 ‘사장님이’를 쓰는 게 보통이다. 회사 안 사람이 자기 회사 대표를 이야기할 때는 그 자리에 없어도 ‘-님’을 붙인다.
아니. 김 사장님은 가난뱅이 농사꾼의 아들에서 지금 그렇게 성공하신 거래.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성(姓) 뒤에 붙여 ‘김 사장님’, ‘박 사장님’처럼 쓰는 형태다. 이름을 다 부르지 않고 성 한 글자에 직함을 얹는 이 방식이 한국에서 어른을 지칭하는 가장 무난한 공식이다.
실제 대화로 보기
상황: 에밀리가 이사한 첫 주말. 준경과 함께 동네 재래시장에 장을 보러 나왔다.
에밀리: 저기 아저씨, 이 복숭아 얼마예요? Excuse me, mister, how much are these peaches?
준경: (작게) 야, 여기선 사장님이라고 불러야지. (quietly) Hey, here you should call him sajangnim.
에밀리: 어? 가게가 이렇게 조그만데도? Huh? Even though the shop is this small?
준경: 크기랑 상관없어. 자기 가게 하시는 분은 다 사장님이야. Size has nothing to do with it. Anyone running their own shop is a sajangnim.
에밀리: 아하. 사장님, 이거 두 상자 주세요! Ah-ha. Sajangnim, two boxes of these, please!
준경: 봐, 방금 한 개 더 얹어 주시잖아. 말 한마디 차이야. See? He just threw in an extra one. It’s all in one word.
이렇게 쓰면 어색합니다
✗ (명함을 건네며) 안녕하세요, 제가 이 회사 사장님입니다. ✓ (명함을 건네며) 안녕하세요, 제가 이 회사 사장입니다. → ‘-님’은 남을 높이는 말이라 자기 자신에게 붙일 수 없다. 스스로를 소개할 때는 ‘사장’, ‘대표’처럼 직함만 말한다. 문법은 멀쩡하지만 듣는 사람은 웃음을 참는다.
✗ (구청 민원 창구에서) 사장님, 이 서류 어디에 내면 돼요? ✓ (구청 민원 창구에서) 선생님, 이 서류 어디에 내면 될까요? → 사장님은 ‘장사하는 사람’을 전제로 한 호칭이다. 공무원·의사·교수처럼 사업과 무관한 직업인에게 쓰면 상대를 잘못 읽은 게 되고, 사람에 따라서는 은근히 낮잡아 본 것으로 받아들인다. 직업을 모르는 어른에게는 ‘선생님’이 가장 안전하다.
상황별 활용 예문
① 단골 미용실에서, 주인이 직접 머리를 잘라 줄 때
사장님, 오늘은 앞머리만 조금 다듬어 주세요.
미용실은 이 호칭이 가장 자주 오가는 자리 중 하나다. 직원이 여럿인 큰 가게라면 원장을 ‘원장님’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혼자 운영하는 동네 가게라면 사장님이 기본값이다.
② 자주 가는 국숫집에 오랜만에 들렀을 때
사장님, 저 기억하세요? 작년에 매주 오던 사람인데요.
호칭 하나로 ‘나는 손님이지만 낯선 사람은 아니다’라는 신호를 보낸다. 한국의 동네 가게에서는 이렇게 시작한 대화가 서비스 반찬 한 접시로 이어지는 일이 흔하다.
③ 거래처 대표와 통화를 마치며
그럼 김 사장님, 다음 주 수요일에 사무실로 찾아뵙겠습니다.
성 뒤에 붙여 격식을 갖춘 형태다. 통화나 이메일을 끝맺을 때 상대의 호칭을 다시 한번 불러 주면 훨씬 정중하게 들린다.
존댓말·반말과 비슷한 표현
| 표현 | 온도·강도 | 쓰는 자리 |
|---|---|---|
| 사장님 (sajangnim) | 정중하되 편안한 거리 | 가게 주인, 중소기업 대표, 직업을 모르는 상대의 호칭 공백 메우기 |
| 사장 (sajang) | 중립, 직함 그 자체 | 문서·기사·자기소개. 눈앞의 상대를 부를 때는 쓰지 않음 |
| 대표님 (daepyonim) | 격식 있고 현대적 | 스타트업·업계 미팅. 명함에 ‘대표’가 찍힌 사람 |
| 기사님 (gisanim) | 정중, 직종이 분명함 | 택시·버스·택배·이삿짐. 운전하고 나르는 일을 하는 분 |
| 선생님 (seonsaengnim) | 정중, 가장 안전한 만능 | 병원·관공서·처음 보는 나이 지긋한 어른 |
| 아저씨 / 아주머니 | 친근하지만 상대를 낮출 위험 | 아주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요즘은 피하는 추세 |
문화 배경 — 이름을 부르지 않는 나라의 만능 카드
‘사장’은 한자어 社長에서 왔다. 社는 회사·단체, 長은 우두머리를 뜻하니 글자 그대로 ‘회사의 장’이다. 여기에 사람을 높이는 우리말 접미사 ‘-님’이 붙어 지금의 형태가 됐다. 선생님, 기사님, 손님처럼 ‘-님’이 붙는 호칭들과 같은 계열이다.
그런데 왜 유독 이 말이 이렇게 넓게 퍼졌을까. 한국어에는 처음 보는 성인을 부를 마땅한 말이 없다는 사정이 있다. 영어의 excuse me나 일본어의 すみません에 해당하는 ‘저기요’는 부르는 기능만 있지 상대를 높이지는 못한다. 이름을 부르는 건 웬만큼 가깝지 않으면 실례이고, ‘아저씨·아주머니’는 나이를 규정해 버려서 상대가 불쾌해할 수 있다. 그 빈자리를 ‘사장님’이 메웠다. 게다가 한국은 자영업자 비율이 유난히 높은 나라라, 길에서 마주치는 어른이 실제로 어떤 가게의 주인일 확률도 꽤 된다. 틀릴 위험은 낮고, 맞으면 상대를 기분 좋게 하는 호칭인 셈이다.
한국 드라마를 보면 이 말이 권력 관계를 보여 주는 장치로도 쓰인다. 회사를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는 등장인물이 누구를 사장님이라 부르고 누구를 이름으로 부르는지만 봐도 조직도가 그려진다. 직장 생활을 세밀하게 그린 것으로 유명한 드라마 《미생》(tvN, 2014) 같은 작품에서는, 호칭 하나가 바뀌는 순간이 곧 인물의 위치가 바뀌는 순간이다. 반대로 시장이나 골목을 배경으로 한 장면에서는 같은 말이 훨씬 따뜻하게 쓰인다 — 단골손님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며 사장님을 부르는 소리는, 안부 인사에 가깝다.
그래서 이 표현을 익히는 건 단어 하나를 외우는 일이 아니다. 상대를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가에 대한 한국식 감각을 하나 얻는 일에 가깝다.
오늘의 퀴즈
동네에서 혼자 카페를 운영하는 40대 주인에게 커피를 주문하려고 합니다. 가장 자연스러운 첫마디는?
- 사장, 아메리카노 하나요.
- 사장님,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 제가 이 카페 사장님인데요, 아메리카노 하나요.
정답은 2번이다. 1번은 ‘-님’을 뺀 탓에 부르는 말이 아니라 아랫사람을 부르는 소리처럼 들린다. 3번은 ‘-님’을 자기 자신에게 붙였으니, 손님이 갑자기 주인 행세를 하는 문장이 되어 버린다. 가게가 아무리 작아도 주인은 사장님이고, 그 ‘-님’은 언제나 상대에게만 붙는다.
이 글의 단어 뜻풀이와 예문은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krdict.korean.go.kr)에서 가져왔으며, 해당 부분(번역 포함)은 CC BY-SA 2.0 KR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배포됩니다.